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술기행](43) 2020년 주점에선 코로나 영향으로 중저가 전통주 인기

박순욱 선임기자 2021. 1. 2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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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대규모 전통주점 백곰막걸리, 2020년 판매순위 발표막걸리는 이화백주, 복순도가, 나루생막걸리가 1~3위약주는 오메기맑은술, 청진주, 황진이주 등이 인기소주는 서울의밤, 이강주 25도, 화요 25도 순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 “코로나 영향받아 장년층 방문 줄고, 20대는 오히려 늘어”

2020년은 코로나19가 일년내내 극성을 부렸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주 시장은 위축되지 않았다. 작년 11월 마지막 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으로 영업시간을 밤 9시로 제한받은 전통주점은 매출이 줄었지만, 홈술(집에서 술 마시기) 트렌드 확대로 온라인을 통한 전통주 판매는 오히려 늘었다. 술 구독 서비스 같은 IT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플랫폼이 자리를 잡아간 ‘원년’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작년에 전통주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술들은 어떤 제품들일까? 300여종의 전통술을 취급하고 있는 국내 최대 전통주전문점인 백곰막걸리에서 작년 한해 가장 많이 팔린 술(금액기준)은 이화백주(막걸리)였다. 약주 부문에서는 제주 명인 오메기맑은술이 가장 많이 팔렸으며, 증류식소주(리큐르 포함) 중에서는 서울의 밤이 판매1위를 차지했다. 이화백주는 3년 연속 막걸리 부문 1위와, 술 전체 종합 1위 자리를 지켰다. 전통주점 백곰막걸리는 전년도의 전통술 판매 순위를 매년 연초에 발표하고 있다.

2020년 백곰막걸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술. 왼쪽부터 제주오메기맑은술(약주 1위), 이화백주(막걸리 1위), 서울의밤(소주 1위).

작년은 코로나가 일년내내 전국을 강타했고, 전통주점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코로나 감염을 우려해 외식을 자제하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법인카드 사용자, 40대 이상 장년층 방문이 줄어든 반면, 20대 젊은층 고객은 오히려 늘었다. 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는 "2020년은 가격대가 비교적 저렴한 술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팔린 것이 예년과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백곰막걸리 판매순위가 실제 전국의 전통술 판매순위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가령, 국내 막걸리 판매 1위인 장수막걸리는 백곰막걸리에서는 아예 취급하지 않는다. ‘무감미료 막걸리'로 요즘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느린마을막걸리 역시 판매하지 않는다. 다만, 가장 많은 전통술을 취급하는 백곰막걸리의 판매순위를 통해 전통술 트렌드는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다.

◇고급 전통주점에선 여전히 탄산막걸리 인기...서울 나루생막걸리가 무탄산 중 1위

◆백곰막걸리 2020년 막걸리 판매순위

막걸리 부문에서는 1위 양산 이화백주에 이어 울산 복순도가(2위), 서울 나루 생막걸리 6도(3위), 공주 왕알밤 막걸리(4위), 장성 여수밤바다 막걸리(5위)이 상위 리스트에 올랐다.

1, 2위 막걸리들은 탄산이 들어간 ‘스파클링 막걸리'이며 나머지 막걸리들은 탄산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주목할 점은 3위를 차지한 서울 나루 생막걸리다. 2019년 하반기에 출시한 신생 막걸리로서, 무감미료 막걸리들이 대부분 10도 이상의 알코올 도수인데 반해, 가장 대중적인 6도를 선택한 덕에 젊은층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는 "막걸리 도수가 10도 이상 되면 벌컥벌컥 마시기 어렵다는 점에서 나루 막걸리 6도는 프리미엄 막걸리의 장점(무감미료, 전통누룩과 지역쌀 사용)을 갖고 있으면서도 대중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2020년 백곰막걸리에서 가장 많이 팔린 막걸리들. 왼쪽부터 1~5위순.

경남 양산의 이화백주는 그해 도정한 햅쌀과 천연 효모인 누룩으로 발효하여, 저온숙성시킨 프리미엄 탄산 탁주다. 탁주와 스파클링이 만난 맛이라고 할 수 있다. 인공 효모를 사용하지 않고 100% 전통누룩을 사용해 술을 빚어, 깊고 풍부한 맛과 향을 준다. 또한 잔당이 많이 남아 맛이 부드럽다. 톡쏘는 탄산과 달콤새콤한 맛이 잘 어우러진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자연발효로 생긴 탄산이 자극적이지 않은 시원한 청량감을 전해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2017년 청와대 만찬주로도 선정됐다. 백곰막걸리 판매가격은 2만2000원. 산미와 단맛이 낮은 편으로 편하게 마실 수 있다.

