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벌거숭이 임금님' 이야기

황주리 기자 입력 2021. 1. 22. 11:40 수정 2021. 1. 2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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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황주리

황주리 화가

자본주의 미술시장 명암 상존

작가라면 마음의 근육 길러야

잘못됐다고 깨닫는 그 순간

진실을 말하는 게 어려운 일

이 세상의 ‘난사람’가운데서

‘벌거숭이 임금’ 얼마나 많은가

L 화백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가이며, 한국 작가로는 가장 비싼 그림 값으로 많은 화가로부터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분이기도 하다. 화상들로부터 늘 그의 그림은 호흡과도 같아서 가짜 그림이 나올 수 없다고 본인이 장담한다는 후일담도 종종 들어오던 터에, 몇 년 전 그의 가짜 그림 시비가 불거져 언론에 오르내리자 미술계는 혼돈에 휩싸였다. 얼마 전 TV에서 L 화백 가짜 그림 논란에 관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주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1980년대 중반쯤인가 어느 평론가가 L 화백의 그림을 선 몇 개 그어 놓고 식견 있는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는 꼴이라며,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에 비유하는 글을 써서 논란의 대상이 됐다. 그 시절 화가 초년생이던 나는 남의 그림을 그렇게 함부로 재단하는 건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나며 예술의 자유를 폄훼하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우리 대학 시절의 장발 단속이나 미니스커트 경범죄 처벌처럼 닫힌 의식의 연장 선상에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사실 그 평론가의 의식 세계가 너무 닫혀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당시 L 화백은 주로 일본에서 활약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었지만, 대중적 인지도는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그림은 한국의 부유한 컬렉터들이 가장 선호하는 그림이 됐다. 그의 그림 한 점 이상은 가지고 있어야 명품 그림 컬렉터로 알아줄 정도다. 세계적인 대가의 가짜 그림 시비는 미술에 문외한인 보통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이제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벌거숭이 임금님’이 다시 떠오른 건 죄 없는 L 화백의 그림이 아니라, 어떤 이유든 가짜인 증거들이 차고 넘치는 그림을 다 자신이 그린 진짜 그림이라고 말하는 그를 언론에서 마주친 뒤부터다. 그의 그림만 가짜가 있겠는가? 저명한 화가의 그림은 다 가짜가 있다. 2차대전 당시 진짜 기술 좋은 가짜 그림 장인이 만든 피카소, 마티스 등의 1급 가짜는 그 자체로 인정돼 비싸게 팔렸다 한다. 명품 백에도 가짜의 급이 있듯 명품 그림도 그럴지 모른다.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수많은 그림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1980년대 미국 현대미술의 전설, 흑인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요즘 다시 보면서 마음이 착잡해졌다. 80년대 후반 뉴욕에 도착한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화가가 장 미셸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이다. 1970년대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미술에 출사표를 던진 두 사람은 그 시절 가장 자유로운 예술의 기수들이었다. 마침 나도 그들과 같은 또래라 하루아침에 부와 명예를 거머쥔 그들이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바스키아가 지독한 고독과 마약중독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걸. 1988년 약물중독 쇼크로 바스키아가 숨졌고, 2년 뒤 해링이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다. 고독하고 가난했던 빈센트 반 고흐의 비극적 숙명을, 부유하고 유명했던 훨씬 젊은 그들도 따라갔다. 바스키아가 스물일곱, 해링이 서른한 살이었다. 그로부터 삼십 년이 꿈처럼 지나갔고, 나는 사후에 거장이 된 그들을 추억한다. 내가 좋아하는 어느 스님의 법문마따나 이루려고 애쓰고 지키려고 애쓰다가 사라져서 허무한, 누구나 인생의 종착점은 다 눈물이다.

천경자 화백은 생전에 가짜 그림 시비 논란이 터지자 가짜를 진짜라 한다고 분노했는데, 그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미술계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화가인 나로서는 텔레비전을 보며 내 그림이 아니니까 아니라고 하지 하는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다 사정이 있을 테지만, L 화백의 경우는 그 반대다. 잘나가는 작가를 만들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자본주의 미술 시장 경제의 밝음과 어두움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길게 살아남는 법에 대해, 작가라면 마음의 근육을 길러야만 할 것 같다. 하긴 어디 예술뿐이랴. 정치도 사업도 학문도 다 그럴 것이다. 언젠가 터질 일은 터지고, 일이 터지면 그 일에 대처하는 자세가 곧 실력인 시대가 도래했다. 그 실력의 밑바닥엔 반드시 그 마음과 정신의 격이 존재할지 모른다.

문득 초등학교 시절 수업 시간에 따분하게만 들리던 ‘든 사람, 난사람, 된 사람’의 개념이 떠오른다. 지금 이 세상은 ‘든 사람’ ‘난사람’의 수난 시대다. 아무리 잘나 봐야 발 한번 잘못 디디면 하루아침에 공든 탑이 무너지는 사회이다. 그 시절에는 그저 따분하게만 들리던 그 정의가 급속히 변화하는 지금 이 시점에 갑자기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유는 무얼까? 잘못됐다고 깨닫는 그 순간부터 더 늦기 전에 가장 진실에 가까운 말로, 세상의 나침반이 바르게 돌아가게 하는 편에 서는 사람이 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당해 봐야만 알 터이다. 그가 정치인이든 기업인이든 종교인이든 고위 공직자든 간에, 이 세상의 난사람들 가운데서 멋있는 옷을 걸치고 있는 줄 아는 벌거숭이 임금님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며칠 전 본 영화의 제목이 마음에 들어 메모해 두었다. ‘이름 없이 가난하고 아름답게’.

세상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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