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감성여행] 그린도시로 거듭나는 순천을 찾아서

2021. 1. 2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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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늘 설레지만 특히 겨울 여행은 더 설렌다. 몸도 마음도 움츠러드는 겨울에는 선뜻 여행을 떠나기가 쉽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순천으로 향하는 KTX에 몸을 실었다. 12월의 마지막을 달리고 있는 날씨는 을씨년스럽고 바람도 제법 쌀쌀했다. 다행히 열차 안은 따뜻했다. 평소에는 커피를 한 잔 사서 여유롭게 마시면서 창밖을 내다보았는데 마스크가 생활화된 요즈음 열차 안에서 무언가를 마시거나 먹는 것은 금물이다.

어디론가 떠난다는 설렘에 차창밖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논과 밭, 산과 강, 그리고 다리가 이어진 풍경이 지루하게 느껴질즈음 순천역에 당도했다. 서둘러 열차에서 내려 가장 먼저 간 곳은 순천역 근처에 있는 청춘창고. 

전남 순천시 역전길 34번지에 있는 청춘창고는 80년 이상 양곡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되었지만 쌀 생산량 감소로 인해 사용 빈도가 줄어들어 유휴시설로 전락했다. 순천시는 지난 2017년 2월, 국비와 시비 등 9억여 원을 들여 순천농협 조곡지점 양곡창고를 개조해 ‘청춘창고’라 이름 짓고 청년들의 창업공간으로 조성하여 문을 열었다. 

청춘창고는 영업을 시작한 이후 순천역을 통해 들어오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먹거리와 즐길거리, 볼거리 등을 제공하는 기능을 톡톡히 수행해왔다. 도심 내 빈공간을 활용해 지역 청년들에게 차별화된 먹거리와 독특한 디자인 등 자신만의 아이템으로 성장의 기회를 부여하는 창업 인큐베이팅 공간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순천시는 연간 12만 명 이상의 여행객이 찾고 있으며 게스트하우스 밀집 지역인 순천역 부근의 청춘창고는 위치가 좋아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제 청춘창고는 순천을 여행하는 여행객들에게 순천 청년들의 먹거리와 즐길 거리를 공유하고 갈 수 있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순천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청춘창고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청년 점포 추진협의회를 구성, 명칭부터 장소 선정, 건물 내·외부 디자인, 교육 등 모든 방면을 청년들과 상의해 결정했고, 실질적인 운영 또한 입점자들로 구성된 입주협의 회의에서 맡고 있을 정도로 내부 청년들의 활동 범위가 넓다. 

이곳의 주인은 만 19세에서 39세의 청년들만 입점이 가능하며, 창업을 통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이 꿈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들어가는 입구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적혀져 있었다. 

이곳은 1945년 건립되어 80여년 넘게 정부의 양곡을 보관하던 창고로 22개 청년점포와 공연이 가능한 무대 및 작품전시 공간으로 리모델링하였다. 이제 청춘창고는 청년들의 꿈을 키우는 창업공간이자 청년들의 다양한 문화를 꽃피우는 공간으로 채워질 것이다. 

쓸모없는 창고를 개조해 공간을 재해석하는 사업은 최근 여러 지자체에서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재창조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전집으로 들어가 김치전과 막걸리를 주문했다. 어렸을 때 농부셨던 아버지가 밭일을 하시다가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셨던 장면이 떠올라 잠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다음 액세서리 소품샵을 둘러보았다. 소품점은 공방을 함께 열고 있었는데 종이인형, 핸디프린팅, 나만의 차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신청해서 원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소품샵을 운영하는 여대생의 손재주가 눈길을 끌었다. 

