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1만원으로 부동산 투자 가능케 해 상가 임차인에게도 수익을"

이창훈 2021. 1. 2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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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나은 자본주의' 도전 나서는 허세영 루센트블록 대표

“모든 이에게 소유의 기회를” 루센트블록 홈페이지 문패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소유의 공유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일반인이 소유하기 힘든 고가의 상업용 부동산 지분을 쪼개 1만원 단위 소액으로도 일부를 소유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금융위원회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신청한 상태다.

<사진설명 : 허세영 루센트블록 대표>
허세영 루센트블록 대표는 한눈에도 ‘선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미국의 IT분야 최정상급인 카네기멜론대에서 컴퓨터공학 석사까지 마치고 아마존과 보잉에서 인턴을 했다. 귀국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블록체인을 연구하다가 창업에 나섰다.

Q. 인상은 학자가 더 어울릴 듯 한데.

A. 대학에 계신 부모님과 친척들의 영향으로 학계 진출도 생각했다.

2017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했다.

그 때는 정말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건강은 되찾았지만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고민이 남았다.

남은 인생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미국에 있는 동안 주목해온 문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양극화다.

이윤 추구를 위해서는 불가피하지만 심해지면 시스템 오류가 생긴다.

블록체인을 연구하면서 부자가 혼자만 소유하는 자산을 누구나 쉽게 공유할 수 있게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좀더 나은 자본주의를 만들어내는 일은 충분히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Q. 사업에 뛰어든 동기가 지나치게 순수했던 것 아닌가? 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

A. 2년동안 시행착오가 무수히 많았다.

초창기에 엔지니어만 모여 있다 보니 규제나 법률에 무지했다.

2018년 말 서비스 프로토타입이 완성됐는데 그 다음부터는 할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부동산 지분을 쪼개어 거래할 수 있게 하려면 인허가가 필요하다는 것도 몰랐다.

정말 감사하게도 규제로 인해 사업을 영위하기 힘든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을 위한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시행됐다.

그게 아니었다면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을 것이다.

소비자보호 조치도 큰 허들이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제도권 금융사의 파트너쉽과 법률자문도 필요했다.

Q. 자본주의의 여러 문제 중 특히 부동산에 주목한 계기가 있었나?

A. 서울 성수동 소재 소셜벤처회사를 도와준 적이 있었다.

초창기 성수동은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해 많은 벤처기업이 모였다.

자연히 그 주변에 카페와 음식점 등 상권이 생기고 젊은이들에게 사랑받는 거리문화가 생성됐다.

여기까지는 아름다운 이야기였지만 그 다음 부터가 문제였다.

상권이 뜨면서 임대료가 올라간 것이다.

불모지에서 상권을 만들었던 주체인 카페, 식당 주인들이 높은 임대료를 못 내고 쫓겨나기 시작했다.

당시 성수동에서 코워킹 (공유사무실) 사업을 하시던 대표님이 한 이야기다.

“임대인이 자본과 리스크를 떠안고 투자를 하면 임차인이 건물의 가치를 올려주지만 올라간 가치를 공유하긴 쉽지 않다.

상권의 가치는 임대인만 아니라 임차인도 같이 만들어 나가는 건데 수익 공동체가 되어 이익실현을 같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맹그로브라는 공유주거업체 대표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상권의 가치는 임대인과 임차인이 같이 만드는 건데 정작 활성화 후엔 성과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공간의 가치를 만든 만큼 수익도 공유하는 방법은 없을까?”

현재 맹그로브와는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협업중이다.

주식회사에 투자하듯 임차인도 본인이 장사하고 있는 건물에 소액이라도 투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임차계약이 연장되지 않더라도 본인이 투자한만큼의 지분은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루센트블록은 이런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Q.기업 소재지로 판교테크노밸리나 테헤란로가 아니라 대전을 택한 이유는.

A.첫째 이유는 직장이었던 ETRI가 대전에 있기 때문인데 지금도 ETRI로부터 물심양면의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IT 분야 국내 최고 싱크탱크인 만큼 비즈니스에서도 충분히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판단했고 그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

매년 버스로 지구 반바퀴 이상의 거리를 오갔다.

2020년 한 해 193번 정도 서울과 대전을 오갔다.

미국서 살다보니 버스를 타본 적이 거의 없었어서 처음엔 멀미도 심했다.

버스에서 노트북을 켜고 일하는게 일상이 되다보니 이제 버스에서도 바로 집중할 수 있다. 내리기 전까지 시작한걸 마쳐야 하니 집중력이 높아졌다.

서울에 위치한 기업들은 지하철 몇 정거장이면 이동가능하지만 우리는 한 번 움직일때마다 큰 마음을 먹어야한다. 그러니 남들보다 몇 배 몇 십배 준비를 해야한다. 지방에서 사업을 하는 점은 불편함도 있지만 오히려 완벽과 간절함을 기하게 해준 것 같다.

지역적인 핸디캡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문제는 스타트업에 대한 업계의 홀대였다.

문전박대와 서러움을 당한 적도 많았다.

한번은 미팅을 위해 대전에서 기차를 타고 약속장소로 간 적이 있었다.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졌지만 혹여 늦을까 봐 비를 쫄딱 맞고 도착했다.

그런데 만나기로 한 담당자가 미팅 약속을 잊어버린 채 출장을 간 뒤였다.

‘소꿉놀이’ 그만하라는 비아냥도 종종 들었다.

눈물이 날 것같은 순간들도 많았지만 설움을 삭이면서 비즈니스를 위해 필요한 기업을 계속 찾아 뵙고 인사를 드렸다.

매 순간이 간절했고 그 간절함을 믿어주시고 도와주시는 분들이 하나 둘씩 생겼다.

우리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어떤 프로세스로 금융사가 움직이는지, 어떤 설득논리가 더 좋은지 말씀해주고 도와 주신 분들도 있었고 하나 둘씩 보완할 수 있었다.

Q. 제휴와 투자는 어느 정도 이끌어냈나.

A. 그동안 10여개 금융사와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이 우리 사업에는 IT 엔지니어도 중요하지만 금융, 법률, 부동산 분야의 전문가들도 필요하다고 조언을 해주셨다.

많은 노력 끝에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도 많이 합류하였다.

기술적으로 소비자를 안전하게 할 뿐만 아니라, 법률적으로 구조를 안전하게 해줄 법률 파트너사들도 생겼다.

또 열심히 문을 두드리다보니, 좋게 봐주시는 분들 덕분에 투자유치도 가능했다.

서울대와 ETRI를 통해 전략적 투자를 유치했다.

투자와 맞물려 당사가 필요로 하는 기술들을 국내 최대 R&D기관인 ETRI를 통해 이전받을 수 있었다.

현재 몇 건의 기술이전을 받은 상태이며, 인공지능 기반의 소비자 보호 기술 등에 대한 기술이전도 검토 중에 있다.

서비스 안전성을 위해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부분도 서울대와 ETRI가 함께 할 예정이다.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조력자분들과 조언자분들 덕분에 하나씩 나아가고 있다.

영세한 임차인에게 수익이 돌아가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돈이 오가는 사업이므로 좋은 의도만으로는 사업을 영위할 수 없음을 절감하고 있다.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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