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으로 우주를 개척한다고?

김진철 2021. 1. 2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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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X·블루 오리진·버진 갤럭틱 3파전 집중 조명
'억만장자들의 놀이터' 너머 보이는 '인류의 담대한 도전'

우주를 향한 골드러시: 왜 세계 최고의 부자들은 우주로 향하는가

페터 슈나이더 지음, 한윤진 옮김/쌤앤파커스·1만8000원

이른바 ‘서학개미’들이 주목하는 미국 기업이라면, 테슬라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 개인투자자들이 미국 전기차 회사에 투자하겠다고 줄을 서는 장면이 더는 놀랍지 않은데, 이미 현실이 된 전기차를 넘어 테슬라의 주인공 일론 머스크가 앞장서는 우주개발에도 관심을 갖는 이들이 적지 않다. 머스크는 2002년 스페이스X(엑스)를 설립하고 로켓 개발에 뛰어들었다.

유통업계에서 디지털 혁신을 일군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는 머스크의 경쟁자다. 놀랍게도 베이조스가 머스크보다 앞서 시작했다. 그가 세운 블루 오리진은 2003년 중반에야 알려졌지만, 회사가 만들어진 것은 2000년이었다. 머스크의 강한 개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스페이스X의 행보처럼, 블루 오리진 역시 베이조스 스타일이다. 스페이스X의 개발 계획은 지속적으로 ‘자랑스럽게’ 공개되어왔지만, 블루 오리진은 그게 무엇이든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일이 드물다.

항공우주업계에는 또 하나의 스타가 있다. 머스크보다 훨씬 더 요란한 인물, 리처드 브랜슨의 버진 갤럭틱이다. 항공사 버진 애틀랜틱을 비롯한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 화려하고 기이한 언행으로 유명한 브랜슨은 2004년 버진 갤럭틱을 설립하며 우주관광 사업에 본격 투자를 시작했다.

스페이스X, 블루 오리진, 버진 갤럭틱 등 이름부터 미지에 도전하는 신비로운 이미지로 가득한 이들 기업만 보면, 우주 산업은 억만장자들의 놀이터처럼 보인다. 머스크, 베이조스, 브랜슨의 유명세로 뒤덮인 경쟁은 흥미진진하다. 특히 소셜미디어(트위터)만 봐도 그렇다. 비밀주의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베이조스가 2017년 들어 같은 해 중반까지 소셜미디어에 200개의 글을 올려 블루 오리진을 설명했는데, 같은 기간 머스크는 3500개의 글을 올렸고, 브랜슨의 관련 게시글은 1만7000개가 넘었다. 소셜미디어에서도 이들의 화려한 우주 전쟁이 펼쳐진 것이다.

그러나 우주산업의 판을 이들이 과점하고 있다고만 본다면, 중요한 것을 놓친 것이다. 이들 외에도 소형 위성 수송을 위한 마이크로 런처 로켓 개발, 소행성 광물 채굴 사업, 우주 호텔 건설, 군집 위성 사업 등에 대형 기업은 물론 스타트업도 뛰어들고 있다. 독일 과학저널리스트 페터 슈나이더가 지은 <우주를 향한 골드러시>는 억만장자들의 우주개발 경쟁을 중심에 놓고 다양한 디지털 첨단 기술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우주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정리한다. 저자의 특정한 주장이나 철학을 앞세우기보다, 지금껏 진행되어온 우주개발의 도전과 실패, 성취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독자 앞에 내놓은 책이다.

책은 미국 항공우주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억만장자 머스크와 베이조스, 브랜슨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밖에도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인 폴 앨런, 인터넷 인베스트먼트구루의 주리 밀너,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팔 공동창업자 피터 틸, 구글 알파의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등도 우주산업에 투자 중인 디지털 사업으로 일어선 억만장자들이다. 전세계 400대 갑부 명단에 오르지 못하지만 풍선처럼 부풀릴 수 있는 우주정거장 모듈 개발에 투자하는 미국 호텔 체인 소유주 로버트 비글로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가운데 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좀 더 단출한 결투”를 집중 조명한다. 베조스와 머스크는 대형로켓을 개발해 화물탑재량을 늘리기 위해 애쓰고 있고, 앨런과 브랜슨은 중형 로켓 발사를 위한 비행선을 개발 중이다. 브랜슨과 베조스는 인류 역사 최초의 우주여행 상용화를 목표로 경쟁하고 있으며, 비글로는 아직 경쟁자 없이 사업 확장을 할 수 있는 우주정거장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이들의 목표는 하나다. (…) 우리가 우주 그리고 다른 천체에서 거주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억만장자들이 꿈을 이루기 위한 경쟁보다 더욱 눈길이 가는 대목은 책의 중반부에 등장한다. ‘마이크로 런처’다. 대기업들의 대형화물수송 로켓 격전에 가려져, 500㎏ 이하의 소형화물수송 로켓인 마이크로 런처 경쟁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대개 지구 저궤도용 소형위성을 실어나르는 로켓이다. 지금까지 이 분야는 작은 규모의 틈새시장에 그쳤으나, 디지털 혁명에 따라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해왔다. 저자가 ‘로켓 힙스터’로 명명한 스페인의 라울 베르두와 라울 토레스는 2011년 ‘PLD스페이스’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해 소화물용 소형로켓을 개발하고 있다. 자체 엔진을 보유한 이 회사는 올해 소형로켓 발사 계획을 갖고 있으며, 이미 1000억유로가 넘는 금액의 예약을 접수했다. 노르웨이 출신의 크리스토퍼 릴랜드가 설립한 리플 에어로스페이스는 소형로켓인 ‘씨 서펀트’를 개발 중인데, 수소와 산소만을 연료로 삼아 수중발사되는 방식을 채택해 환경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스페인의 또다른 스타트업 제로2인피니트는 대형 기구를 활용해 공중발사하는 소형로켓 블루스타를 개발 중이다. 우주산업 분야에서 스타트업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것은, 로켓을 개발해 쏘아올리는 비용이 천문학적 수준에서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저자가 직접 언급하고 있진 않지만 이 책을 관통하여 흐르는 관심사는 ‘인류의 담대한 도전’이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 억만장자들이 허영 어린 야심을 이루기 위한 ‘쇼’로만 항공우주산업을 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인류의 미래를 위한 우주개발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점점 좁아지고 뜨거워지고 자원이 고갈되는 지구를 대체할 광활한 우주는 충분히 도전해야 할 대상이다.

중요하고 흥미진진한 정보가 집대성된 책이지만, 아쉽게도 곳곳에서 오탈자와 오역, 비문의 흔적들이 발견된다. 비교적 간단한 실수인 오탈자는 쇄를 바꾸며 바로잡으면 되겠지만, 미 항공우주국(NASA)의 부국장을 ‘부사장’(107쪽)이라고 번역한 것을 작은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스페이스X가 쏘아올린 팰컨9의 제1단은 2016년 4월8일 우주 경계에서 지구로 귀환한 뒤 처음으로 대서양 해상에 뜬 플랫폼에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쌤앤파커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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