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벌거벗은 공간서 들여다본, 가슴속에만 남겨놓은 꿈

박동미 기자 2021. 1. 2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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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중목욕탕 마니아거든요. 하하. 목욕탕에서 씻는 개운한 느낌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곳에서 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미있기도 해요."

여자들의 '몸'에 얽힌 사연, 고단한 삶, 내밀한 속내가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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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제공

이완의 자세│김유담 지음│창비

“제가 대중목욕탕 마니아거든요. 하하. 목욕탕에서 씻는 개운한 느낌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곳에서 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미있기도 해요.”

여자들의 ‘몸’에 얽힌 사연, 고단한 삶, 내밀한 속내가 있는 곳. 이 ‘금남 구역’은 바깥에선 은밀하지만, 안에서 보면 한없이 개방적이다. 2016년 등단 후, 지난해 첫 소설집 ‘탬버린’으로 신동엽문학상을 받은 김유담(사진) 작가가 여탕을 배경으로 한 신작을 들고 왔다. 드나드는 몸은 가지각색이다. 마른 몸, 살 찐 몸, 상처 난 몸, 매끈한 몸…. 김 작가는 2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지 않은 건강한 시선으로 다루고 싶었다”고 했다. 또, “여탕 내에서 날씬한 몸과 매끈한 피부를 갈망하는 욕망 또한 존재한다는 점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몸은 저마다 꿈이 있다. 이야기는 거기에서 출발한다. “꿈꾸던 것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남은 삶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까.” 이것은 작가 스스로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고, 이번 소설이 보여주는 삶의 면면이기도 하다.

소설 중심에는 엄마(오혜자)와 딸(유라)이 있다. 오혜자는 남편을 잃고 사기를 당한 후 24시간 사우나에서 살며 ‘때밀이’ 일을 한다. 키가 크든 작든, 살이 쪘든 피부가 거칠든, 오혜자는 모두에게 동등한 요금을 받는다. 유라는 끈적거리는 탈의실 바닥에서 잠을 자고, 팬티만 입고 평상에 앉아 만화영화를 보며 유년시절을 보낸다. 이때 어린 유라가 관찰하는 여탕의 풍경은 소설에 재미와 활력을 불어넣는다. 단체로 몰려와 탕 속으로 뛰어들던 유흥업소 언니들, 입시학원 상담 일을 하며 ‘여탕 사회’에서 위세를 부리던 ‘수리부인’, 유통기한이 다 된 우유를 건네주던 사장 아줌마, 유방암 수술을 받아 가슴 한쪽을 절제하고도 당당히 여탕에 출입하던 ‘오 회장님’…. 세상의 ‘성공’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 보이는 여성들의 몸을 보고 자란 유라는, 역시 몸(춤)을 통해 그 곁가지 삶을 벗어나 보려 한다. 하지만 어찌어찌 명문대 무용학과에 진학했어도 날 때부터 ‘주인공’인 것만 같은 동기들 사이에서 유라는 좀처럼 몸이 ‘이완’되지 않는다. 연인과의 친밀한 신체접촉도 어렵다. 삶 자체가 ‘경직’ 돼버린 것이다. 김 작가는 “꿈에 속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해도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않도록. 소설 속 인물들은 ‘꿈은 이루는 게 아니라 품고 사는 것’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품고 있으니 끝난 건 아니라고.

김 작가는 이번 소설을 쓰며 “지난날의 나에게 화해를 청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완의 자세’는 작가 자신을 다독이는 태도이기도 하다. 대부분이 그렇다. ‘내가 꿈꿔온 나’로 사는 인생, 별로 없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을 때 오는 그 순간처럼, 우리 모두 ‘이완의 자세’가 필요하다. “각자의 삶에서 ‘이완의 자세’랄까 ‘이완의 순간’이 어떤 것인지 찾아보시길 바라요.” 192쪽, 1만4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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