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은 어떻게 '사회악'이 되었나

허윤희 2021. 1. 2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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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회에서 천연 마약을 자생적으로 재배하고 사용하는 것은 민간에서 누려온 자연스러운 권리였다. 당시 한국 농가에서는 가정상비약이었던 아편을 채취하기 위해 양귀비를 재배하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근대화를 거치며 이러한 민간의 권리는 보건·후생이라는 명목 아래 국가의 권한으로 재설정되었다."

그러면 "마약은 한국 사회에서 새 정부의 수립·안착과 반공이라는 당대의 시대적 과제에 반하는 부정적 이미지로 자연스럽게 인식되면서 더욱 쉽게 금기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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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폰·대마초 등 마약으로 살펴본 한국 근현대사
"군사정권, 집권과 통제 위한 도구로 마약 활용"
1970년대 마약밀수업자를 그린 영화 ‘마약왕’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마약의 사회사

조석연 지음/현실문화·1만6000원

“전통사회에서 천연 마약을 자생적으로 재배하고 사용하는 것은 민간에서 누려온 자연스러운 권리였다. 당시 한국 농가에서는 가정상비약이었던 아편을 채취하기 위해 양귀비를 재배하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근대화를 거치며 이러한 민간의 권리는 보건·후생이라는 명목 아래 국가의 권한으로 재설정되었다.”

<마약의 사회사>는 마약을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살펴본 보기 드문 인문서이다. 신한대 교양교육대학 조석연 교수가 학술논문 ‘한국 근현대 마약문제 연구’, ‘해방 이후의 마약문제와 사회적 인식’ 등을 쓰며 연구한 성과를 바탕으로 집필했다. 개항기부터 1980년대까지 시대별로 어떤 마약이 사회에 널리 퍼지고 마약을 어떻게 단속해왔는지를 톺아본다.

마약은 모르핀, 코카인, 아편처럼 미량으로도 강력한 진통작용과 마취작용을 나타내는 약물이다. 일반적으로 아편, 대마, 코카인,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엑스터시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물질이 의료와 연구 이외 목적으로 남용되는 것을 막으려고 정한 법률상 용어가 마약이다.

시대에 따라 유행한 마약의 종류는 다르다. 전통사회에서부터 사용된 생아편을 비롯해 일제강점기부터 1950년대까지는 그것을 정제한 모르핀과 헤로인 등 주로 아편계 마약이 널리 퍼졌다. 이후 1960년대부터는 메사돈 등 합성 마약이 등장했다. 1970년대에는 대마초 사용이 급격히 확산했고 1980년대에는 각성제류인 필로폰이 한국 사회에서 주요한 마약류로 사용되었다.

마약은 각 정권의 존립과 집권 명분을 확보하는 도구이자 당대 처한 시대적 과제나 위기를 타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6·25 전쟁과 남북의 체제대결 구도 속에서는 ‘전력을 소진하고 적을 이롭게 하는’ 도구로, 경제개발 과정에서는 ‘국가 경제를 좀먹고 사회악을 조장하는’ 도구로, 군부의 사회장악 과정에서는 ‘국가보위’와 ‘사회기강’을 위협하는 ‘반국가적이고 반사회적인’ 도구로 그려졌는데 이는 모두 ‘사회악’의 이미지다.

군사독재체제에서는 “마약을 단순한 개인위생과 공중보건의 문제가 아닌 ‘국민’의 의무와 역할, 그리고 ‘국가안보’라는 국가·사회적 차원의 문제”로 설정하고자 했다. 그러면 “마약은 한국 사회에서 새 정부의 수립·안착과 반공이라는 당대의 시대적 과제에 반하는 부정적 이미지로 자연스럽게 인식되면서 더욱 쉽게 금기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1965년 박정희 정부는 마약을 ‘정치에 기생하는 폭력 집단’, ‘부패 공무원 범죄’와 함께 ‘3대 사회악’으로 규정했다. 마약 처벌과 단속을 크게 강화했다. 보건사회부에서 발간한 <보건사회통계연보>의 마약사범 단속 현황을 보면, 1960년 마약 단속 건수는 168건이었는데 1965년에는 1975건으로 10배 넘게 늘었다. 하지만 마약 예방과 치료·재활에는 무관심했다. 1964년 당시 전국 마약치료소는 10개소뿐이고 전체 수용인원은 400여명에 그쳤다.

책은 1980년대 마약 사회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다 보니 2000년대 신종 마약 범죄 등 최근 마약 변화 추이를 담지 못했다. 하지만 뿔뿔이 흩어져 있는 마약에 관한 검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형사정책연구원 등 국가 기록과 민간인 구술 채록을 모은 자료집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마약’이라는 열쇳말로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도 얻을 수 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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