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엔 누구나 유명인" 앤디 워홀의 예언 현실이 되다

2021. 1. 2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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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도 SNS 통해 이미지 관리
동시다발 노출로 '좋아요' 이끌어
만인이 셀럽화 통해 자기상품화
지명도를 돈으로 연결한 워홀 전략
소셜 미디어 셀럽들 그대로 추종

[영감의 원천] 팝아트 ‘마릴린’
2020년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열린 ‘앤디 워홀’전에서 ‘마릴린 2면화’(1962)를 보는 관람객.
지난해 이맘때 전 세계 인스타그램은 ‘돌리 파튼 챌린지’로 떠들썩했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스타 가수 돌리 파튼이 올린 한 장의 포스트가 시작이었는데, 4개 소셜 미디어에 각각 다르게 올릴 자신의 사진 네 가지를 모아 놓은 포스트였다. 링크트인(직업 네트워크)에는 진지한 직장인 모습, 페이스북에는 친근한 모습, 인스타그램에는 ‘갬성’샷, 그리고 틴더(데이트 상대 찾기 네트워크)에는 섹시한 모습을 올리는 식이었다. ‘맞아, 다들 저런 식으로 사진을 올리지’하는 공감 속에 낄낄 웃으며 수십만 명이 #돌리파튼챌린지 해시태그를 달고 저마다의 네 가지 모습을 올렸다.

사회학자들은 ‘돌리 파튼 챌린지’야말로 자본주의와 소셜 미디어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현대인의 ‘자기상품화(self-commodification)’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한다. ‘당신의 브랜드 가치를 올려라’ 같은 말이 일상화된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 상품인 동시에 상품을 파는 기업가로서, 각 소셜 미디어 성격에 맞춰 ‘나-상품’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홍보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달리는 팔로워와 ‘좋아요’의 숫자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나-상품’의 인지도와 값어치를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 숫자는 유튜브에서 실제 돈벌이와 직결된다.

돌리 파튼 챌린지는 현대인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스스로 ‘셀럽’(celebrity의 줄임말·유명인)이 되는 현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팝아트의 제왕 앤디 워홀의 초상화 시리즈에도 등장한 적 있는 파튼은 전통 매스미디어로 뜬 대형 셀럽이지만, 그의 포스트가 큰 공감 속에 일반인 챌린지로 이어진 이유는 일반인도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셀럽처럼 미디어 이미지 관리를 하는 최근 현상을 간파해 친근하게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소셜 미디어 시대를 예견하고 선도하다

인물 사진을 워홀의 팝아트 작품처럼 바꿔주는스마트폰 앱 ‘마릴린’(사진 왼쪽), ‘돌리 파튼 챌린지’를 일으킨 돌리 파튼의 인스타그램. [중앙포토]
만인의 ‘셀럽화’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며 2005년쯤부터 뉴욕타임스 등 여러 언론이 써온 경구가 있다. “이제는 누구나 15명에게는 유명인이다.”

이 말은 앤디 워홀(1928~1987)이 1968년 전시 브로셔에 쓴 다음과 같은 말을 변형한 것이다. “미래에는 누구나 15분 동안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것이다.” 일반인이 독특한 버전의 ‘돌리 파튼 챌린지’나 그밖에 흥미로운 포스트를 올려 잠깐 동안 세계인의 ‘좋아요’ 세례를 받곤 하는 것을 보니 워홀의 반세기 전 예언은 이제 현실이 됐다.

워홀의 ‘말’뿐만이 아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사람들이 셀럽 같은 분위기로 찍은 사진들이 격자 구조로 모여있는 걸 보면, 워홀 특유의 셀럽 초상화 연작 즉 알록달록 여러 색깔로 반복되는 스타의 정사각형 초상화들이 한데 모여 격자 구조를 이룬 모습과 놀랍도록 닮았다. 자신의 사진을 워홀의 셀럽 초상화처럼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게 해주는 효과 앱도 이미 여러 개 있다.

이들 이미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워홀 시대엔 신문지와 TV화면에, 지금은 모두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 쉴 새 없이 보여지고 즉각적으로 소비된다는 것이다.

워홀은 마릴린 먼로의 얼굴, 엘비스 프레슬리의 포즈, 캠벨 수프 깡통, 코카콜라 병 같은 것들이 모두 끊임없이 반복해서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이자 잘 팔리는 상품이라는 공통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그는 실크스크린을 이용해 그들을 반복적인 이미지로 표현했다. 조수들을 동원해 쉴 새 없이 실크스크린을 찍어냈고, 그런 자신의 스튜디오를 아예 ‘공장(The Factory)’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팩토리’ 에 다양한 연예계 스타와 스타 지망생을 불러 모으고, 그들을 작품에 등장시키며, 자신 또한 은빛 가발과 튀는 언행으로 브랜딩해 미디어에 부지런히 노출시켜 가며 스스로를 셀럽화했다.

앤디 워홀
워홀은 미디어와 자본주의의 시대에는 많이 보여지는 것 자체가 힘이 되고 돈이 된다는 것을, 가치가 있어서 유명해지는 것보다 유명해지면 가치가 있어지는 세상이 됐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현대의 소셜 미디어 셀럽들은 워홀의 이같은 전략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2018년 워홀 회고전 때 CNN 등 언론은 "소셜 미디어 시대를 예견한 미술가” "리얼리티쇼 스타(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 시대에 봐야 할 전시”라고 했다.

앤디 워홀이 미디어와 유명세와 돈의 역학 관계를 꿰뚫어 보게 된 것은 1962년 최초의 ‘캠벨 수프 캔’ 그림을 발표해 팝아트의 총아로 떠오르기 이전부터였다. 미국 피츠버그의 가난한 슬로바키아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본명이 ‘앤드루 워홀라’였는데, 카네기 공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49년 뉴욕으로 진출하면서 훨씬 미국적이고 발랄한 ‘앤디 워홀’로 개명했다. 셀프-브랜딩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알았던 것이다.

