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항암제' 만병통치약으로 오해..환자에 맞는 전문가의 치료 따라야 [의술인술]
[경향신문]
면역력은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관심사다. 건강보조식품에서부터 침대까지 면역력에 좋다고 하면 건강한 사람도 관심을 갖는데 암환자는 오죽할까? 하지만 암에서는 암세포 주변의 비정상적인 면역상태가 문제이기 때문에 면역력을 높인다는 건강보조식품 등으로 암이 치료될 수는 없다.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 감염과 암에서의 면역반응은 매우 다르다. 바이러스나 세균은 우리 몸에 없던 새로운 외부 공격인자로 이에 대한 우리 몸의 면역반응은 빠르고 단순해서, 나쁜 침입자를 제거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하고 그 결과 염증반응이 생긴다. 새로운 항체도 만들고 염증세포로 직접 외부 바이러스와 균을 없애서 병을 치료하게 된다.
하지만 암은 원래 내 몸속의 정상 세포가 어떤 이유로 암세포로 변한 뒤 계속 증식해서 덩어리를 형성한 것이다. 이때 암세포는 계속 커지고 전이하기 위해 ‘양의 탈을 뒤집어쓴 늑대처럼’ 행동한다. 암이 자라면서 정상이 아니라는 신호에 따라 염증세포들이 암세포가 자라고 있는 곳에 오게 되나, 양의 탈을 쓰고 있으니 ‘내 세포구나’라고 오해하고 공격을 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 양의 탈을 벗기는 전략으로 면역항암제를 개발하게 되고, 그 기반이 된 연구를 수행한 미국의 제임스 앨리슨 교수와 일본의 혼조 다스쿠 교수는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즉 암세포와 염증세포가 만났을 때 각 세포에서 PD-1과 PD-L1이라는 열쇠-자물쇠처럼 서로 요철이 맞는 경우, 내 세포로 인지하여 공격을 하지 않는 ‘면역관문’이 있다. 이러한 면역관문을 풀어 염증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여 항암효과를 내는 PD-1 또는 PD-1 억제제가 최근 관심을 받는 ‘면역관문억제제’ 또는 ‘면역항암제’이다.
따라서 이러한 면역항암제를 굳이 ‘면역표적치료제’라고 언급하는 이유는, 암세포들이 있는 곳에서만 작용하여 항암효과를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 약을 암환자가 아닌 일반인이 사용한다고 면역력이 증가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약제들이 모든 암 환자들에게 만병통치약처럼 다 듣는 것도 아니다. 또한 이 약제들은 암세포 주변 면역을 활성화시켜 항암효과를 보이는 과정 중에 정상 부위의 면역 이상이 생겨 새로운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즉 면역항암제도 전문항암제로, 전문가들이 환자의 병과 상태에 따라서 정확히 사용할 때만 효과가 있다는 얘기이다.
한국에 많지는 않지만 전이가 잘되는 독한 악성흑색종이나 폐암, 신장암 등에는 효과가 좋다. 하지만 국내에 흔한 위암, 대장암 등에서는 잘 듣지 않고, 특히 진행성·말기 위암 환자들의 경우는 이런 면역항암제에 대한 효과가 10% 정도밖에 되지 않고 그 효과도 매우 짧다. 더 어려운 점은 어떤 환자에게 효과가 있을지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면역력을 높이고 부작용이 거의 없이 항암효과가 있다는 오해로, 많은 환자들이 면역항암제를 사용하길 원할 때 이를 이해시키기 어렵거나 비싼 항암제로 시간과 경제적 낭비를 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종양내과 의사로서 건강인뿐 아니라 암환자들이 잘못된 정보에 현혹되어 귀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고 화가 나기도 한다. 암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자주 하는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의사는 환자의 적이 아닙니다. 왜 의사가 제안하고 권하는 치료법에 대해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서로 힘들게 할까요? 우리가 같이 해결해야 할 대상은 암이고 암 때문에 생기는 여러가지 합병증과 문제점들입니다. 건강보조식품이건, 돌침대이건 항암효과가 입증됐다면 의사가 약이 아니라고 권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의사가 가장 기쁠 때는 항암치료 중인 환자가 증상이 좋아지고 검사 결과 암이 줄어들었다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할 때입니다.”
라선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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