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데, 결혼해 아이까지 낳겠나"
결혼·출산 개인 행복도 떨어뜨려
프리랜서는 육아휴직 그림의 떡
한국 사회는 여전히 남성 중심
아이 안 낳는 게 사회문제는 아냐
출산 지원금만으론 육아 불가능
경쟁·평가하는 문화 바뀌어야
인구 절벽 끝에 서다 - 2030 다섯 명의 토로
중앙SUNDAY는 3비 중 적어도 하나를 실천하는 20~30대 남녀 5명을 지난 19일 만났다. 그들에게 ‘다수의 삶’과 다른 인생을 사는 진짜 이유를 물었다. 이재황(38)씨, 유영(33)씨, 김다이애나(33·가명)씨, 박민수(31·가명)씨, 김가령(25)씨가 3비를 택한 이유는 각기 달랐다. 그러나 그 생각의 뿌리에는 희망을 찾기 어려운 한국 사회의 현실이 똬리 틀고 있었다.
결혼·출산 스트레스, 행복감 낮춰
Q : 3비를 택한 이유가 가장 궁금하다.
A : ▶박민수(이하 박)=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애를 많이 했다. 그런데 연애를 하면 할수록 비혼에 대한 확신이 커졌다. 서울 생활을 할 당시 아무도 안 만나고 일만 했던 적이 있는데 감정적으로 아무렇지 않더라. 사회적 구조 이유보다는 성향으로 결정한 측면이 크다.
▶김가령(이하 김)=비혼, 비출산을 다짐한지 얼마 안 됐다. 결혼은 두사람이 사랑해서 하는 것인데 개인의 감정을 제도적으로 묶는게 맞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전략적으로 제도권에 포섭당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주변 사람들에게 비혼을 선언하고 있다. 인간적으로 외로움을 느낀다면 친구나 가족을 통해 충족할 수 있는데 왜 굳이 결혼을 통해 해소해야 할까.
▶유영(이하 유)=우리 부부는 맞벌이다. 한 사람의 스케줄에 두 사람이 묶이는 상황이 잦아졌다. 그런 와중에 아내가 아이를 한번 유산을 했다. 아이를 한 번 잃고 나서부터 자식이란 존재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꼭 가져야 할까, 낳으면 잘 키울 수 있을까 등등. 남자인 내가 봐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남성중심인 사회다. 이런 구조에서 아이를 낳는 대신 우리 둘이 행복하게 살자고 아내를 설득했다.
▶김다이애나(이하 다)=20대 초반 때부터 일찌감치 결정했다. 당시만 해도 비혼이란 개념이 지금처럼 보편화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 주변에는 비혼자들이 많았다. 그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이런 삶, 저런 삶이 있을 수 있구나를 어린 나이에 깨닫게 됐다. 또 어려운 가족 형편을 겪으면서 내가 가족을 부양해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관계를 추가로 맺고 나 자신을 더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Q : 결혼과 육아 지원 시스템이 과거보다 많이 개선됐다. 그래서인지 기성세대는 젊은 층의 비혼, 비출산 분위기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A : ▶박=기성세대들은 시스템이 이렇게 잘 갖춰졌는데 왜 아이 안 낳냐, 젊은 사람들이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가 빠졌다. 결혼과 출산은 엄청난 스트레스고 개인의 행복 만족감을 낮춘다. 우리 사회 교육열만 봐도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하지 않나. ‘쟤는 어떤 학교에 갔대, 또 다른 쟤는 어떤 아파트에 산대’라는 식의 이야기를 숱하게 들으며 살고 있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살아야 하는 문화와 인식은 시스템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김=객관적으로 시스템은 많이 좋아진 것은 맞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느끼는 안정적 사회와 우리 세대가 느끼는 안정적 사회의 기준이 너무 다르다. 국민 생활 수준은 높아졌으나 불평등을 비롯한 각종 사회문제는 더 심해지지 않았나. 내 집 마련이 일생일대의 목표인 사회에서 나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데 배우자와 자녀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결혼은 당연히 선택지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민수님 말에 동의한다. 문화를 바꿔야 한다. 한국 문화는 항상 경쟁적이고 평가하고 사람에 대한 기준치도 굉장히 높다. 노력하다가 지치고 노력하다가 지치고를 반복한다. 비혼이라는 단어까지 만들어 사용한다는 건 결국 더는 남의 간섭을 받지 않겠다는 신호다.