점심은 맛집으로 이름난 ‘이유부’ 수제유부초밥전문점에 들러 입소문이 난 참치유부, 생연어유부, 명란마요유부를 시켰다. 가위와 일회용 비닐장갑이 함께 나왔다. 크기가 큰 유부초밥을 잘라 먹든가, 아니면 일회용 장갑을 끼고 먹으라는 배려였다. 젊은 청년의 열정과 정성이 담긴 초밥이라 그런지 모양도 예쁘고 더불어 맛도 있었다. 간단한 요기를 하고 아기자기한 공예품을 구경했다. 식사 후 산책을 하면서 작가들의 작품도 둘러보고 자연스럽게 감상도 나누면서 소화도 시키는 복합문화 시설이라 시간을 보내기에도 유용했다. 또 끼가 넘치는 젊은 청년들이 연극, 노래, 춤으로 언제든지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소공연장도 마련되어 있었다. 주말이나 시간이 비교적 여유로운 저녁 시간에 찾는다면 더 즐겁게 이곳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춘창고에서 나오니 마주 보이는 곳에 순천에 오면 꼭 들러야 한다는 브루웍스(BREWWORKS) 커피숍이 눈에 들어왔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법, 밥을 먹었으니 맛있는 커피는 이제 필수코스였다. 자연스럽게 커피숍을 향해 걸어갔다. 이곳은 직접 로스팅한 신선한 카카오를 가공하며, 카카오로 만든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곳으로 입소문이 난 곳이다. 최근 여기저기 문을 열고 있는 창고형 카페로 얼핏 보기에도 크기가 꽤 크다고 생각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분위기는 의외로 고전적이었다. 곳곳이 포토존일 정도로 눈을 호강하게 만드는 볼거리가 많았고 외국산 자동차들이 전시되어 있어서인지 이국적인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커피는 솔트 아인슈페너, 더치커피, 카카오라떼, 카카오쌍화차인데 직접 원두를 로스팅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카카오가 들어간 메뉴가 인기가 있었다. 창고형이어서인지 층고가 높았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니 커다란 실링 팬이 있었다. 

한겨울이라 실링팬은 멈추어 있었지만, 여름에 오면 실링팬이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기만 해도 시원함을 느낄 것 같았다. 야외에는 잎이 다 떨어진 담쟁이덩굴이 건물 한쪽 벽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 찾으면 상당히 운치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을 듯했다. 무성한 담쟁이덩굴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이곳은 커피가 제조되는 과정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커피 맛도 역시 일품이었다. 

그다음 발걸음을 돌린 곳은 순천 전통시장. 역시 그 도시를 알려면 전통시장을 찾는 것이 순서였다. 순천 전통시장은 웃장과 아랫장이 있는데 말 그대로 시장이 위쪽에 있어서 ‘웃장’이고, 아래쪽에 있어서 ‘아랫장’으로 불리고 있다. 웃장의 장날은 매달 끝자리 5일과 10일이고, 아랫장의 장날은 2일과 7일이다. 순천 웃장은 조선시대부터 난전으로 맥을 이어온 5일장이 1928년 계획적인 시장으로 탈바꿈하면서 만들어졌다. 1974년 시장건물이 들어서고 이듬해 지금의 상설시장이 문을 열었다. 이후 2019년에 시장 리모델링을 하였고 깨끗하게 변신에 성공하여 더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있다. 이곳은 워낙 유명해서 순천 사람들뿐만 아니라 순천으로 여행 온 관광객들도 일부러 시간을 내어 들르는 곳이다. 

웃장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는 국밥거리다. 이곳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전국 음식테마거리 200선에도 선정될 만큼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옛날 상권이 활발했던 때는 멀리 광양이나 벌교 등지에서도 장사꾼이 모일 정도로 북적대던 시장이었고, 위치가 좋아서 만남의 광장처럼 약속장소로도 많이 이용되었다고 한다. 웃장 2층에는 젊은 청년들이 입점해 있는 ‘청춘웃장’이 있는데 아이디어 상품도 다양하고, 인테리어도 세련되게 꾸며져 있어 둘러볼 만하다. 

유부초밥을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나 워낙 유명한 돼지국밥집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국밥집 중 한 집으로 들어가 돼지국밥을 시켰다. 돼지국밥을 시키자 서비스 밑반찬으로 수육이 나왔다. 역시 전라도의 인심은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돼지 특유의 냄새가 나서 싫어했던 음식이었지만 주인장의 음식솜씨가 빼어나서인지 국물 맛이 담백하고 얼큰하면서 전혀 냄새도 나지 않아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싹싹한 성격의 음식점 사장님과 사진도 한 컷 찍고 천천히 걸어 곱창골목을 찾았다. 전국에서 곱창을 좋아하는 마니아라면 꼭 들른다는 곱창의 성지였다. 그러나 이미 먹은 게 너무 많아서 곱창은 먹지 못하고 포장을 주문했다. 이곳 곱창골목의 곱창이 워낙 유명한지라 여행을 떠나기 전 순천이 시댁인 지인이 꼭 들러서 사다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넉넉하게 주문했다. 주문한 곱창을 들고 다시 시장골목을 걸어 나왔다. 작은 골목에는 몇 대를 이어 곱창과 전골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순천 곱창전골은 육수의 깊은 맛 속에 단맛이 숨어있는 게 매력이며 시금치를 넣어 샤브샤브처럼 먹을 수도 있다고 들었다. 시금치의 단맛이 우러나면서 전골이 먹을수록 점점 풍미가 깊어진다고 한다. 곱창전골을 먹지 못해 아쉬운 마음으로 다음 행선지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글.사진 전정희 소설가>

rea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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