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켜고 끌때, 카톡카톡 소리까지..'그들만의 목소리' 찾아줍니다 [W인터뷰]

이용익 2021. 1. 22. 16: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Weekend Interview] '사운드 디자이너' 1세대 남궁기찬 국민대 연구교수
남궁기찬 국민대 교수가 녹음실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공대생에서 작곡가로, 작곡가에서 사운드 디자이너로 끊임없이 변신한 그는 "소리가 곧 브랜드인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한주형 기자]
디자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를까. 제품 혹은 브랜드에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하고자 하는 노력이 디자인이라면 보통은 시각적인 개념을 떠올리기 쉽다. 브랜드를 상징하는 색상을 정하고, 캐릭터나 CI(Corporate Identity)를 만드는 작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도 디자인이 필요하다. 영어 단어 디자인의 어원이 된 라틴어 '데지그나레(designare)'가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눈뿐만이 아닌 오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이 디자인의 요소가 되는 셈이다.

국민대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남궁기찬 교수는 소리는 산업 디자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라고 믿는다. 국내 사운드 디자이너 1세대로 삼성전자 TV를 설계하는 데 참여했던 그를 함박눈이 내리던 날 녹음실에서 만났다. 눈에 파묻혀 세상이 조용한 가운데 소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듣는 독특한 시간이 펼쳐졌다.

▷사운드 디자인은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고, 영화 후반 작업이나 게임 효과음 등 다양하게 포괄하는 단어다. 청각 사용자 경험 디자인(AUX·Auditory User Experience Design)이 보다 정확한 용어이긴 하다. 기업이 사용자에게 어떤 좋은 경험을 주기 위한 작업을 하는 것이 산업에서 말하는 디자인이라면 눈으로 보는 게 비주얼 디자인이다. 어떤 소리를 어떤 상황에서 듣게 할 것인가를 계획하고, 직접 소리를 만들기도 하는 것이 내가 했던 일이다.

―청각 사용자 경험(AUX)까지는 몰라도 사용자 경험(UX)은 그래도 들어본 말이다.

▷UX라는 단어가 화두가 된 지 한 10년 됐을까. 말 그대로 경험을 디자인한다는 건데 소리라는 측면에서 전자레인지나 세탁기를 쓰고 나면 소리로 알려줘야 하고 TV도 그렇다. 전자제품이 아닌 서비스 측면에서 보면 특정 애플리케이션(앱)이나 서비스를 사용할 때 나는 소리가 있지 않나. SKT의 T링, 카카오톡의 카톡카톡 하는 소리, 넷플릭스를 시작할 때 두둥 하는 소리 등이 브랜딩까지 잘 고려한 대표적 예시가 아닐까 싶다. 원래 광고에서 시작된 징글(jingle·광고 및 기타 상업적 용도로 사용되는 짧은 노래)을 청각 경험 디자인의 시작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렇게 따지면 미국에서는 1920년대부터 한 일이고, 한국에서도 옛날 종근당 광고에 징을 치던 것이나 삼립호빵, 초코파이 등이 잘 알려진 것들로 꼽힌다.

―처음부터 이 분야를 목적으로 준비한 건 아닐 텐데 어떻게 진로를 택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원래는 대중음악을 하던 사람이다. 중학교 때부터 밴드 활동을 하며 베이스를 연주하고 직접 작곡도 했다. 컴퓨터 음악에도 관심이 있어 미디(전자악기)를 그때부터 다뤘다. 지금 그 곡들을 들어보면 작곡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하이텔 등 PC통신에 올리고 활동도 했다. 음악을 본격적으로 하고 싶었는데 95학번인 내 시절에는 컴퓨터 음악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고, 실용음악과조차도 서울예전밖에 없었다. 게다가 부모님도 소위 '딴따라'에 대한 걱정이 있으셔서 일단 컴퓨터공학을 배우기로 했다. 당시 015B, 김현철 등의 음악을 좋아했는데 김현철 씨도 공대 출신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도 비슷한 길을 걷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이후 대학원까지 컴퓨터공학을 계속했는데 결국 음악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 부모님께는 휴학한다고 말씀드린 후 아예 자퇴를 하고 경희대에서 본격적으로 작곡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1년에 천리안에서 기획한 '2001 대한민국'이라는 힙합 컴필레이션 앨범(편집 앨범)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 앨범을 프로듀싱하면서 작곡가로 데뷔할 수 있었다. 바비 킴, 스컬, 주석 등 유명한 분과 함께 작업하고 스컬 씨에게는 곡을 직접 써드리기도 했다.

