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길고양이 생에도 존엄이 있다
[경향신문]
폭설과 한파가 한참 극성이던 어느 날 저녁,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방송을 내보냈다. 화단에 길고양이 집을 설치한 사람은 당장 수거해야 하며, 내일까지도 그대로 있다면 관리사무소에서 임의로 철거하겠다는 엄포였다. 안내방송을 하신 분의 개인적인 의견은 아니겠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엄격함에 못내 아쉽고 속상했다.

그 넓은 정원 한쪽을 길고양이가 몸 누일 공간으로 내어줄 순 정말 없는 걸까. 게다가 그 며칠은 정말 추웠고 눈이 많이 쌓인 때였다. 아이들은 간만에 깔깔대며 몸으로 놀았고, 예술가들은 하룻밤 새 뚝딱뚝딱 올라프와 토토로와 아이스베어를 만들었다. 눈덩이 두 개를 이어붙인 고전적인 눈사람은 열 개도 훨씬 넘게 생겼고 덕분에 근사한 포토존이 여기저기 생겼다. 비록 출퇴근은 힘들었지만 눈 덕분에 멋진 구경을 했고 놀이터에 다시 웃음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마음이 훈훈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따뜻함이 길고양이에게까진 닿지 못했나보다. 유난히 추운 겨울밤을 보낼 작은 생명체를 걱정해 스티로폼 집을 준비했을 그분이 박스를 도로 치우면서 어떤 마음이셨을지 덩달아 너무 죄송했다.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길고양이 또한 보호받아야 할 존재다. 좋든 싫든 인간들의 개인적인 취향을 떠나 이미 길고양이는 도시 생태계의 일원이 된 지 오래다. 그러니 싫다고 내 곁으로 오지 말라고 해봤자 이미 그 구역도 어떤 고양이가 접수했을 테고, 강하게 괴롭혀 쫓아내는 방법은 동물보호법에 위배된다. 쉴 곳과 먹을 것을 은밀하게 빼앗는 방법은 괜찮을까. 그다음엔 아무리 사람을 경계하는 길고양이라고 할지라도 살기 위해서라면 쓰레기장을 뒤엎고 자동차에 숨어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귀퉁이 한편도 못 내주겠다 버티다간 진짜 불쑥불쑥 서로 놀라면서 만나게 될 형편이다. 가능하지도 않지만, 아주 강한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어 한순간에 우리 동네 고양이들을 싹 다 없앤다 해도 사람들만의 행복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우리 동네를 뺀 나머지 온갖 동네에서 새로운 고양이들이 슬금슬금 넘어올 테고, 새로운 구역을 접수하기 위한 길고양이들의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기에 이 동네에서 함께 살 놈과 떠날 놈이 결정되기까지, 혹은 이 영역에서의 서열이 정리되기까지 싸움은 계속되고 소음도 계속된다. 싸우는 고양이가 더 괴롭겠지만, 소음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도 결코 좋을 리가 없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좋든 싫든 길고양이와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길고양이 식사와 자리를 챙겨주는 여러 ‘길봄이’들은 동네 주민과 동네 고양이가 모두 잘 살 수 있도록 완충 역할을 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이들은 남의 동네 고양이를 우리 동네로 모으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구글에서 캣맘의 자동완성 검색어로 퇴치·정신병·참교육이 뜨는 현실로 볼 때, 내 돈과 내 시간을 쓰는 길고양이 돌봄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쉽게 짐작이 간다. 알려진 평균수명의 반도 채우지 못하는 작은 생명체들의 치열한 삶에도 존엄이 있다.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길고양이들이 그냥 거기서라도 잘 살 수 있도록, 이 겨울이 좀 덜 고통스럽도록 약간의 도움을 주는 것, 아니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을 적어도 막아서지 않는 태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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