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인 범인에게 전 재산 600억원을 남깁니다 [김민정의 도쿄 책갈피]
[경향신문]
신카와 호타테
<전 남친의 유언장>
본격 미스터리 문학상인 제19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수상한 신카와 호타테의 <전 남친의 유언장>은 28세 변호사 레이코의 모험과 성장을 그린 소설이다. 1월 초 발간됐으며 아마존 미스터리 부문 1위를 유지 중이다.
대형로펌에서 2억원 넘는 연봉을 받으며 일하는 레이코는 남자친구가 카르티에의 500만원짜리 반지로 청혼한 것이 영 맘에 들지 않아, 왜 2000만원짜리 해리 윈스턴을 가지고 오지 않았느냐고 또박또박 따진다. 남자친구에게 큰 실망을 한 속물근성의 그녀에게 이번엔 회사가 뒤통수를 때린다. 팀워크가 부족하다며 보너스를 절반으로 깎아버린 것이다. 경영진에게 이딴 회사 그만두겠다며 큰소리를 치고 뛰쳐나간 레이코는, 문득 잘생긴 남자에게 위로를 받고 싶다는 마음에 자기가 아는 남자 중 가장 잘생긴 남자인, 과거 남자친구에게 문자를 보낸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레이코는 일명 ‘김치녀’로 치부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은 그녀의 속물적인 부분들을 현실적인 감각으로 이끌어 가면서, 막무가내 변호사의 좌충우돌 분투기로 승화시킨다.
문자를 보낸 것도 잊고 지내던 어느 날, 레이코는 전 남친 에이지가 독감으로 사망했으며, 범인에게 전 재산 600억원을 남긴다는 기묘한 유언을 했다는 메일을 받게 된다. 더불어 에이지의 절친 시노다가 레이코를 찾아와, 에이지에게 독감을 옮긴 사람이 자신이라며 유산 상속자라고 주장한다. 결국 레이코는 시노다의 대리인으로 에이지의 가족을 찾아가게 되고, 재벌 가족의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어떻게든 유산을 받아보려는 레이코의 의도는 점점 범인 찾기로 흘러가는데….
<전 남친의 유언장>의 수상 이유로 심사위원들은 캐릭터가 선명하고, 살인자에게 유산을 남긴다는 발상이 독특하며, 문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주인공 레이코는 대부분의 일은 돈으로 해결된다고 믿으며, 자신이 똑똑할 뿐만 아니라 눈에 띄는 미모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초반부에는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이다. 남성 독자들의 첫 반응도 절대 여자친구로 사귀고 싶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 하지만 돈으로 대부분의 일이 해결된다는 지론을,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서 거짓으로 치부할 수만도 없다. 진범을 찾아야 할지, 독감을 옮긴 사람이 자신이라고 우기는 시노다를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돈을 위해 후자를 택하지만, 진범에 대한 호기심도 버릴 수 없는 인간적 면모로 독자를 점점 사로잡는다. 게다가 이 소설에는 에이지의 전 여자친구들이 서너 명 더 등장하는데, 낮말은 새가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처럼 그녀들이 간직한 비밀이 에이지 죽음의 단서가 된다. 그녀들은 유산을 더 받기 위해 서로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간호사·비서 등 자신의 커리어의 노하우로 죽음을 밝히는 데 한몫하며, 돈독한 연대를 보여준다.
신카와 호타테의 직업은 변호사다. 도쿄대를 졸업하고 변호사 사무소에서 일을 하다 소설을 써야겠다는 결의에 퇴사하고 <전 남친의 유언장>으로 화려하게 등단했다. 1991년생인 그녀는 한국 소설의 등장 이후, 맥을 못 추는 일본 소설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김민정 재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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