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라는 다름과 함께해야 할 기술 [책과 삶]
[경향신문]
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지음
사계절 | 368쪽 | 1만7800원
사이보그. 기계를 몸에 결합하거나 이식한 유기체를 일컫는 말이다. 영화 <아이언맨>의 하이테크 슈트를 착장한 주인공 등 우리는 흔히 막강한 기술력으로 초인적 힘을 갖게 된 영화 속 슈퍼 히어로에서 사이보그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SF소설가 김초엽, 변호사 김원영은 “우리는 기계와 결합한 유기체라는 점에서만 보아도 ‘사이보그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청각장애가 있는 김초엽은 보청기를 착용하고, 지체장애가 있는 김원영은 휠체어를 탄다. 물론 이 장치들이 이들의 모든 것을 대변하진 않지만, 손상을 보완하는 장치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는 점에서 자신의 삶을 ‘사이보그적’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이 함께 쓴 <사이보그가 되다>는 테크놀로지와 결합한 장애인의 몸을 ‘사이보그’라는 상징으로 접근하면서 인간 몸과 과학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만나야 하는지를 묻는 책이다.
보청기·휠체어와 밀접한 장애인
기계와 결합한 사이보그적 존재
기술을 이용하는 주체여야 하지만
현실에서 ‘수혜자’로만 그려진다
먼 미래만 보는 유토피아 말고
현재를 바꾸는 틈새 기술이 필요
저자들은 과학기술 영역에 깔린 ‘비장애중심주의’를 들춰내며 첨단 기술문명이 제시하는 ‘기술 유토피아’, 포스트휴먼 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기술이 장애에서 인류를 해방시킬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은 장애인의 현재적 삶을 소외시키거나 소비하고 있으며, 그들의 더 나은 삶을 미래로 끝없이 유예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김초엽은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기술은 ‘더 잘 듣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소리를 수어나 문자 정보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먼 미래에 나올 수 있는 최첨단 기기나 치료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지금, 장애를 가진 채로도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장 이동을 위해 경사로가 필요한 지체장애인에게 ‘기술이 언젠가 당신을 걷게 할 것이다’라는 말은 공허할 수 있다.
이렇듯 구체화되지 않은 낙관론은 현실을 지우고 문제 해결을 미룬다. 저자들은 신체적 손상을 ‘장애’로 치환하며 이를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보는, “온정과 시혜로 뒤덮인 시선들”이 오히려 장애인의 현실을 가린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은 기술을 이용하는 ‘주체’가 아니라 온정의 ‘수혜자’로 자주 그려진다. 인공지능(AI) 음성합성 기술로 농인에게 목소리를 찾아주는 TV광고 속에서 가족들은 첫 음성을 듣고 눈물을 흘린다. 김초엽은 광고 속 농인이 ‘목소리’를 얻어 화면 속 자막이 사라지는 순간, 자신은 물론 광고 속 농인조차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AI 기술이 ‘선물’한 목소리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목소리가 아니라 청인들이 청각장애인에게서 듣고 싶어 하는 목소리”라는 것이다. “기술이 장애인들에게 정상성을 ‘선물’하고 비장애인들이 그것을 보며 감동받는” 흔한 구도다. 김초엽은 “장애인 사이보그의 현실에는 눈을 감고, 미래적인 이미지만을 기술낙관주의의 홍보 대사로 내세운” 이런 온정의 서사가 정작 장애와 기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을 지워버린다고 말한다. 바로 이 기술을 사용하는 당사자 장애인의 감각, 혹은 필요다.
저자들은 기술과 연결되면서도 때로 불화하는 현실의 ‘장애인 사이보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빅테크 기업이나 미래학자들이 제시하는 4차 산업혁명의 미래 속 첨단 사이보그 이미지와 달리 실제 기술과 결합해 살아가는 장애인 사이보그는 “복잡하고 위태로운 지면 위에 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과 의학이 손상된 신체 기능을 개선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삶에서 기계와 결합하는 일은 결코 매끄럽지 않으며 어떤 기술은 장애인의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아주 뛰어난 기술이 개발돼도 터무니없이 비싸 소수만이 자신의 신체를 치료 혹은 증강할 수 있다면, 이를 ‘장애의 종식’ ‘기술 유토피아’라 부를 수 있을까. 김원영은 더 나아가 “과학이 장애를 여전히 ‘없음의 상태’(결여)로만 바라본다면 휠체어는 기술적으로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여전히 보행능력 ‘없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보조기기로만 간주될 것”이라고 말한다.
책은 테크놀로지 발전에 대한 손쉬운 낙관을 경계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무용한 것으로도 보지 않는다. 장애를 갖고도 잘 살 수 있게 하는 현재의 노력보다 미래로 희망을 유예하는 ‘치우침’을 경고할 뿐이다. 저자들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생활을 지탱해가는 당사자로서 과학기술을 배제하기보다 그 방향을 설계하는 데 개입할 것을 선택한다.
더 나아가 장애라는 고유한 경험이 과학기술과 만났을 때, 정상성 규범 너머의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재설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매끄러운 질서에 ‘오류’로 등장한 이들을 배제하고 쓸어버리는 대신 “오류가 열어둔 이음새 사이에서 새로운 탐사를 시작”(김원영)할 수 있으며, “모든 사람이 ‘유능한’ 세계보다 취약한 사람들이 편안하게 제 자신으로 존재하는 미래가 더 해방적”(김초엽)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완전함에 도달하기 위한 기술이 아닌, ‘불완전함과 함께 살아가는 기술’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수가 ‘편리’하다고 말하는 곳에서 수많은 어긋남과 불화, 단차를 경험한 ‘장애인 사이보그’가 기술의 틈새에 새로운 ‘이음새’를 띄울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 ‘단차’를 용기 있게 드러낸 이 책은 완벽하기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해방적인’ 미래를 상상하는 시작일 수 있을 것이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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