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과학, '장애의 종식' 아닌 '장애와 공존' 추구해야

나윤석 기자 2021. 1. 2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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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가 되다’를 함께 쓴 소설가 김초엽(오른쪽)과 법률가 김원영은 다가올 ‘미래’가 아닌 ‘지금’ 장애인의 삶을 개선하는 과학기술을 고민한다. 이지양 작가 제공

■ 사이보그가 되다 / 김초엽·김원영 지음 / 사계절

휠체어·보청기 쓰는 두 저자

잔고장·염증 등 부작용 주목

高價 장비 빈부격차도 지적

몸을 향상·증강하는 것 아닌

장애인을 중심에 둔 기술 제안

“치료와 회복만이 유일한 길처럼 제시될 때 장애인들의 더 나은 삶은 ‘언젠가’ 기술이 발전할 미래로 끝없이 유예된다.”(김초엽)

“첨단 기술로 무장한 사이보그가 되면 나의 ‘없음’은 정말로 없어질까.”(김원영)

과학소설(SF) 작가인 김초엽과 법률가 김원영은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과학이 장애를 ‘종식’할 것”이라는 기술 낙관론에 의문을 제기한다. 2000년대 초중반 이후 대중화된 장애 권리운동의 자장 안에서 성장한 두 사람은 열다섯 살 전후에 휠체어와 보청기라는 보조기기를 만나 ‘장애인 사이보그’가 됐다. ‘아이언 맨’이나 ‘로보캅’ 같은 대중문화 속 사이보그는 첨단 기술의 최전선에 선 초인적 존재이지만, 현실의 사이보그는 “오래된 전동 휠체어의 배터리 방전을 걱정하는 이들, 3일에 한 번씩 신장 투석기에 접속하고 4시간씩 혈액의 노폐물을 걸러주느라 곤란을 겪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부착된 기계는 “피부를 짓무르게 하고, 염증을 일으키며, 끊임없이 잔고장”을 낸다. ‘완벽한 기술’이 없는 현실에서 ‘완벽한 치료법이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무의미하다. 더욱이 수백,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에 달하는 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라면 과학은 결코 ‘보편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저자들은 묻는다. ‘정상적인 몸’이 되길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더 잘 살아갈 가능성은 없는가. 당장 일상에서 사용하는 기계와 안전하고 편안하게 공존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저자들은 우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에 주목하는 ‘트랜스 휴머니즘’과 ‘포스트 휴머니즘’을 비판한다. 암벽 등반 사고로 다리를 절단한 뒤 로봇 다리를 장착한 휴 허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를 비롯한 트랜스 휴머니스트들은 테크놀로지 발전이 ‘장애의 종말’을 부를 것이라는 기대를 부풀린다. 이들이 상상하는 ‘기술 유토피아’에서 장애인은 ‘기술 낙관주의의 홍보대사’이자 ‘온정의 수혜자’로 동원된다. 여기엔 “정상성 규범에서 어긋난 장애인을 치료를 통해 구원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다. 장애를 ‘교정’의 대상으로 보는 이 관점은 기술철학자 애슐리 슈가 말한 ‘테크노 에이블리즘’과도 연결된다.

김초엽은 이런 비(非)장애중심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청각 장애인이 인공지능(AI)으로 구현한 목소리를 내자 가족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한 광고를 거론한다. “장애인에게 ‘정상성’을 선물하는 ‘따뜻한’ 기술”을 홍보하는 이 영상은 “장애인들이 실제로 기술을 어떻게 느끼는지,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어려움을 맞닥뜨리는지”에 관한 질문을 지워버린다.

저자들이 직접 경험하거나 만난 ‘장애인 사이보그’의 일상은 기술 낙관론이 내세우는 환상과 거리가 멀다. 인공 와우(달팽이관 장치) 시술을 받고도 이명과 두통 등 부작용 탓에 착용을 거부한 사례가 적지 않고, 청력 손상이 있는 성인의 48%는 ‘사이보그 낙인 효과’가 두려워 보청기를 끼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에 저자들은 장애인의 몸을 ‘향상’하거나 ‘증강’하는 기술이 아니라 장애인의 일상을 ‘전환’하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술과 연결되면서도 불화하며 살아가는” 장애인 사이보그들이 불완전한 기술과 몸으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 대목에서 에이미 햄라이와 켈리 프리츠가 2019년 발표한 논문 ‘크립 테크노사이언스 선언’을 소개한다. ‘불구의 기술과학’으로 번역되는 ‘크립 테크노사이언스’는 비장애인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기술이 아니라 장애인들이 자신의 필요를 중심에 놓고 일상에서 기술을 재구성하는 개념이다. 요리의 모든 과정을 소리와 촉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꾸며진 시각 장애인의 주방, 청각 장애인을 위한 문자·수어 통역 서비스, 시각 장애인을 위해 계단의 가장자리를 벽과 대조되는 색상으로 칠한 공간, 휠체어의 용이한 층간 이동을 위해 경사로를 중심에 둔 주택 등이 ‘불구의 기술과학’을 구현한 사례들이다. 저자들은 모든 장애인이 ‘크립 테크노사이언스’를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애인 스스로 지역 사회와 공동체를 ‘땜질’하는 이들 사례는 “불완전함과 함께 살아가는 기술의 단서”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홀로서는 게 아니라 사물들을 연결하는 ‘청테이프’처럼 연립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김초엽은 SF 작가답게 “나와 다른 존재를 탐구하는” SF가 세상을 재설계하는 사고실험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내비치기도 한다. 지금껏 우리가 마주한 적 없으나 다른 생명체가 주관적으로 인지하는 세계인 ‘움펠트’를 경험할 기회를 주는 최적의 장르라는 것이다.

책은 “장애인 사이보그를 이야기하는 것, 기술과 소외를 살피는 것이 결국 모든 이들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적는다. 장애인 사이보그들이 도달할 미래는 언젠가 취약해지고 병들어 의존하게 될 모든 사람이 마주할 내일이며, 누구나 그 미래엔 정상성의 범주에서 밀려난 존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68쪽, 1만78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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