[숨] 표류를 끝내는 방법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2021. 1. 2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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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데이비드 위즈너의 그림책 <시간 상자>의 원제는 ‘Flotsam’이다. 이유 없이 물속을 떠다니는 부유물이나 파편을 의미하는 말이다. 글이 없는 이 그림책은 한 어린이가 바닷가에서 혼자 놀다가 파도에 밀려온 낡은 카메라 한 대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따개비가 닥지닥지 붙은 카메라를 열어보니 다 찍은 필름이 들어있었고 아이는 그 필름을 현상소에 맡긴다. 현상소에서 찾아온 사진을 보면서 아이는 깜짝 놀란다. 할머니 문어가 아기 문어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이라든가, 해마들의 집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의 소동이라든가, 믿기지 않는 재미있는 장면이 잇따라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고 긴 머리를 묶은 또래 아이가 왼손에 다른 어린이의 사진을 들고 찍은 인물 사진 한 장이 나온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니 사진 속 어린이 손에 들린 사진 속에서는 또 새로운 아이가, 그다음 아이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주인공은 이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시공간을 무한히 거슬러 올라가면서 수많은 어린이 친구들을 만난다. 아이는 카메라를 들고 그 사진 속 아이들처럼 활짝 웃는 사진을 찍은 뒤 신기한 카메라를 파도에 실어 보낸다. 어딘가의 외로운 아이가 이 카메라를 만나기를 기대한다.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표류하는 삶이 이어지고 있다. 방향도 안 보이고 종착점도 모르는 표류다. 집에 있는 어린이는 서러움을 털어놓으려 해도 상대가 없고 거리에는 마스크 행렬만 보인다. 표류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 사람은 상상을 한다. 저 멀리에서는 어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겠지, 어디쯤 가면 기적 같은 반전이 있지 않을까, 언제쯤 이 일도 끝이 있겠지 하며 다음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책과 이야기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이라도 친구를 만나면 그 뒤로는 이겨낼 기운이 난다. “너도 나처럼 떠다니고 있었구나,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어?”라고 묻는 가운데 뭐라도 다시 시도해볼 수 있다. 위의 그림책에서도 혼자 놀던 어린이는 사진 속에서 먼저 이야기를 발견한다. 그다음엔 비슷한 처지의 친구를 만나며 마침내 자신도 미지의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주기로 결심한다. 매개물이 카메라라는 점이 흥미롭다. 이 책은 2007년에 나왔다. 마치 비대면 시대의 우리 어린이들이 모바일 기기 안에서 이야기를 찾고 친구를 기다리는 장면을 보는 것 같아서 새삼 뭉클하다. 디지털 미디어가 없었으면 어떻게 버텼을까. 그럼에도 불안은 줄어들지 않는다. 손을 잡고 끌어안고 마스크를 벗고 땅에 발을 디디기 전까지는 이 표류가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표류가 길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flotsam(표류물)’과 철자가 비슷하지만 뜻이 다른 단어로 ‘jetsam(표착물)’이라는 낱말이 있다. 떠다닌다는 점은 같지만, 배 바깥으로 의도적으로 던져진 물건이나 파편을 일컫는 말이다. 어쩌다 떠다니게 된 것과 일부러 던져진 것은 물 위에 떠 있다고 해도 그 불안과 고통이 완전히 다르다. 작은 배에서 표류하며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배 안의 물건을 내던짐으로써 두려움의 무게를 덜어내려고 한다. 가끔은 물건이 아니라 함께 표류하던 동료를 던진다. 어리고 약하고 차별받는 위치에 있던 사람이 더 먼저 ‘jetsam’이 될 확률이 높다. 표류물에는 언젠가 동료를 만날 희망이라도 있겠지만 한 번 버려짐과 내던져짐을 겪은 표착물은 떠다닐 힘도 없다. 표착물에 의지를 요구한다는 것은 가혹하다.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터에서 혼자가 된 아이들을 돌보았던 야누시 코르차크는 아이가 말을 안 듣는 이유는 불행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이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알아내는 일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어려운 표류의 시대라지만 어린이를, 약자를 표착물이 되게 할 수는 없다. 표류는 결코 그런 방식으로 종결되지 않는다. 나를 다음 표착물로 만들 뿐이다.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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