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이란 무엇인가

황두영 2021. 1. 23.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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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11월 말, 국회는 새해 예산 싸움이 한창이다.

때론 지어달라는, 때론 짓지 말아달라는 모순된 시설 건립 민원을 다루며 '시설'이 있어야 할 곳, '시설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를 생각한다.

시설인의 인격이 존중되어야 하지만 산책길에서 마주치지 않을 곳.

장애, 난민, 청소년, 노숙인, HIV/AIDS 등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와 관련 연구자들이 '시설'에 대해 쓴 이 책은, 사실 문제 제기만 하다 글을 맺는 경우가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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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11월 말, 국회는 새해 예산 싸움이 한창이다. 책상 위에는 의원실 지역구의 지자체에서 온 요청 제안서가 가득하다. 올해 중요한 부탁은 ‘가족안심 시립요양원’ 예산 증액이다. 의원실의 지역구는 도시가 끝나고 농촌이 시작하는 곳인데, 요양원 예정 부지는 아파트 단지와 가깝지만 도시 외곽선인 고속도로를 지나야 한다. 지자체의 사업계획에 따르면 ‘가족이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노인의 인격이 존중되고 보호받을 수 있는 가정적인 공간’을 만든다.

이전에도 요양병원 민원에 한창 시달린 적이 있었다. 다만 반대로 요양병원 건설을 막으라는 민원이었다. 당시 일했던 의원실 지역구는 ‘강남 4구’를 꿈꾸며 한창 아파트값을 올리던 신흥 부촌이었다. 1980년대 지어진 초대형 아파트 단지를 재건축하면서 구청은 부지 끝에 민간 요양병원 건설 허가를 내줬다. 입주 예정자들은 요양병원 환자들이 아파트 단지와 인근 공원, 초등학교를 산책하고 아이들에게 감염병을 옮길 것이라며 요양병원 건설을 격렬히 반대했다. 구청은 이길 수 없는 소송까지 감내하며 병원 건축허가를 취소했다. 소송은 예상대로 졌고 요양병원은 욕을 먹으며 지어지고 있다.

때론 지어달라는, 때론 짓지 말아달라는 모순된 시설 건립 민원을 다루며 ‘시설’이 있어야 할 곳, ‘시설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를 생각한다. 지역사회의 ‘가족’들이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너무 멀지는 않지만 또 마음대로 돌아올 수 없는 곳. 가정은 아니고 ‘가정적인 공간’. 시설인의 인격이 존중되어야 하지만 산책길에서 마주치지 않을 곳.

시민단체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인 탈시설 자립운동이 단순히 반인권적인 시설에서 벗어나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시설사회〉를 엮었다. 저자들은 시설과 지역사회의 이분법을 넘어 특정한 사람들을 시설 또는 거주 행정규제 등 다른 사람들에게 의탁해서만 살 수 있도록 하는 사회를 ‘시설사회’라 명명한다. 시설은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로서의 분리나 유예된 시간, 폐쇄된 삶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인간의 상이 무엇인지 호명하는 메커니즘’(35쪽)이라는 게 김순남의 설명이다.

장애, 난민, 청소년, 노숙인, HIV/AIDS 등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와 관련 연구자들이 ‘시설’에 대해 쓴 이 책은, 사실 문제 제기만 하다 글을 맺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답 없는 현실을 설명하거나 조금은 난해한 이론적 쟁점을 던져놓는 식이다. 그런데 그 점이 가장 좋았다. ‘시설의 완전한 폐쇄와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사는 사회’라는 원대한 목표를 향해 성긴 스케치를 시작한 그 용기가, 나도 함께 이 그림을 채워나가리란 의지를 갖게 했다.

황두영 (국회 보좌관·<외롭지 않을 권리> 저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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