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일 신임 주일 대사 "21세기 조선통신사 되겠다"

김청중 2021. 1. 2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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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일 신임 주일본 한국 대사가 22일 오전 부임을 위해 출국했다.

강 대사는 이날 출국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을 만나 "문재인 정부는 한·일관계를 정상화하고 싶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고 대통령도 신년기자회견에서 밝혔다"며 "그런 메시지를 일본 측에 잘 전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강 대사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판결, 일본군위안부 배상판결과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등으로 냉랭한 한·일 관계를 풀어야하는 등 난제가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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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일 신임 주일 한국대사가 22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에서 일본 부임을 위해 출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창일 신임 주일본 한국 대사가 22일 오후 일본에 부임하면서 “21세기 조선통신사(通信使)가 되겠다”고 밝혔다.

강 대사는 이날 도쿄 나리타공항에 도착한 뒤 부임 메시지를 통해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현재와 과거를 직시하면서 나 자신의 소임이 21세기의 조선통신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역사를 잊지 않으면서 미래지향적인 바람직한 한·일관계 구축에 일조하는 초석이 되고자 한다”며  “나는 한일 양국의 ‘통신’ 복원에 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존보다는 공존, 아집 대신 공감에 호소하면서 성신(誠信)과 통신의 한·일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일에 신명을 바치겠다. 그런 걸음걸음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을 선도하는 한국과 일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 대사는 앞서 이날 출국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을 만나 “문재인 정부는 한·일관계를 정상화하고 싶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고 대통령도 신년기자회견에서 밝혔다”며 “그런 메시지를 일본 측에 잘 전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워낙 한·일관계가 꼬여있어서 마음이 좀 무겁다”며 “하나하나씩 풀어가겠다”고 밝혔다.

강 대사는 일본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정책에 따라 2주간의 의무격리를 마친 뒤 외교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강 대사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판결, 일본군위안부 배상판결과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등으로 냉랭한 한·일 관계를 풀어야하는 등 난제가 수두룩하다. 특히 코로나19에 대응 실패로 지지율이 급락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 정권은 지지층 결집을 위해 취임 초기 다소 유보적 태도에서 다시 강경한 자세를 부각하고 있다.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강 대사에 대한 자민당 의원들의 반발 분위기를 전하면서 스가 총리와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이 당분간 면담을 보유할 방침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사실이라면 스가 총리가 남관표 전 주일 대사의 이임 인사를 거부한 데 이은 노골적 외교 결례로 볼 수 있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강창일 대사 부임 메시지 전문>
 
조선통신사에서 배우다
 
16세기 후반 조선과 일본은 7년 동안의 전쟁을 치렀습니다. 조선이 입은 피해는 실로 엄청났습니다. 국토는 황폐화되었고 죽거나 다친 사람은 헤아릴 수 없었으며, 많은 사람은 포로로 잡혀가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분명 일본은 조선의 ‘원수’였습니다.
전란이 끝나고 9년 뒤인 1607년 에도 시대의 첫 조선통신사가 일본 열도에 발을 들였습니다. 이후 쇼군의 교체에 맞춰 파견된 사절단의 족적은 전쟁의 상흔을 쓰다듬고 선린 우호의 싹을 키워나가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6개월 안팎 체재하는 동안 각지에서는 이웃 나라의 손님을 둘러싼 문화 축제가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그 덕분에 에도 시대 내내 조일 관계는 평화와 친선을 구가하는 황금기를 맞이했습니다.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1668-1755)는 증오와 보복을 뛰어넘어 화해와 협력을 만들어가는 원칙으로 ‘성신(誠信)’을 제창했습니다. “서로 속이지 않고 다투지 않고 진실로써 교류하는 것”이라 풀어낸 것이죠. 조선통신사야말로 ‘성신’으로 소통하는 평화의 메신저였습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습니다. 1965년 한일 양국은 국교를 정상화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만, 과거사의 응어리는 아직 완치되지 않은 듯 보입니다. 2018년 양국을 방문한 관광객은 천만 명을 넘었는데도 말입니다.
저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현재’와 ‘과거’를 직시하면서 제 자신의 소임이 21세기의 조선통신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역사를 잊지 않으면서 미래지향적인 바람직한 한일관계 구축에 일조하는 초석이 되고자 합니다. 저는 한일 양국의 ‘통신’ 복원에 미력을 다하겠습니다.
 
11세기의 가인 후지와라 아키쓰나(藤原顕綱, 1029-1103)는 이런 와카를 남겼습니다.
 
梅(うめ)の花(はな)かばかりにほふ春(はる)の夜(よ)の やみは風(かぜ)こそうれしかりけれ
매화꽃 내음 이토록 향기로운 봄날 깊은 밤 바람이 불어오니 참으로 즐겁도다
 
지금 양국 간에는 ‘밤’이 깊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일 관계의 희망찬 ‘매화 향기’를 퍼트리는 ‘바람’이 되고자 합니다.
 
국제(國際)에서 민제(民際)로. 조선통신사는 국가적 교류였습니다만, 민중적 차원에서의 파장과 변화 또한 작지 않았습니다. 미에(三重) 현의 도진오도리(唐人踊り)와 오카야마(岡山) 현의 가라코오도리(唐子踊り)는 이문화와의 접촉에 자극되어 생겨난 전통예능입니다. 생소한 의복, 신기한 음악의 적극적인 수용은 공동체의 번영을 기원하는 새 문화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조선통신사가 문화 사절단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한반도와 일본 열도가 오랜 기간 풍성하게 교류를 가져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토(京都)와 나라(奈良)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숨결이 살아있음에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현해탄은 수천 년 동안 양국 민중의 일상을 잇는 ‘시로드(sea road)’가 아니었을까요?
2017년 10월 조선통신사에 관한 자료는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 쾌거는 일본의 NPO법인 ‘조선통신사연지(緣地)연락협의회’와 한국의 ‘부산문화재단’이 손을 잡고 이룩했습니다. 역사 문제로 얼어붙은 한일 관계의 수면 아래로 흐르는 봄의 기운이었습니다. 그 주체는 다름 아닌 ‘시민’이었습니다.
21세기의 세 번째 10년을 맞이하는 지금, 한일 관계의 물꼬를 바꾸고 내실을 채워나갈 힘은 양국의 시민에게 있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양국의 시민이 자유롭게 만나고 공생을 이야기하는 ‘민제’의 견인차가 되고자 합니다.
민제의 또 다른 키워드는 ‘지역’ 즉 ‘로컬’입니다. 저는 한일 양국의 시민이 문화적 동반자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지역에서 지역으로 직접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도록 힘쓰고자 합니다. 양국의 지역에는 오랜 교섭 과정에서 축적되어 온 ‘이웃’이라는 감각이 살아 있습니다. 거기에는 이질성을 배척하지 않고 인정하는 유연함이 가득합니다. 중앙과 국가로부터 자립한 민제의 풍부함이야말로 진정한 국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독존보다는 공존, 아집 대신 공감에 호소하면서 ‘성신’과 ‘통신’의 한일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일에 신명을 바치겠습니다. 그런 걸음걸음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을 선도하는 한국과 일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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