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갈색 털' 불청객이 싫었어..하지만 조금 알고 난 후 '한편'이 됐어 [그림 책]

이혜인 기자 2021. 1. 2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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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카피바라가 왔어요
알프레도 소데르기트 글·그림, 문주선 옮김
미디어창비 | 48쪽 | 1만3000원

아늑하고 든든한 보금자리. 빨간 지붕이 있는 닭 목장에는 늘 먹을거리가 넉넉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굴러가던 이곳에 낯선 동물 한 무리가 찾아온다. 갈색 털과 동그란 눈을 가진 커다란 쥐 ‘카피바라’다. 사냥철이 되자 카피바라가 살던 곳에 사냥꾼들이 몰려왔다. 헤엄쳐 도망온 카피바라들은 물가에 서서 조심스레 닭들을 쳐다본다.

작고 순한 닭들은 낯선 생물을 엄격하게 대한다. “첫째, 소란스럽게 굴지 말 것. 둘째, 물 밖으로 나오지 말 것. 셋째, 먹을거리에 손대지 말 것. 넷째, 규칙에 대해 불평하지 말 것.” 닭들은 ‘아무도 카피바라를 알지 못했고 누구도 카피바라를 기다리지 않았어요’라고 생각한다.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상황을 반전시킨다. 목장 주변을 지키던 개가 어느 날 병아리를 공격한다. 도망가는 병아리를 카피바라가 잽싸게 등에 태웠다. 헤엄에 능한 카피바라가 병아리를 데리고 쏜살같이 물을 건넌다. 개가 물로 뛰어들어 이들을 추격하려는 찰나, 카피바라 한 무리가 그 앞을 가로막는다.

작은 연대의 경험은 삶을 바꾼다. 닭들은 카피바라와 뒤섞여 모이를 먹고, 잠을 잔다. 사냥철이 끝나 카피바라들은 물을 건너 집으로 돌아간다. 카피바라들 등에는 닭, 병아리, 미래의 병아리가 될 달걀이 타고 있다. 닭들은 철창과 사냥개로 둘러싸여 있던 ‘보금자리’를 떠난다.

그림책 <카피바라가 왔어요>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기자기한 우화같지만, 사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우리는 서로에게 낯선 카피바라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한편’이 될 수 있다. 흩어져 있을 땐 약자이던 사람들이 함께하며 ‘사냥개’와 ‘철창’ 같은 위협을 헤쳐나가는 일은 현실에서도 매순간 벌어지고 있다. 이 책을 추천한 <어린이라는 세계>의 김소영 작가는 “소수자와의 연대가 어떻게 직접적으로 ‘나의 일’이 되는지 보여주는 이 그림책의 결말은 통쾌하고 지혜롭다”고 말했다.

<카피바라가 왔어요>는 애니메이션 <내 이름은 아닌아>로 한국에 처음 이름을 알린 우루과이 영화감독이자 그림책 작가 알프레도 소데르기트가 쓰고 그렸다. 흑백 톤의 그림이 차분하게 주제의식을 전달한다. 닭의 볏, 닭장의 지붕, 개의 목줄 등 다홍색으로 채색된 부분이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것일까 생각하면서 읽어볼 만하다. <카피바라가 왔어요>는 2020년 뉴욕공공도서관 좋은 어린이책으로 선정됐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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