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스트레스 풀려고 공상, 꿈 사고팔고픈 내 얘기 썼다"
이과 출신, 정리 등 글 쓰는데 도움
판타지는 말 되는 구석 있으면 몰입
독자가 끝까지 읽도록 쉽게 쓰려 해
[SUNDAY 인터뷰] 30만 부 팔린 『달러구트 꿈 백화점』 작가 이미예
판타지가 먹히는 현실도 의미심장하다. 소설 속 세계에서는 꿈을 사고판다. 밤에 꾸는 꿈 말이다. 한 마디로 잘 자자는 얘기다. 미세 시간 단위까지 쪼개가며 자기계발 테크놀로지에 매달리는 시대에 역행하는 설정이다. 꿈조차 달콤하게 꾸기 어려운 코로나 시대, 필요한 건 응원이고 위로라는 뜻일까. 지난 19일 이씨를 만났다.
Q : 검색해보니 의외로 인터뷰를 많이 안 했더라.
A : “민망했다. 책 잘 쓰시는 분들 많은데, 나는 운이 좋은 거 아닌가. 자꾸 했던 얘기 또 할 게 아니라 한 줄이라도 더 써야 할 것 같았다.”
Q : 진짜 첫 작품인가.
A : “글쓰기와 아예 접점이 없었다.”
Q : 창작 수업을 받아본 적도 없나.
A : “그렇다. 하지만 창작 방법을 아예 몰랐다고 하기가 그런 게, TV 드라마나 소설책을 보면서 이 작품은 왜 잘 됐을까, 사람들은 왜 이걸 잘 썼다고 할까, 그런 걸 파고들었기 때문에 어디서도 안 배웠다고 하기는 그렇다.”
Q : 그래서 성공 공식을 발견했나.
A : “문학을 정말 즐기는 사람들은 좋은 책이라는 확신만 있으면 끝까지 읽는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읽다가 실패해도 5분, 6분만 손해 보면 되는 콘텐트는 쉽게 접근하는데, 2주 걸려 읽어 재미없는 경우를 못 참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명작은 대단한 작가들도 평생 쓸까 말까고, 어차피 내가 그런 길로는 못 갈 테니까 그냥 쉽게 쓰자는 게 내 결론이었다. 첫 번째 책은 무조건 끝까지 읽을 수 있게 쓰자. 내가 아직 깊이도 없지 않나. 대신 살면서 느꼈던 점들을 접목시키자. 그런 생각이었다.”
Q : 삼성을 다니다 그만두고 소설을 썼다.
A : “내게는 TV 보는 것과 공상하는 게 동급이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 겸 공상할 때 떠오른 아이디어를 적기만 하다가 많이 쌓이니까 내버려 두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안 가면 더 많이 쓸 텐데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Q : 소설의 꿈 결제 시스템이 독특하다. 후불제고, 꿈을 꾸고 난 고객이 만족도에 비례해 감정의 형태로 꿈값을 지불한다. 선불이고, 품질에 비해 가격이 터무니없는 경우가 많은 현실의 시장경제에 대한 비판 같은데.
A : “소설에서 꿈을 구입한 사람들은 꿈을 꾸고 난 다음에 잊어버리니까 구입한 사실까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꿈값을 어떻게 받아야 할까. 꿈을 만든 사람도, 판매한 사람도 있으니 안 받을 수는 없다. 이 대목이 가장 고민스러웠다. 아무리 꿈이 기분 좋았어도 깨고 나면 좋았던 기분이 반감되고 기억을 못 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럴 때 꿈이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좋았던 감정의 절반 정도를 백화점에 지불해서 사라지는 것으로 하자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Q : 일종의 ‘아하 모멘트’였겠다.
A : “그랬다. 판타지 소설이 원래 말이 안 되는데 사람들은 말이 되는 구석을 찾으면 몰입하고, 그걸 찾는 데 실패하면 독서를 그만둔다. 남들을 몰입하게 하려면 결국 소설 이야기가 나를 납득시켜야 할 것 같았다. 요즘 독자는 진짜 똑똑하다. 조금이라도 이야기가 이상하면 금방 눈치챈다.”
Q : 독자 피드백도 많았을 것 같은데.
A : “돈 주고 책을 산 분의 첫 리뷰가 가장 기분 좋았다. 아이가 먼저 읽고 엄마에게 권했다는 사연도 진짜 좋았다. 대개 엄마는 재미없어 할 거야 하고 숨기는 경우가 많지 않나. 뭔가 그 집안의 좋은 일을 같이 나눠 가진 느낌이었다.”
Q : 인물들 이름이 재미있다. 어떻게 지었나.
A : “캐릭터별로 어울리는 이름이 생각날 때까지 계속해서 고쳤다. 주인공 달러구트는 네 글자로 하되, 외우기 쉬우면서 된소리가 섞여서 특색 있게 발음되는 이름으로 짓고 싶었다. ‘트’로 끝나니까 앞에는 ‘ㄹ’이 들어가야 균형이 맞을 것 같았다.”
Q : 인물들이 대개 허점이 있는데 그래서 매력적이다.
A : “사람들을 만날 때 허점에서 더 매력을 느끼는 편이다. 너무 좋은 사람인데 허점도 같이 떠오르는 사람 있지 않나. 애정을 갖고 허점을 인물에 집어 넣었다.”
Q : 삶이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위한 응원 메시지가 곳곳에 담겨 있는데, 의도한 거였나.
A : “소설 쓸 때 가장 응원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나였다. 그러니까 내게 한 말들이다. 소설이 잘 되다 보니 소설 속 응원의 말들이 독자들을 위하는 결과가 됐다. 독자들이 읽어줄수록 책에 있는 응원의 말들이 현실이 된다. 신기하다.”
Q : 어떤 점이 그렇게 힘들었길래.
A : “완성해봤자 아무도 안 봐줄 것 같았고, 글쓰기는 어렵고, 완성하겠다고 누구랑 약속한 것도 아니고, 글 쓴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데, 그래도 안 쓰면 인생에 한이 될 것 같은 순간 진짜 힘들었다. 뭔가 저주를 받은 것 같기도 하고.”
Q : 이과 출신인데 소설 쓰는 데 도움이 되나.
A :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어떤 부분을 쓰고 싶다고 해서 어떻게 써야 할지 아이디어가 바로 떠오르는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부분부터 쓴다. 결국 소설을 구성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나중에 알기 쉽도록 잘 정리하고 분류해야 하는데, 대학 시절 며칠씩 화학실험을 해서 리포트를 써냈던 거에 비하면 소설 쓰는 데 필요한 분류나 정리는 오히려 재미있다.”
Q :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는데, 소감은.
A : “너무 좋다. 세상이 살아볼 만 하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다른 생각은 별로 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이런 시절이 또 없을 수도 있잖나.”
Q : 앞으로 꿈이 있다면.
A : “다른 취미가 없다. 그래서 글 쓰는 게 싫어지면 안 된다. 인생이 재미없어지는 것이니까. 전업 작가가 됐으니 책값만큼 독자에게 돌려 드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기는데 그러면서도 쓰는 즐거움을 잊어버리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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