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처벌법령만 2205건.."한국 지사장은 힘든 자리"

한우람,최근도 2021. 1. 2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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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김 암참 회장 'CEO리스크 세미나'서 토로
한국에 지사 둔 미국 기업들
갈수록 세지는 기업규제 불만
연좌제 수준인 처벌도 수두룩
외국기업, 韓투자 철수 우려도
조항부터 모호한 중대재해법
시행 초기부터 큰 혼란 예고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 회장은 22일 웨비나 형식으로 개최된 'CEO 리스크 세미나'에서 "(과도한 기업규제 입법은) 한국에서 최고경영자(CEO)직을 맡을지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있다(It can even affect the decision to actually take the job as CEO)"고 말했다. 최근 국회와 정부가 기업 규제 법안을 잇달아 발의·입법하는 데 대해 또다시 쓴소리를 낸 것이다. 김 회장 언급은 '이런 식의 규제 입법이 지속되면 한국에서 CEO 못 해먹겠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대한민국 최고 무역 파트너인 미국 기업의 국내 소통 창구에서 나온 얘기인 까닭에 울림이 크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2019년 10월 말 기준 종업원이 범죄행위를 저질렀을 때 오너 또는 CEO까지 법적 처벌을 받게 한 법령만 무려 2205건에 달한다. 이것도 모자라 작년 말과 올해 초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각종 규제 입법이 통과돼 CEO에 대한 법적 리스크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높아졌다. 특히 CEO가 일일이 챙길 수 없는 현장에서 일어난 사안에서 발생한 문제가 자칫 CEO에 대한 법적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21세기판 연좌제'란 목소리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

유정주 전경련 팀장은 "기업인 처벌법 조항 숫자를 일일이 세는 게 무의미해질 정도로 많이 늘어났다"며 "중대재해법같이 전례 없이 강한 기업인 처벌에 더해 징벌적손해배상제도, 집단소송법 등 기업 규제 입법이 줄줄이 예고돼 있어 기업 경영 환경 악화에 대한 우려가 그 어느 정권 때보다 높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우려는 국내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김 회장은 "한국 CEO들은 미국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기업 규제 강화 입법이 국내외 CEO 간 갈등마저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본사 CEO는 글로벌 스탠더드 관점에서 한국 대표에게 업무 지시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한국 대표는 이 같은 업무 지시가 '한국 법령 위반 리스크'가 있다며 항명할 수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 관점에서 상식적인 업무 지시를 한국에선 받아들일 수 없다. 거꾸로 한국 지사에서 본사에 얘기해 본다고 한들 본사 측에서는 "한국 같은 선진국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규제를 한단 말인가. 당신이 책임을 회피하려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는 구조다.

업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규정한 주 52시간 근무제가 대표 사례다. 대표 고소득 전문직인 글로벌 투자은행 관계자는 "지난 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됐는데 고객들의 밤낮 가리지 않는 서비스 요구는 여전하다"며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고민해왔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위반하면 사업주는 징역 2년 이하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고객의 서비스 요구를 거절하면 사업주인 한국 대표와 담당 뱅커는 고객을 잃는 것은 물론 일자리 자체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비현실적인 규제로 직원이 법령을 위반하면 CEO가 '연좌제'로 처벌받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직급도, 이름도 모르는 부하직원이 실수든, 고의든 사고를 치면 CEO는 교도소에 들어간다. 'CEO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표현이 재계 유행어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 초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중대재해법은 현재 최대 관심사다. 사업장 또는 하도급 사업장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망 사고의 경우 오너·CEO 등 경영책임자는 최하 1년 이상 징역형에 처해진다.

아직 구체적인 양형 기준이 나오진 않았지만 법조계에서는 산재 사망 사고에 따른 경영책임자 양형은 1~30년 징역이 선고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중대재해법이 경영책임자에게 포괄적 의무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사고가 나면 고의가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1년 넘는 세월을 교도소 담장 안에서 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CEO가 대리처럼 일일이 잔소리를 하면서 업무 지시를 하면 그 회사는 업무 효율이 극도로 낮아 망할 수밖에 없다"며 "책임과 권한 위임이 리더십의 기본이라는 점을 모르는 사람들의 탁상공론이 기업을 망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우람 기자 / 최근도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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