뉴욕에서 그는 보그와 하퍼스 바자 등 유명 패션잡지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했고, 백화점 디스플레이 및 음반 커버 작업을 맡기도 했다. 화가로 전환할 무렵에는 이미 성공한 디자이너였다. 그의 산뜻한 팝아트에는 디자이너 경력에서 비롯된 뛰어난 감각이 녹아 있다. 하지만 그의 디자이너 경력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미디어와 셀럽과 소비문화가 만나는 최전선에서 일하면서 그 속성을 통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워홀이 본격적으로 미술에 뛰어든 60년대는 추상표현주의가 미술계를 지배하던 때였다.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은 물론 숭고의 미학을 추구하며 진지하게 창작을 하고 있었지만, 일반 대중은 그냥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은 캔버스가 작품 못지않게 난해한 평론가의 설명으로 칭송받으며 비싼 값에 팔리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심지어 미술계 내부에서도 추상화가 ‘교양을 과시하는 부자들의 장식품’이 되는 현상에 대한 반발이 커졌다. 그래서 어떤 작가들은 결코 장식품이 될 수 없는 개념 미술과 행위 예술에 몰두했고, 또 어떤 작가들은 대중문화를 작품에 끌어들여 ‘고급 취향’을 비웃는 팝아트를 추구했다. 워홀은 후자였다.

“미국이 대단한 건 가장 부유한 소비자가 가장 가난한 소비자와 똑같은 것을 사는 전통을 열었다는 것이다. 우린 모두 TV를 볼 수 있고, 거기엔 코카콜라가 나오고, 대통령도 코크를 마시고, 리즈 테일러도 코크를 마시고, 당신도 코크를 마실 수 있다…돈을 더 많이 준다고 더 좋은 코크를 마실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워홀이 이렇게 대중 소비와 대중문화의 민주적 속성을 찬양하는 말을 했을 때 ‘알아먹지 못할’ 고급 전위예술에 지친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리라.

디자이너로서 소비 민주화의 매력을 읽다

워홀의 시대에 소비는 민주화되었지만, 대중문화의 창작과 생산은 대기업과 대형 셀럽들에 의해 독과점 되었다. 반면 현대에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컨텐츠 크리에이터들과 소형 셀럽들이 “15분 명성”을 얻으면서 창작과 생산도 민주화되는 것처럼 보인다(물론 미디어 플랫폼의 독과점을 지적하며 이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견해도 많다). 문제는 민주화라는 빛이 있는 한편, 많이 보여지고 많이 팔려야 살아남는 대중문화의 속성상 사람들의 관심 구걸과 얄팍한 상품화를 가속화하는 어둠이 있다는 것이다. 워홀은 그 점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워홀은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뭐라고 글을 쓰든 신경 쓰지 마라. 그저 글이 몇 인치인지(얼마나 긴지) 따져라”라는 말을 남겼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의 선구적 발언이다. 연예인과 정치인은 물론 사생활을 노출해 인기를 얻는 무직의 인스타그램/유튜브 스타까지, 셀럽들의 중요한 자본은 사람들의 관심이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소셜 미디어 조회 수로 숫자화 되는 관심을 모으기 위해 애쓴다. 때로는 ‘어그로’라고 불리는, 물의를 빚을 언행까지 하면서. 즉 ‘보여짐’의 질보다 양이 중시되는 것이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1925~2017)이 개탄한 것처럼 “나는 보여진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의 시대인 것이다. 질에 상관없이 그 보여짐의 양은 유튜브 광고 수입 같은 돈으로 연결된다.

2020년 런던 테이트모던 '앤디 워홀' 전에서 '해골'(1976)과 '마오'(1972)을 보는 관람객들.
이런 문화에서 모든 것의 가치 기준은 얼마나 관심을 끌 수 있는지, 즉 얼마나 잘 팔리는 상품이 될 수 있는지로 획일화된다. 워홀의 초상화에는 연예인뿐 아니라 재클린 케네디, 엘리자베스 2세, 그리고 공산주의 지도자 레닌과 마오쩌둥까지 들어있다. 그들 모두 대중에게 끝없이 노출되고 관심을 모으는 유명인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유명세가 결국 누군가의 돈벌이로 이어질 테니 말이다. 결국 워홀의 그림에서 그들은 모두 얄팍한 상품이 된다. 그는 이것을 긍정한 것인가, 아니면 냉소한 것인가?
2020년 런던 테이트모던 '앤디 워홀' 전에서 '100개의 캠벨 수프 캔'(1962)과 '초록색 코카콜라 병'(1962)을 보는 관람객.
심지어 죽음조차 그렇다. 워홀은 60년대 초 한동안 ‘죽음과 재앙’ 연작에 매달렸는데, 자동차 사고 현장이나 고층건물에서 투신자살하는 찰나의 소녀, 사형수가 앉을 전기의자 등을 ‘마릴린’이나 ‘코카콜라 병들’처럼 반복적으로 찍었다. 이것은 비극조차 미디어로 끝없이 재생산되며 상품화되는 현실을 비판하는 것인가, 아니면 워홀 자신이 팝아트라는 이름으로 이를 구경거리 상품으로 만드는 데 동참한 것인가? 워홀은 언제나 이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였고, 때문에 지금까지도 워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현재 시대를 정확히 예언하며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미술전문기자. 서울대 경제학부 학·석사, 런던대 골드스미스컬리지 문화학 석사, 홍익대 예술학과 박사 과정 중. 저서로 『그림 속 경제학』(2014), 『명화독서』(2018), 『광대하고 게으르게』(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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