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펙트'를 내세워 더 감동적인 '싱어게인'

아이즈 ize 글 이주영(칼럼니스트) 2021. 1. 2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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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글 이주영(칼럼니스트)


요즘 JTBC '싱어게인'이 심심찮게 회자되고 있다. 트로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소멸해나가던 상황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시청자들이 '싱어게인'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뭘까?

 

한 동안 오디션 프로그램에 시큰둥했었다. 과거 '슈퍼스타K'의 화려한 영광과 더불어 오디션 프로그램은 춘추전국시대 마냥 우후죽순 생겨났었다. '보이스 코리아' ''위대한 탄생' K팝스타' 등은 물론 크고 작은 프로그램까지 더하면 셀 수 없을 만큼의 경연 무대들이 있었다. 심지어 뮤지컬과 성악을 넘어 트로트에 다다르기까지 오디션의 스펙트럼은 무한 확장을 해나가던 터였다. 


하지만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이에게 (근래 몇 년 간 지속되고 있는 트로트 열풍을 제외하면) 이 같은 경연은 시즌을 거듭하며 꽤나 식상해져 버린 그냥 그런 프로그램으로 인식되었다. 이 많은 무대들이 가져온 수용자론 적 소회는 “대한민국에는 노래 잘하는 이들이 끝없이 도출되는구나!”라는 것. 그뿐이었다. 물론 이 역시 참가자들의 반복적인 오디션 출연 서클이 생겨나며 그 감탄사를 내뱉는 것마저 지쳐버릴 정도였다.



이 와중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부제가 ‘무명가수전’이라고 했다. 그래 봤자 또 ‘계속 돌고 돌던 이들이 출연하겠지’라며 한 켠에 밀어뒀다. 그러다 어느 날 한영애의 ‘누구 없소’를 기타 치며 노래하는 펌 헤어 청년의 영상과 마주했다. 조금 구미가 당겼다. 이런 친구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이라면, 꽤나 마이너적 음악 취향을 담보한 필자도 볼 만한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싱어게인'을 IPTV 유료 ‘다시 보기’ 프로그램으로 시청하기 시작했다. 이내 ‘톱10 결정전’의 아홉 출연자가 확정되는 최근 방영분까지 섭렵했다. 말 그대로 정주행이었다. 마음에 꼭 드는 몇몇 출연자가 있었고, 예전 오디션 프로그램을 볼 때처럼 문자 투표를 한다면 응원하고픈 출연자도 생겼다. 곰곰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지금껏 오디션 프로그램이 식상하다는 이유로 찾아 보지 않다가 갑작스레 '싱어게인'은 전회를 다 볼 정도로 애정이 생겼을까? 이에 대한 현상학적 질문이었다. 몇 가지 결론이 도출되었다.


가장 먼저 '싱어게인'은 수도 없이 생겨났다 사라진 오디션들의 단점을 과감히 배제했다는 점이다. 그 중 가장 큰 부분이 개인사를 구구절절 읊조리며 동정을 갈구하거나, 누군가를 논란의 중심에 세우며 본질과 동떨어진 분노를 유발시켰던 부분들을 도려내어버렸다. 시쳇말로 ‘악마의 편집’이라 일컫는 제작진의 의도된 기획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출연자들의 과거는 분명 드러나지만 이름 없이 (조금 인정머리 없기는 하지만) 무명씨로 등장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이 능동적으로 그들에 대해 알아나가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덧붙여 '불후의 명곡' '슈가맨' 등과 같이 의외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지녀온 ‘기존 곡에 대한 노스탈지아’ ‘그때 그 노래를 부른 사람이 있었지’ 등과 같은 요소들을 차용해왔다는 것도 돋보인다.




이 중에서도 필자가 가장 높게 사고 싶은 건 문화적 용어로서 흔히 사용되는 일종의 ‘존경(Respect)’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유희열을 필두로 한 이선희, 김종진 등의 시니어 평가단과 규현을 선두로 한 송민호 등의 주니어 평가단 모두 참가자 한 명 한 명을 단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동료 가수의 한 명으로 바라본다. 흔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지켜봤던 ‘공기 반 콧소리 반’이라던가, 멘토링을 통해 그를 가수로 만들어야겠다는 학습적 요소가 없다는 말이다. 과거 대중에게 알려졌던 가수지만 현재는 잊혀버린 인물, 곡은 유명하지만 누가 부른지를 당최 모르는 보컬, 대체 무슨 음악을 하며 존재했었을지 가늠하기 어려운 늪 속의 진주들이 한 데 어우러져, 단지 자신의 이름을 언젠가 당당히 밝히기 위해 무대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 최선의 열정은 방송사가 인위적으로 가공하지 않은, 스스로의 노력으로만 빛을 발한다. 그러니까 명언을 남기는 심사위원이 빛을 발하는 게 아니라 본선 무대에 진출한 71인의 (우리에게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인) 아티스트들에게 최대한 예우를 바치고 있다. 이점이야 말로 '싱어게인'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리라. 그 결과 '싱어게인'은 생소한 오디션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월 18일 9화 방송분 기준) 시청률 8.2%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아마도 톱10이 결정된 이후의 방송분에서 더 상승하지 않을까라는 예측도 조심스레 해본다.


각설하고 이제부터 필자는 매주 월요일 밤 10시 30분이면 ‘신선한’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을 ‘본방 사수’하기 위해 TV 앞에 자리할 것이다. 록 밴드 전성 시절, 외인부대의 임재범, 시나위의 김종서가 솔로로 나와 활개쳤던 시절을 상상하며 29호를 응원한다. 어쩌면 국내판 에드 시런이라 (지극히 개인적으로) 추론하는 63호의 변주를 기대한다. 또 인디와 메인스트림의 경계를 넘나들 가능성을 지닌 30호의 럭비공 같은 예측 불가 무대를 반길 테다. 마지막으로 ‘공대생 너드’라 불리는 26호가 자신의 이름을 밝힐 무대로 진출해주길 바라기도 한다. 또 다른 출연자들도 멋진 무대를 펼쳐주기를 기원한다.



나는 의도적으로 출연자들의 신상을 검색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프로그램이 가진 의도에 부합해 수용자가 스스로 행할 수 있는 실천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들의 이름이 떳떳하게 밝혀지는 무대에서부터 그들의 과거 작업물들을 찾아볼 심산이다. 물론 이들이 스테이지 위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호명된다 해도 그들의 추후 행보의 성공에 대한 확답은 없다. 뮤지션은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또 자신의 곡을 내세웠을 때 비로서야 완성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껏 수 많은 오디션에서 ‘화무십일홍’처럼 피었다 지는 출연자들을 숱하게 보아왔다. '싱어게인: 무명가수전'의 목표는 이름없는 이들의 이름을 전국에 알려주는 것이다. 그 후부터는 아티스트의 역량과 재량으로 무시무시한 음악계의 정글을 헤쳐 나가야만 한다. 평가단 중 한 명인 작사가 김이나가 30호를 마주하며 “우리는 관객과의 소개팅을 주선해주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만일 이것이 '싱어게인'의 목표라면, 현재까지는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이주영(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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