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줘
[경향신문]
예술적 도발에서 쾌락을 누리던 프랑스 가수 세르주 갱스부르의 장례식에서 카트린 드뇌브는 그의 숱한 히트곡 가운데 ‘행복이 사라질까 두려워 행복으로부터 달아난다’를 부르며 망자를 추모했다. 무지개 너머에 좀 더 나은 무언가가 있고, 그 너머에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이 있다며,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불행하기 때문에 가끔은 크게 울부짖고 싶다고 노래한 갱스부르는 인간 욕망의 실체를 알아차린 예술가였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이 예술가의 삶을 지탱해준 힘이었다는 제니 홀저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선보인 여러 가지 경구 가운데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줘’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뉴욕 타임스스퀘어 광고판에서 빛나던 이 경구는 이후 사람들의 티셔츠에, 연필에, 콘돔 포장지에 새겨져 대중 사이로 퍼져나갔다. 국제갤러리 개인전에서는 자개처럼 영롱한 돌 벤치 위에서 빛나고 있다.
그가 선택하는 문장들은 익숙한 삶의 기본 전제를 따르는 우리의 선택과 행동의 관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욕망하는 일이 삶을 작동시키는 기본 원리라고 믿으며 살아온 이들에게, 욕망으로부터 나를 지켜달라는 문장은 오히려 욕망의 주소를 되묻는다. 트럼프 정권을 지나며, 현실에 대해 비판적·실천적 발언을 이어온 제니 홀저는 용감한 사람들뿐 아니라 미국의 엄혹한 상황마저 기회주의적으로 착취하며 행동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관찰했다. 가장 취약한 자들이 가장 크게 고통받는 현실에서 그는, 원하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기에 앞서 자신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먼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 나의 욕망이 맞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김지연 전시기획자·d/p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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