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 드문 민통선 들판서 재두루미 수백마리 '군무'

박경만 2021. 1. 22. 07: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파주 DMZ일원 조사서 300~400마리 관찰
문산-도라산고속도로 건설땐 서식지 파괴
"날씨, 코로나 등 영향 서식양상 변화한듯"
20일 낮 경기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들판에 재두루미 수십마리가 무리지어 먹이를 먹고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 3~4마리씩 가족 단위로 20~30여마리가 월동을 했는데 100마리 이상이 무리지어 찾아온 건 처음 봅니다. 두루미들이 자신들의 서식공간이 파괴되지 않도록 스스로 지키기 위해 모인 게 아닌가 싶네요.”

지난 20일 오전 민간인출입통제구역(민통선) 마을인 경기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통일촌) 들판을 찾은 노현기 파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이 말했다. 재두루미 수십마리는 집단으로 볏짚을 헤치며 낙곡 등을 주워먹는 중이었다. 재두루미들은 인적 끊긴 들녘에서 논을 옮겨가면서 평화롭게 먹이를 먹다가, 가끔씩 인근 통일로에 큰 차량이 지나가면 고개를 치켜들고 긴장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백연리 들판에서만 재두루미 125마리와 두루미 4마리, 독수리 14마리 등 세계적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 140여마리가 관찰됐다.

20일 낮 경기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들판에 재두루미 수십마리가 무리 지어 먹이를 먹고 있다.

앞서 지난 13일 백연리 들판을 찾은 파주환경운동연합과 경남과학기술대 이수동 교수팀은 재두루미 124마리, 두루미 8마리, 시베리아흰두루미 1마리를 관찰한 바 있다. 이 마을 한 주민은 “아마도 아프리카돼지열병과 코로나19로 인해 2년 넘게 관광객과 차량 등이 거의 출입하지 않아 두루미들이 안심하고 들어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이수동 교수팀은 지난달 3일 백연리 들판에서 200~300m가량 떨어진 도라전망대 북쪽 비무장지대(DMZ) 생태조사를 통해 재두루미와 두루미 226마리를 확인했다. 종합해보면, 도라산과 임진강 주변 파주 비무장지대 일원에서는 많게는 300~400마리 두루미류가 월동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백연리 들판은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나들목 후보지여서 머지않아 훼손될 전망이다. 국토교통부가 추진중인 노선대로 고속도로가 건설될 경우 서식지 파괴가 불가피하다고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노현기 국장은 “환경영향평가에서 새들의 영향권으로 분류되는 1㎞ 범주 안에 수백마리 두루미류가 안정적으로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나들목이 들어서면 두루미의 먹이터와 은신처가 없어져 서식공간이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말했다.

20일 낮 경기도 파주시 도라전망대 남쪽 백연리 들판에 재두루미 수십마리가 무리 지어 먹이를 먹고 있다.

파주 뿐만아니라 연천, 철원 등 두루미 주요 서식지들도 민통선 북상, 농경지 축소 등으로 서식환경이 날로 악화하고 있다.

전세계 두루미의 최대 도래지인 강원도 철원은 지난 2010년 양지리가 민통선에서 제외된 뒤 대규모 축사와 비닐하우스들이 무분별하게 들어서 두루미 개체수가 과거보다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20일 낮 경기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들판에 재두루미 한 가족이 먹이를 먹고 있다. 왼쪽은 어린 새.

연천의 경우도 민통선 북상이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망제여울(빙애여울)과 장군여울 출입이 자유로워져 두루미의 집단 서식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연천에서는 지난 15일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와 이수동 교수팀 조사 결과, 두루미 460마리와 재두루미 705마리가 관찰됐다. 지난해보다 각각 100~200마리 가량이 늘어난 수치다.

백승광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 공동대표는 “다른 곳의 서식지가 망가져 두루미들이 그나마 보전이 잘된 연천으로 몰려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개체수가 급증하자 먹이터가 부족한데다 철원의 두루미 탐조대 폐쇄로 사진가 등 방문객이 연천으로 몰려와 서식지의 교란이 심하게 일어나 최근 며칠 새 개체수가 확 줄었다”고 말했다. 연천군은 두루미 서식환경 보호를 위해 지난해 문화재청에 군남댐~필승교 구간을 천연기념물 보전지역으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했다.

20일 낮 경기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들판에 재두루미 수십마리가 무리 지어 먹이를 먹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 쪽 월동지가 훼손이 심한 탓인지 우리나라 비무장지대 일원을 찾는 두루미류 개체수가 해마다 늘고 있으며, 서식 양상도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바뀐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수동 교수는 “올해 서식 양상 변화는 강추위와 벼 수확량 감소로 인한 먹이부족, 아프리카돼지열병과 코로나19로 인한 사람의 이동량 감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이며 정확한 원인은 더 분석해봐야한다”며 “두루미 서식지 개발이나 민통선 축소에 앞서 생태적 측면에 대한 충분한 조사와 보호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서식지가) 훼손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20일 낮 경기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들판에 재두루미 수십마리가 모여 있다.

한편, 지난해 비무장지대 일원에서는 철원 1179마리, 연천 396마리, 파주 51마리 등 총 1626마리 두루미가 관찰됐으며, 재두루미는 철원 4870마리, 연천 507마리, 파주 293마리 등이 관찰됐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이동하는 두루미는 약 2600~2800마리만 남아있으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 ‘멸종위기종’으로 등재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천연기념물 202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6000마리 이상 존재하는 희귀종인 재두루미도 천연기념물 203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두루미류는 해마다 10월 말께 강화, 파주, 연천, 철원 등을 찾아와 겨울을 보낸 뒤 이듬해 3월 러시아 시베리아 습지와 몽골 대초원으로 돌아간다.

파주/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