―비로소 작곡가로서 명성을 알리게 된 건가.

▷그랬으면 새로운 길을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영화음악 작업을 하면서 장진 감독의 영화 '싱글즈'에도 참여하고, 대만 금마장영화제에서 한국인 최초로 최우수영화음악상 후보로 올라 초청받았던 좋은 기억도 있지만 사실 생활이 힘들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작곡가가 한 4만명 된다고 하는데 아는 작곡가가 몇이나 되나. 그때만 해도 디지털 음원 시대가 아니라 CD를 판매할 때라 오히려 지금보다 작곡가 벌이가 더 나을 때인데도 컵라면만 먹고 지낸 적도 있을 정도다.

―그때가 삼성전자에 취직하기로 결심한 시점인 건가.

▷지원한 적도 없다(웃음). 2010년 초 녹음실에서 자고 있는데 연락이 와서 AUX 디자이너를 뽑는다고 하길래 전화를 잘못 거신 것 같다고 하고 다시 잤다. 그런데 다시 연락이 와서 그 얘기를 가족 식사 중에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만 혼자 밥을 먹고 있더라. 아버지도 대기업에서 일해보는 것이 좋은 경험일 거라고 하시고, 아내도 대출 갚을 때까지는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면접을 봤고 덜컥 붙었다.

―소리에 관련된 일인 것은 맞지만 두 영역은 서로 많이 다르지 않은가. 어떤 업무를 맡았는지 궁금하다.

▷그 당시에 관련 전공자가 없으니까 공학을 전공했으면서도 작곡을 하는 내가 적합하다고 보고 대리 4년 차 경력으로 취업시켜주신 거다.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UX디자인 팀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대기업에서 일해본 적도 없고 처음에는 참 얼떨떨했다. UX디자이너 100여 명 중 사운드 담당은 사수랑 나 딱 2명밖에 없어서 우리가 뭐 하는 애들인지 잘 모르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어떤 소리를 어디에 넣을지 결정하는 업무였다.

―어려운 일도 많았을 것 같다.

▷디자이너와 개발자 사이에 논의할 일, 싸울 일이 참 많더라. TV사업부에서 사운드로 소비자에게 인식을 주려면 언제일까. 당연히 TV를 켤 때다. 하지만 부팅하는 그 짧은 시간을 두고도 다른 제조사와 속도 경쟁을 하는 개발자 입장에서는 소리를 출력하는 과정을 추가하는 걸 싫어한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중요한 청각 경험이라고 주장하며 맞서다가 결국 절충안으로 끌 수 있는 옵션 기능으로 만들어 출시하기도 하고, 다 만들어 놓고 못 넣은 사운드도 있고 그랬다. 그나마 내가 아예 코딩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개발자에게 직접 코드를 달라고 해서 직접 보고 의견을 내서 수정한 적도 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2012년쯤부터 대화형 TV라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는데 AI 불러서 TV 구동하는 요즘 같은 일을 조금 일찍 시도해본 것이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한국에서만 사업을 하는 작은 기업이 아니지 않나. 1차로 선정된 국가만 해도 한국 포함 미국·중국·영국·프랑스·스페인·독일·덴마크·핀란드·노르웨이·폴란드·러시아·브라질까지 총 13개국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선정된 나라를 전부 두세 번씩 출장을 가고, 현지에서 성우를 섭외한 뒤에 녹음해보고, 또 그 내용을 기반으로 사용자 테스트, 전문가 평가 등을 다 진행해야 했다. 1인 출장으로 한국 들어오고 다음날 다시 나가고 그래서 몸도 힘들었지만 삼성에 어울리는 목소리, 보이스 페르소나를 찾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국가별로 문화에 따른 차이가 컸을 것 같다.

