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넌 누구 편이야?" 짜증나는 정치 편가르기

한겨레 2021. 1. 22.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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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정치 이야기가 싫다.

"(전) 장관 편이냐 총리 편이냐?" "지식인 아무개의 말에 찬성하냐 반대냐?" 따위 질문에 시달리니 짜증이 난다.

여러 해 전 나는 '카이사르는 포풀라레스(populares·민중파)라는 당파에 속했는데 이 명칭은 포퓰리스트(populist)라는 말과 어원이 같다'는 사실을 지적했다가 한동안 항의 댓글에 시달렸다.

정치인 이야기 따위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고도 왜 번번이 대화가 그리로 흐르는지도 불가사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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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김태권의 지옥 여행]

김태권 그림

요즘은 정치 이야기가 싫다. “(전) 장관 편이냐 총리 편이냐?” “지식인 아무개의 말에 찬성하냐 반대냐?” 따위 질문에 시달리니 짜증이 난다. 그래도 투덜대지 말자. 사람들은 정치인 팬질로 오래오래 다투기도 한다고 생각하자. ‘카이사르 대 브루투스’라는 주제로는 2000년을 싸웠다. 카이사르는 독재자가 되려 한다는 의심을 받았고, 브루투스는 그런 카이사르를 암살했다.

카이사르‘빠’들은 브루투스를 용서할 수 없었다. 14세기 초에 <신곡>을 지은 단테가 대표적이다. ‘지옥편’ 제4곡을 보자. “독수리 눈매의 카이사르”는 림보에 있다.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이 갈 수 있는 제일 근사한 구역이다. 반면 제34곡에는 지옥의 밑바닥이 나온다. 머리가 셋 달린 악마 루치페르가 “각각의 입으로 죄인을 하나씩 짓씹어 세 놈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 있다”고 했다. 단테가 보기에 사상 최악의 죄인 셋은 누구인가. 하나는 유다, 다른 둘은 브루투스와 그 동료 카시우스다. 단테 딴에는 예수보다 카이사르를 배신한 일이 나빴던 걸까. 악마는 유다를 “물어뜯기만” 하지만, 브루투스는 물어뜯고 할퀴어 “등 피부가 온통 벗겨지기도 한다.”

브루투스‘빠’도 도긴개긴이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18세기 초에 <걸리버 여행기>를 썼다. 3부 7장에서 걸리버는 그럽덥드립이라는 섬나라에 간다. 여기서는 저승 사람을 불러낼 수 있다. 걸리버는 카이사르와 브루투스를 만난다. “카이사르는 살아생전 자신의 모든 위대한 행동들이, 제 생명을 앗아간 브루투스의 행동에 비교하면 한참 모자란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이건 이것대로 이상하다.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는 견해도 있다. 2세기 초에 플루타르코스는 여러 사람의 전기를 썼는데, 카이사르는 카이사르대로 위대하고, 브루투스는 브루투스대로 고결하다고 썼다. 브루투스가 살짝 더 근사한가도 싶지만, 카이사르 반대파였던 키케로를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로 그려낸 점을 보면 지은이가 어느 한쪽을 편들려는 것 같지는 않다. 프랑스 작가 라블레는 16세기에 <팡타그뤼엘>을 지었다. 제30장을 보면 역사 속 유명한 위인이 모조리 지옥 밑바닥에서 고생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카이사르와 그 맞수 폼페이우스는 배 밑바닥에 역청을 칠하는 힘겨운 노동에 시달린다.

그래도 역시 대부분의 사람은 이 편 저 편을 굳이 나누고 싶어 한다. 미국의 진보적 역사학자 마이클 파렌티는 카이사르 편이다. 21세기 초에 <카이사르의 죽음>이라는 책을 써서, 카이사르는 민중을 위한 개혁가였는데, 보수기득권층에게 살해당했다고 주장했다. 카이사르 지지자는 보수적인 사람 사이에도 많다. 여러 해 전 나는 ‘카이사르는 포풀라레스(populares·민중파)라는 당파에 속했는데 이 명칭은 포퓰리스트(populist)라는 말과 어원이 같다’는 사실을 지적했다가 한동안 항의 댓글에 시달렸다.(만화책에 카이사르를 못생기게 그린 일로도 욕을 먹은 적 있다.)

편 갈라 싸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까도 생각한다. 이 생각 때문에 내 마음이 풀리는지, 아니면 더 무거워지는지는 모르겠다. 정치인 이야기 따위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고도 왜 번번이 대화가 그리로 흐르는지도 불가사의다. 아무려나 말로 싸우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자. 카이사르 때 로마나 단테 때 피렌체처럼 (또 파렌티가 살고 있는 요즘 미국처럼) 이쪽저쪽 피를 보고 싸우는 것보다야.

김태권(지옥에 관심 많은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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