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회담 성급 중재하면 실패 가능성 높아"

박병진 2021. 1. 2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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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장 윌슨 센터 아시아 프로그램 연구위원 겸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바이든 시대 한·미 대북정책 공조 방향 분석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 맞춰 한국 정부가 북·미 정상회담 개최 등 대북 정책에 속도를 낼 것을 주문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이라는 전문가 진단이 제기됐다.

정성장 윌슨 센터 아시아 프로그램 연구위원 겸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22일 ‘바이든 시대 한·미 대북정책 공조 방향에 대한 분석 자료’을 통해 “북한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불신이 커 한국 정부가 미국과 북한 간 정상회담을 성급하게 중재한다면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그는 “대신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과 북한의 실질적인 2인자인 김여정 간 회담을 통해 합의안을 미리 만들고 나서 그 후에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게 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접근법”이라며 속도조절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지난해 10월 미국 워싱턴 DC 외교안보분야 싱크탱크인 윌슨 센터의 펠로(fellow)로 선정된 정 위원은 윌슨 센터에서 오는 2월까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리더십과 북한의 파워 엘리트 변동을 주제로 연구 중이다.

정 위원이 이날 공개한 분석 자료는 최근 미국 워싱턴 DC에 체류하면서 직접 목격한 미국의 위기상황과 미국 전문가들의 대북 인식을 토대로 작성됐다.

그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0일 취임사에서 언급한 내용 중 95% 정도가 민주주의·정의·진실·정치적 화합과 사회적 통합·위기극복 등의 국내 문제에 집중되고, 대외관계와 관련된 부분은 고작 5%에 불과했다”면서 “이같은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한반도 문제, 북핵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마이클 그린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부소장도 이날 최종현학술원과 CSIS가 ‘바이든 시대와 한반도’를 주제로 개최한 화상 세미나에서 “기후변화, 팬데믹, 경제회복, 러시아, 국내 테러 등 바이든 대통령이 다뤄야 할 현안이 엄청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한국이 미국에 대북 정책을 우선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린 부소장은 “2001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회담하며 북한과 정상회담을 우선하도록 밀어붙였다”면서 “이 때의 나쁜 첫인상 때문에 한·미동맹과 미국의 대북 정책이 6개월에서 1년은 역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청와대가 북한과 정상회담이나 극적인 대북 정책을 우선하라고 하지 않기를 바란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럴 준비가 안 됐다”며 한국이 민주주의, 코로나19, 중국 문제 등에 대해 먼저 협력 의지를 밝힐 것을 조언했다.

정 위원은 향후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행정부 내 주요 인사들의 대북 인식과, 한국 정부가 그들에게 얼마나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대북제재 완화 등과 관련해 사전에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정교한 논리와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인식과 관련, 정 위원은 “미국 조야에 북한 로동신문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한국어 실력을 가진 한반도 전문가가 매우 드물고, 핵과 미사일 문제를 제외하고는 북한에 대한 관심도 또한 매우 낮아 전반적으로 대북 강경론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며 주위를 환기시켰다.

한국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합의’를 계승하길 바란다면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내놨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간 긴장완화는 이뤄졌으나 당시 미 행정부가 점진적 접근과 동시행동 원칙을 거부하고 ‘선 비핵화, 후 제재완화’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그 이상의 진전을 거두지 못했으며 오히려 북한은 더욱 위협적인 핵능력을 지니게 됐다.

정 위원은 그러면서도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한국 정부의 입장을 반영해 작성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무엇보다) 바이든 행정부에 한반도 문제를 잘 아는 외교 엘리트들이 다수 입성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미연합훈련과 관련해 “필요하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통해서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한 것을 두고서는 “미국 워싱턴 DC의 많은 전문가들은 한·미 간에 결정할 문제이지 남북 간에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며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전했다. 북한이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핵무력 강화 입장을 재확인했음에도 불구, 한국 대통령이 이런 입장을 보이는 것에 대해 상당수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처럼 한국 정부에서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언이 이어진다면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 간 입장 조율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박병진 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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