막걸리 판매 2위를 차지한 복순도가 손막걸리는 울산 울주군에서 빚는 술이다. 이화백주처럼 탄산이 강한 '샴페인 같은 우리 막걸리'다. 탄산 막걸리의 원조다. 복순도가 막걸리는 쌀의 함량이 많고 누룩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자연탄산이 활발하게 올라와 막걸리 병을 흔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고루 섞인다. 탄산이 강해 청량미가 도드라지며, 단맛보다는 산미가 강해 여름 풋사과를 먹는 듯하다. 백곰막걸리 판매가격은 2만5000원.

서울 나루 생막걸리 6도는 서울 성수동에서 청년 넷이서 서울쌀(경복궁쌀)로 만든 지역특산주다. 무감미료 막걸리이면서 대중적인 6도, 그리고 프리미엄막걸리보다는 저렴한 가격 등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한 경우다. 작년 네이버와 손잡고 영상 광고를 찍는 등 브랜드마케팅에도 적극적이다.

◇약주 부문에선 신맛이 강한 제주 오메기맑은술 1위 올라...저가 약주도 약진

◆백곰막걸리 2020년 약주 판매순위

약주 부문에서는 제주 명인 오메기맑은술(1위)에 이어 가평 청진주(2위), 남원 황진이주(3위), 청주 풍정사계 춘(4위), 평창 감자술(5위) 등이 많이 팔렸다.

오메기맑은술은 제주술익는집 양조장이 빚는 약주다. 오메기는 좁쌀을 일컫는 제주도 방언으로, 누룩과 함께 발효시켜 윗부분의 맑은 술만을 떠내 숙성시킨 술이 오메기맑은술이다. 제주술익는집은 4대째 이어온 전통방식으로 일체의 첨가물 없이 술을 빚고 있다. 달콤한 맛과 천연의 과실향이 나는 최고급 약주다. 정부의 ‘찾아가는 양조장’에도 선정됐다.

2020년 백곰막걸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약주들. 왼쪽부터 1~5위순.

이 술의 정체성은 산미(신맛)에 있다. 습한 제주도에서 발효 과정을 거친 술들은 육지술보다 전체적으로 신맛이 강하다. 오메기맑은술은 그러나, 이전보다는 신맛을 줄여, 술안주와 무난하게 먹도록 했다. 단맛과 신맛이 적절하다는 평이 많다. 신맛을 꺼리지 않는 술꾼들이 좋아하는 술이기도 하다.

2위 청진주는 경기도 가평의 청정지역에서 좋은 쌀과 물을 사용, 100일 이상 저온에서 발효와 숙성을 통해 완성시킨 프리미엄 약주다. 전통주연구개발원이 소량 생산하고 있다. 한달에 200병만 생산한다. 잡내가 없고 단맛이 적으며, 깔끔한 목 넘김에 술을 마시고 나서도 입에 남는 잔향이 경쾌한 술이다.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은 "청진주는 가평의 유기농쌀과 전통 누룩으로 빚고 100일간 숙성시켜 만들기 때문에 마치 조개가 상처를 진주로 키워내는 과정을 닮았다고 할 정도로 귀한 술"이라고 말했다.

3위 남원 황진이주는 가격이 저렴하다. 약주이면서 막걸리 가격에 마실 수 있다. 백곰막걸리 판매가격이 9000원. 오미자, 산수유, 구기자 등을 넣고도 한약재 느낌보다는 달달한 과실주에 가깝다. 전통주 업계 ‘스테디셀러’ 같은 술이다.

풍정사계 춘은 예로부터 물 좋기로 유명한 청주의 풍정마을 물로 빚은 약주다. 이한상 화양(풍정사계 양조장) 대표가 약주 하나 만드는데 10년을 투자했을 정도로 약주 개발에 애착을 기울였다. 이한상 대표는 "녹두가 들어간 누룩인 향온곡으로 약주를 빚는다"며 "누룩이 제대로 들어갔지만 누룩취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풍정사계 춘은 백곰막걸리의 약주부문에 늘 상위에 오르고 있는 ‘스테디셀러 약주'다. 풍정사계는 약주 외에 과하주(여름), 탁주(가을), 소주(겨울) 등 사계절별로 술을 내놓고 있다.

5위 평창 감자술 역시 8000원으로 저렴. 청와대에서 명절 선물로 지정하기도 했다. 감자 함유량이 27%, 알코올 도수는 13도다. 감자 맛이 도드라지지는 않는다.

