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하지 않은 정의를 찾아

홍성수 2021. 1. 23.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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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공전의 히트를 친 후 정의에 관한 책은 꽤 많이 출간되었다.

반면 이 책은 정의론의 기본 원리를 응분 원칙, 필요 원칙, 계약자유 원칙, 평등 원칙 등 네 가지로 재구성해 제시한다.

정의론을 우리 '헌법'과 연결해 설명한 점은 이 책의 백미다.

시민들이 이 책을 손에 쥐고 '한국 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하는 수준 높은 논의에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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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공전의 히트를 친 후 정의에 관한 책은 꽤 많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2020년 한국의 법철학자가 쓴 입문서가 또 한 권 출간되었다. 단순한 ‘한 권 더’는 아니다. 이 책에는 기존 저작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고유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기존 책들은 대개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등 정치철학의 사조에 따라 정의의 여러 이론을 평면적으로 소개하거나 잘 짜인 사례들을 통해 귀납적으로 정의의 이론을 찾아가도록 안내하는 것에 주력한다. 반면 이 책은 정의론의 기본 원리를 응분 원칙, 필요 원칙, 계약자유 원칙, 평등 원칙 등 네 가지로 재구성해 제시한다. 설명은 간명하지만, 여기에는 인류가 그동안 축적해온 정의의 원리가 망라된 것이다. 그동안 현대 정의론의 복잡다단한 이론들을 섭렵해가며 정의론에 관한 학술연구 성과를 쌓아온 저자의 노고 덕분에 우리는 정치철학의 고전들을 직접 읽어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는 셈이다. 정의론의 네 가지 원칙들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각자의 한계를 서로 보완하기도 하면서 정의의 원리를 구성한다. 정의론이 ‘빈 공식’에 불과하다는 정의 회의론에 맞서 정의 기본 원리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치밀하게 전개된다.

정의론을 우리 ‘헌법’과 연결해 설명한 점은 이 책의 백미다. 그동안 정의에 관한 (정치)철학적 논의가 이상적이고 현학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었고, 반대로 (헌)법학적 논의는 정치철학의 최신 논의 성과들을 도외시한 채 기존 ‘도그마틱’을 답습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정의가 사회를 구성하고 국가를 운영하는 기본 원칙이라면, 그 원칙은 당연히 국가의 최고 규범인 헌법에 담겨 있어야 한다. 헌법과 법률의 조문들과 판례들을 살펴보며, 우리 헌법 질서가 이미 정의를 지향한다는 사실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대목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우리가 늘 맞닥뜨려야 하는 일상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정의론의 문제가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한국 사회에서 정의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공정’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며 더욱 불이 붙고 있다. 하지만 극도로 형식적인 기회균등에 집착하거나 능력주의의 허상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논의는 오히려 앙상해져버리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정의와 공정성에 대한 한 차원 수준 높은 논의가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한다.

저자는 정의를 찾고자 하는 노력은 여전히 유효하며, 시민들이 헌법과 법질서를 관통하는 정의의 원리를 발전시키는 데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유난히 강조한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고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수 있었다. 시민들이 이 책을 손에 쥐고 ‘한국 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하는 수준 높은 논의에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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