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이용하는 자들

홍종원 2021. 1. 23.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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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재난지원금 받으러."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맞은편을 가리킨다.

이 책의 저자는 "가난은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세계적 현상이다"라고 말한다.

그저 한 번쯤 겪었을 '아주 평범한 가난'의 경험을 우리 스스로 모아, 가난이라는 글자가 기생충화되지 않고 권력자들에게 이용되지 않으며 존엄의 근거로 다시 쓰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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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재난지원금 받으러….”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맞은편을 가리킨다. 맞은편으로 가서 또 “저 재난지원금….” 역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맞은편을 가리킨다. “저쪽에서 이쪽으로 가라고 해서….” 문자를 보여주니 13번 창구로 가라고 한다. 이제야 제대로 찾아왔는지 카드를 준다.

기초생활수급자 재난지원 창구에서 승강이를 벌이고 나서야 재난지원금 카드를 받았다.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밖에 대할 수 없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민원인 상대하는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더라도 말이다. 코로나19 시대에 재난 지원을 받기 위해 길게 줄 선 사람들이 보인다. 사회가 가난한 이들의 존엄을 앗아가는 과정을 생각해본다. 이 책의 저자는 “가난은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세계적 현상이다”라고 말한다.

방문 진료를 하면서 아픈 이의 집을 드나들며 가난한 이들의 삶을 마주한다. 질병 문제 이전에 가난이 눈에 들어온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가난으로 인해 아프다. 의학이라는 전문성에 숨어 가난이라는 질병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들의 건강을 돌보겠다고 찾아가고 있으나 혹여 내가 가난 현장의 구경꾼은 아니었는지 돌아본다.

대런 맥가비는 이 책을 통해 사파리화된 날것의 가난을 생생히 전한다. 사파리화된 가난한 이의 반론도 담았다. “지역 바깥의 사람들이 그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지역사회에 적극 참여하려는 열의는 빠르게 사그라든다.” “정치 참여란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문을 닫아 걸어놓고 그 안에서 미리 정해둔 목표로 군중을 몰아가는 것이었다.” 통쾌함이든 깨달음이든 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

가난은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강제된 상황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가난을 이용하는 자들과 실제로 가난하다고 여겨지는 자들 사이에 커다란 절벽이 자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언론·정치·복지·정책·시민운동·정신의학 등의 무기로 가난을 이용하려는 자들이 가난 사파리를 적극적으로 추동하고 있는지도.

누군가가 나서서 가난을 사라지게 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혁명은 없을 것이다. 우리 평생에는 없을 것이다.” 가난을 이용하는 이들이 가진 힘이 바로 권력일 테고 그 힘에 맞서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그저 한 번쯤 겪었을 ‘아주 평범한 가난’의 경험을 우리 스스로 모아, 가난이라는 글자가 기생충화되지 않고 권력자들에게 이용되지 않으며 존엄의 근거로 다시 쓰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랩으로 실천 활동을 하는 저자처럼 포기하지 않는 힙합 정신으로.

홍종원 (건강의집의원 대표원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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