◇코로나 영향? 소주 부문에서도 착한 가격대 제품 많이 팔려

◆백곰막걸리 2020년 소주 판매순위

서울의밤은 2019년 6위에서 작년 1위로 점프했다. 매실원주 증류액에 진 원료인 노간주 열매(주니퍼베리)를 첨가, ‘한국의 진'이란 마케팅도 주효했다. 화요, 일품진로 등 고가 소주 시장을 겨냥했다. 알코올도수 25도, 375ml이면서도 화요보다 가격은 40% 가량 낮게 책정했다. 레몬 넣은 칵테일로도 인기.

2020년 백곰막걸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주들. 왼쪽부터 1~5위순.

2위 이강주 25도는 배와 생강, 계피, 울금 같은 부재료가 도드라지는 술로, 조선 중기부터 전라도와 황해도에서 제조됐던 조선3대 명주 중 하나다. 이강주의 재료 중 하나인 울금(생강과 식물)은 전라도에서 재배해 왕실 진상품으로 올렸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전라도 전주 곳곳에서는 이강주를 많이 빚어왔다. 이강주를 빚는 조정형 명인은 전북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으며, 1996년에는 농식품부 식품명인 9호로도 지정됐다.

작년 전통주 시장은 코로나에 위축되지 않고 꾸준히 성장을 이어갔다. 하지만, 작년 11월 마지막주부터 영업시간을 밤 9시로 제한하면서부터는 전통주점 매출이 급락했다. 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에게 코로나 사태의 영향을 물었다.

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전통주 전체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주점 입장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밤 9시까지 영업)가 언제까지 연장될 것인가가 현재 가장 큰 관심사항이다. 9시까지 영업을 제한한 이후 매출이 이전 정상 대비 80%가 줄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영업시간 제한을 하기 전에는 매출이 별로 줄지 않았다. 그런데, 9시까지로 제한하자마자 80%가 빠졌다. 작년 12월의 경우, 백곰막걸리가 평소에는 1억5000만원 정도 매출이 발생하는데 반해, 영업시간을 제한하자 월 매출이 3000만원에 그쳤다. 한달 인건비인 4000만원에도 못미쳤다. 80%인 1억2000만원이 줄어든 것이다. ‘밤 영업시간이 줄면 점심장사라도 해야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술집이 점심장사한다고 사람들이 몰려 오지 않는다."

-사실상 영업시간 3시간을 줄인 것인데.

"줄어든 것은 3시간(이전에는 밤 12시까지 영업하다가 9시로 3시간 단축영업)이지만 테이블 회전율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7시반만 넘어가면 손님이 거의 새로 안온다. 음식 주문하고, 10분 정도 기다렸다가 나온 음식과 술을 제대로 즐기려면 2시간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되니까 테이블 회전이 사실상 안된다. 이전에는 밤 8시, 9시, 10시가 돼도 손님들이 꾸준하게 들어오는데, 9시까지 영업제한한 이후에는 그게 전혀 안된다. 9시까지 제한한 것은 주점 영업의 맥을 끊은 것이나 다름없다.

주말에는 새벽영업을 해왔는데, 이럴 경우 평일 매출의 2~3배에 이르렀는데, 이제는 주말도 9시까지만 영업하니, 평일보다 매출이 나을 게 없는 구조다. 바 스타일의 주점은 아예 문을 닫은 곳이 허다하다. 밤 9시 넘어서야 영업을 시작하던 곳인데, 9시까지만 영업하라니 버틸 재간이 없다. 영업시간 제한 지침이 앞으로 한두달만 더 연장될 경우 주점들은 치명적인 손실이 불가피하다. 2월에 설 명절이 있어 그 전에 영업시간 제한이 풀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2020년 백곰막걸리에서는 비교적 착한 가격대의 제품들이 많이 팔렸다.

-전통주 전체 시장은 어떤가?

“전통주 시장 자체는 커지고 있다. 블루오션이다. 인터넷에서 전통주를 살 수 있는 온라인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고, 전통주를 취급하는 보틀샵들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신생 양조장들도 속속 등장하는 추세다. 전통주를 만들거나 취급하는 주점 등에 젊은층의 진입도 많다. 정기적으로 술을 배송해주는 술 구독 서비스도 확대일로에 있는 등 전통주 비즈니스에 IT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플랫폼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를 활용한 마케팅도 활발하다. 백곰막걸리를 창업한지 이제 6년 됐는데, 이미 ‘구닥다리’ 대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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