Q : 국가 차원에서 보면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A : ▶다=각종 출산 장려 정책이 있는데 왜 젊은 층이 반응하지 않으냐는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더 세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육아 휴직은 사실상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만 쓸수 있다. 자영업자나 프리랜서는 논의에서 제외 대상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에게 지원금이나 다른 디테일한 지원 정책이 마련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국가 정책이 내 생활에 못 들어오니 젊은 세대 중심으로 ‘국가가 나에게 뭘 해줬냐’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전체적인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제도를 얼마나 많은 사람의 혜택을 받고 있는지다. 그게 곧 공평성 문제와 연결된다.
▶유=갈수록 기계화되고 자동화되고 있는 사회다. 높은 인구밀도 탓에 사회적 에너지가 불필요하게 소모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장기적으로 꼭 ‘사회 문제’로 연결되는 건지 싶다. 다이애나님 말처럼 결국 공평성 문제다. 아이가 살아가는 사회는 더 경쟁이 심해지고 거기서 탈락하는 사람은 회복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아이들이 같은 사회를 살아가더라도 서로의 삶은 180도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것 아닌가.
차라리 인구 절벽서 살아갈 방법 찾아야
Q : 흔히 ‘경제적’ 이유로 3비를 택하는 사례가 많다. 수입만 보장되면 3비의 대세를 꺾을 수 있을까.
A : ▶이=당장은 나 자신이 부유하게 살더라도 당장 10년, 20년 뒤엔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내 생존 말고 남의 생존까지 걱정할 여유가 있을까.
▶박=나라에서 아이 낳으면 얼마 주겠다 하는데 지극히 임시방편이다. 막상 아이를 낳아 키우면 자식에게 들어가는 돈이 몇 억씩 들지 않나. 그 많은 돈을 나라에서 다 보장해주기엔 현실적으로 어렵다. 돈이 풍족하더라도 부모와 자녀의 유대가 완벽하냐는 또 다른 문제다. 갈수록 여러 사회 문제로 가족의 붕괴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무조건 결혼해라 아이 낳으라고 등 떠미는 건 무책임하다.
Q : ‘현재 젊은 세대가 아이를 낳지 않으면 결국 고령층 부담은 우리 세대에게 돌아올 것’이란 주장도 있지 않나.
A : ▶이=그렇다고 내가 지기 싫은 짐을 남에게, 우리 이후 세대에게 떠넘기란 말인가.
▶다=우리 나이대에는 연금도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나. 너무 웃긴 말이라고 생각한다. 연금 못 받을 걱정 하면서 어떻게 하면 세금을 덜 낼까를 고민하는 사회 분위기를 과연 우리 아이들이 희망적이라고 느낄까.
Q : 이른바 ‘비혼세’도 일부 거론되는데.
A : ▶김=유럽 같은 경우에는 한국에서 규정하는 ‘정상 가족’이 벗어난 범위의 형태도 하나의 가정으로 인정하고 제도권이 지원에 나선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국내 비혼세 도입은 1인 가구에 재정부담 형식으로 페널티를주는 거로 밖에 안 보인다.
▶다=내가 생활한 독일은 이미 유사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국민이 그 제도에 대해 크게 반발심을 갖지 않는다. 사회보장 확대를 위해 세금을 더 부과하는 것에 대해 전혀 불합리하지 않다고 사회적으로 공감한다. 그렇다고 독일 제도를 무조건 따라서 실천하기엔 우리나라만의 특수성이 있으니 우리 사정에 맞춰 바꿔야 할 것 같다.
Q : 인구감소와 고령화 대책으로 비혼 출산, 이민자 유입을 대거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A : ▶박=인구 유지를 위해 외국인을 받아들이자는 발언은 굉장히 인종차별적인 것 같다. 이민이 오고 가는 것은 세계화에 따른 흐름인 것이지 해결책 차원으로 외국인을 이용하는 건 1차원적 사고방식이다. 인구가 줄어든 만큼 세금 내고 그만큼 인프라를 유지하면 될텐데.
▶이=노동력 부족을 해결하는 하나의 대안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가가 외국인을 관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받아들이고 관리한다는 전제가 필요할 것 같다.
▶다=그럴 경우 극단주의 사상이 제일 걱정된다. 다른 종교, 다른 계파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문제를 겪는 나라 모습을 지켜봐 왔다. 정부 차원에서도 쉽게 문화를 개방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와 같은 맥락 아닐까.
▶유=해외 유입자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인구 감소가 해소되지 않을 것 같다.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상황이다. 차라리 국가가 인구 절벽을 빨리 받아들이고 이 상황에서 살아갈 방법을 강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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