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당신은 아침술파? 저녁술파?

한겨레 2021. 1. 22.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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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박찬일의 안주가 뭐라고]

생선찌개. 박미향 기자

저녁 9시 영업 마감이 코로나시대의 표준이 되었다. 술꾼도 거기 맞춰서 음주 가동 사이클이 바뀌었다. 낮술러들에게는 하등 어색할 게 없다. 뭐, 어차피 낮에 마시는데 뭐. 순천시에서는 시민의 낮술 금지령을 내렸다. 코로나 때문인데, 가혹하다. 원래 낮술을 즐기던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예전에 일본 오사카에서 아침 6시나 8시에 여는 술집이 있다고 해서 취재한 적이 있다. 특이한 건, 한국의 이런 술집은 밤새워 마신 꾼들이 최후의 한 잔을 더 마시고 기절하기 위해 찾는다면, 오사카는 그야말로 중독자가 많았다. 문자 그대로 아침부터 마시려고 오는 사람들이다.

노숙자가 흔한 오사카의 슬럼가인 니시나리(西成) 지구에 이런 술집이 흔했다. 사회가 방기한 이들을 위로하는 건 술밖에 없던 것이었을까. 후배와 이 동네를 쭉 돌면서 한 가지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아침 술집, 낮술집이 많은데 간 해독제 파는 집도 많다는 사실이었다. 포장지에 간 그림이 그려진, 과음 후에 숙취해소제로 마시는 물약 비슷한 영양제. 해독해가면서 술을 마시는 이들이 있었다.

나도 고백하자면 아침술을 좋아했다. 청년기에는 밤새 마시고, 아침 해가 뜰 때 쓰린 속에 붓는 소주의 자극을 즐겼다. 아침술은 보편적인 술꾼의 술은 아니다. 이를테면 도박꾼 술이다. 해가 뜨면 도박판은 끝난다. 승자든, 패자든 한잔 마신다. 그게 아침술이다.

아침술이 퇴폐적인 것만은 아니다. 낮과 밤을 바꿔 사는 사람들의 술이다. 밤에 일하고, 낮에 자는 사람들. 한창 옷 경기 좋을 때 동대문 패션타운 언저리에 가면, 아침에 술 마시는 꾼들이 정말 많았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저녁술이었다. 그런 경우는 수산시장이나 청과시장도 마찬가지다. 밤에 시작해서 새벽에 일이 끝난다. 영등포와 청량리 청과시장, 노량진수산시장 등지에는 아침밥 파는 집에서 술을 곁들이는 경우가 과거에 꽤 많았다.

수산시장 안에는 이른바 양념집이라고 부르는 횟집이 아주 많다. 그런 양념집 사이에 시장 상인들이 많이 가는 ‘밥집’이 있다. 일반 손님도 받지만 아무래도 시장 상인을 위해 백반도 싸게 파는 그런 집이랄까. 이런 집에서는 아침에 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손님들이 양대 진영으로 나뉜다. 한쪽은, 밤새 어디선가 놀고 와서 회 시켜서 최후의 한잔을 하는 베짱이파, 다른 쪽은 밤새워 일하고 마감주를 마시는 일개미파.

두 진영 사이에 종종 미묘한 기류가 흐를 때도 있었다. 밤새워 마신 축은 취해서 목소리가 높아지곤 하는데, 일 마치고 백반 시켜서 반주로 한 잔 조용히 마시려는 일꾼들이 그쪽을 슬쩍슬쩍 쳐다보곤 하는 거다. 나는 어느 쪽도 아닌(장 보러 가는 길이었으니 일개미파인가) 상태에서 어정쩡하게 양쪽의 눈치를 보곤 했다.

노량진수산시장이 이전하기 전에는 기막힌 밥집 겸 아침술집이 있었다. 이 수산시장은 한강을 바라보고 길게 누워 있는 모양인데, 기본적으로 1층은 북풍한설이 들이치는 노천이다. 강 반대쪽에 큰 기둥이 있고 그 뒤로 천막으로 대충 비가림막을 한 밥집이 몇 있었다. 노천식당 비슷해서, 영업장이란 게 딱 정해진 것 같지도 않았다. 소주회사에서 나눠주는 파란색 플라스틱 탁자를 대강 수산시장 쪽으로 펼쳐 놓고 영업하곤 했다. 노란 숫자를 자수로 놓은 특유의 중매인 모자 쓴 사내들이 앉아서 잡어찌개에 소주잔을 뒤집는 광경이 참으로 정감 어리게 보여서 나도 쓱 한쪽에 앉아 밥이며 술을 시켜보곤 했다.

잡어찌개라는 게 속칭 잡어만 쓰는 건 아니다. 그날그날 상품성이 떨어지거나 값이 싼 걸 그러모아 끓이는 것인데, 조기새끼, 장치, 오징어며 꽁치, 동태에 더러 멸치까지 별별 생선을 다 먹는다 싶었다.

기억에 남는 건 햇때기(대구횟대·둑중갯과의 바다물고기)라는 생선이다. 햇때기, 횟뜨기 등등 온갖 이름으로 불리는 이놈은 어쩌다 동해에서 노량진까지 올라와서 미처 팔리지 못하고 시장 안 밥집의 찌갯거리로 팔리곤 했다.

동해에 가면, 식해도 많이 담근다. 다른 잡어도 거의 그렇지만, 지금은 많이 안 잡혀서 잡어라는 말이 무색하게 값이 올랐는데, 예전에는 생선 대우도 못 받던 녀석이다. 피곤하고 찌든 속에 다시다 듬뿍 넣은 햇때기 잡어탕 한 그릇을 먹으면 매운맛에 속이 긁히는 게 은근히 좋았다. 쓰린 속에 다시 소주를 부어서 달래고(?) 다시 탕으로 학대하고. 다 내과 의사들을 먹여 살리려는 우리 술꾼들의 의도적 루틴이었다.

코로나시대에도 시장은 굴러간다. 오늘도 어느 도매시장 한쪽에는 일과 후 한잔을 하는 이들이 저녁술 같은 아침술을 한잔 마시고 있을 게다.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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