▷일단 남자 목소리로 할지 여자 목소리로 할지도 문제더라. 예컨대 독일어는 단어에 남성형, 여성형이 있지 않나. 현지 여성 성우를 쓰면 어떨까 물었더니 TV는 남성 명사라 여성 목소리로 말하면 이상하다는 답이 돌아오더라. 미국은 친절하게 스몰 토크를 하는 걸 좋아하지만 중국에서는 딱딱하고 뉴스 앵커 같은 말투를 써야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성 이슈가 제기되면서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적 목소리를 찾는 곳도 있는데 그러면서도 너무 인조적이면 부정적 반응이 나온다. 당시에는 애플의 시리 정도가 막 각광받기 시작했는데 요즘은 큰 기업들이 다 자체적으로 AI 기술을 발전시켜서 전반적으로 많이 좋아진 것 같다. TV뿐만이 아니라 스마트폰 등 적용할 구석이 많아졌다.

―사운드 분야의 일이 앞으로 더욱 의미를 가질 수 있겠다고 보는 것 같다.

▷회사를 나와 다시 박사까지 했는데 당시에 청각 디자인 분야로 논문을 쓴 박사는 내가 국내 1호였다고 들었다. 그때만 해도 정말 혼자 했던 일인데 이제 대기업 자문도 들어오고, 연락도 많이 와 작년쯤부터 확실히 관심이 늘어나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청각 디자인 수업을 하고, 사운드 UX 디자인 연구소까지 있는 곳은 현재 국내에서 국민대가 유일한데 이제 이 길을 택하겠다는 학생들도 생겨나고 있다. 예를 들어 AI와 5세대 이동통신(5G)이 더욱 발달해 자율주행차가 실용화된다면 우리는 차에 타면 거의 모든 것을 말하고, 듣고 하며 사용할 것이다. 그런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이 가진 기술은 이제 워낙 좋으니 소리 등으로 사용하는 경험의 차별화를 줘야 특정 회사를 좋아하고, 팬이 되는 것까지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길을 걷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는 어떤 충고를 해주고 싶은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을 때 공부 대신 다시 작곡 일을 할지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부족하지만 결국 이 일을 택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청각 경험도 경험의 일부라는 것이다. 소리를 만드는 일 자체는 기술적으로 배우고 나면 상대적으로 금방 할 수 있는 일이다. 시각 디자인이라고 해도 포토샵 다루는 법을 배우는 건 일부일 뿐인 것처럼 말이다. 정말 어려운 작업은 어떤 소리를 언제 어떻게 들려줘야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그 부분을 알아내는 것이다. 소리에 대한 부분도 여러 경험 중 하나니까 많은 것을 읽고 듣고 전체적인 지식을 갖추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국내에서 수십 명만이 종사하는 독특한 직업 경험을 가지고 다시 학계로 돌아왔는데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일단 내가 학교에 몸담고 있으니 연구 열심히 해서 학회도 만들고, 후배들도 키워내야겠다. 물론 그래픽디자이너만큼 청각디자이너가 많아지는 것은 기대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단순한 '마이너리티'가 아니라 '스페셜리스트'가 돼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 유명한 벤츠도 각종 소리를 구별하는 AI를 만든 국내 스타트업 코클리어닷에이아이 같은 곳에 먼저 손을 내밀곤 한다. 아직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희소성이 있는 분야다.

▶▶He is…

1977년생으로 원래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지만 음악학으로 석사를, 디자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작곡가로 데뷔해 많은 가수의 앨범과 드라마, 영화음악 등을 작곡했다. 2010년부터 삼성전자 UX디자인팀에 스카우트돼 사운드 디자이너로 근무한 뒤 국내 최초로 청각 경험 디자인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민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사운드 UX 디자인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용익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