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 우먼 킬> 같은 공간, 다른 시대, 그리고 세 부부..믿고 보는 '작감배'

한겨레 2021. 1. 22. 17:2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덕후'들의 OTT 충전소][드라마 덕후들의 OTT 충전소] 왓챠 '와이 우먼 킬'
시비에스(CBS) 누리집 갈무리

요즘 코로나19로 방에만 갇혀 있다가 보니 갑자기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내가 사는 이 집에 예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지금 내가 누워 있는 이 자리에서 사랑을 나눴을 수도 있다. 반대로 언성을 높이며 싸웠을 수도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방구석 자리가 어쩌면 강아지들의 보금자리였을 수도 있다. 기분이 묘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꽤 근사한 집이 한 채 있다. 1963년과 1984년 그리고 2019년에 각각 다른 세 부부가 살았다. 모두 겉보기에는 완벽해 보이는 부부들이다. 그러나 이 집의 여자들은 모두 살인을 한다. 불륜과 로맨스, 살인과 미스터리, 거기다가 코미디까지 잘 어우러진 드라마 <와이 우먼 킬> 속 여자들이다. 국외에서는 미국 <시비에스>(CBS)의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인 ‘시비에스 올 액세스’(CBS ALL ACCESS)에서 2019년 8~10월 공개되었고, 국내에서는 오티티 왓챠에서 볼 수 있다.

1963년의 부부는 남편의 불륜이 문제다. 능력 있는 남편이 매력적인 미혼의 식당 종업원과 바람이 난다. 착실한 아내 베스 앤은 남편의 내연녀를 만나러 가지만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1984년의 부부는 세상이 변한 만큼 좀 더 복잡하다. 사교계의 여왕인 시몬은 남편의 외도 상대가 남자라는 걸 알고 충격받는다. 이미 두번 이혼했던 시몬이 세번째 이혼을 준비하는 와중에 이번에는 친구의 17살 아들이 자신에게 과감하게 접근한다. 2019년의 부부는 더 복잡하니까 정신줄 단단히 붙잡길 바란다. 이 부부는 서로의 애인을 허락하는 개방적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데 아내 테일러는 양성애자다. 어느 날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테일러의 여자 파트너까지 셋이서 한집에 살게 된다. 그런데 남편이 그 파트너와 눈이 맞는 분위기다. 이쯤 되면 여러분은 이 드라마 장르가 막장이라고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그렇게 쉽게 정의할 수 있는 드라마가 아니다. 아, 진짜 재미있는데 스포라 다 말할 수도 없고.

앞서 말한 대로 이들은 시대가 다를 뿐이지 모두 같은 집에 살고 있다. 사랑과 배신의 다양한 사건들이 같은 집에서 시대를 넘나들며 화려하게 교차한다. 반드시 누군가가 죽는 건 알고 있지만 누가 누구를, 왜, 어떻게 죽이는지를 예상해보는 재미가 드라마를 보는 내내 계속된다. 처음에는 ‘아, 저 착한 여자가 저 나쁜 남자를 죽이겠지’라고 간단하게 생각하지만, 아 글쎄 그렇게 쉽게 꼬리가 잡히는 드라마가 아니라니까. 드라마 속 표현대로 ‘나쁜 선택을 한 착한 이들의 주검’을 찾아보자.

요즘 드라마 팬들이 자주 하는 ‘작감배’라는 말이 있다. ‘작가, 감독, 배우’의 줄임말이다. 기대되는 작품을 보면 ‘믿고 보는 작감배’라고 말한다. <와이 우먼 킬>은 바로 작감배가 완벽하다. 작가는 미국 중산층의 불륜과 복수의 최고봉 <위기의 주부들>을 쓴 마크 체리다. 거기에 <그레이 아나토미> <프렌즈> <시에스아이>(CSI) 같은 미국 최고의 시리즈물 작가진이 합류했다. 대본이 치밀하고 재기발랄하다. 감독은 남녀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했던 사랑 영화의 걸작 <500일의 썸머> 마크 웹이다. 배우 역시 조합이 좋다. 믿고 보는 배우 루시 류가 1984년의 아내다. 그는 이미 영화 <시카고>에서 바람피운 남편을 살해한 경험이 있다. <주토피아>의 주인공 주디의 목소리 연기를 했던 지니퍼 굿윈이 1963년의 아내다. 그는 가장 평범해 보이는 불륜 사건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사랑과 배신의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다시 평화를 맞은 사람들은 집을 내놓는다. 드라마에서 함께 나오지만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여자들은 상대에게 열쇠를 넘기는 장면에서 처음 서로 마주한다. 집 열쇠를 넘긴 뒤 어느 아내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이 집이 그리우세요?” “아니 그냥 건물일 뿐이잖아. 집은 가족이 있는 곳이지.” 혹시 우리도 집의 자산가치나 교환가치만 생각하다가 진짜 가치 있는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박상혁 씨제이이엔엠 피디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