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박완서의 부엌에서

최재봉 2021. 1. 2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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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10주기 맞아 맏딸 호원숙 에세이 출간
산문전집과 자전소설 개정판 등 출간도 줄이어
꼭 10년 전인 2011년 1월22일 세상을 뜬 작가 박완서의 10주기에 맞추어 그의 맏딸 호원숙이 쓴 에세이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을 비롯해 추모 출간이 줄을 잇고 있다. 사진은 2007년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를 내고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던 박완서의 모습이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호원숙 지음/세미콜론·1만1200원

작가 박완서가 10년 전 오늘 세상을 뜬 뒤, 그의 맏딸 호원숙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서 많은 일을 처리했다. 작가의 장편을 모두 모은 <박완서 소설 전집>(전22권)과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전7권)을 갈무리했고, 대담집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박완서의 말>을 엮었으며,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을 담은 산문집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를 직접 쓰기도 했다. 10주기에 맞춰 나온 <박완서 산문 전집>(전9권, 문학동네) 역시 그의 손길을 거쳤다. 유족으로서 작고한 작가의 문학 세계를 기리고 알리는 일에 관한 한 호원숙은 가히 모범적이라 할 만하다.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은 호원숙이 어머니 박완서의 10주기에 맞추어 내놓은 또 하나의 추억담이다. 어머니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살던 구리 아치울의 ‘노란집’을 물려받아 살고 있는 그는 역시 어머니의 잔때가 묻어 있는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주위 사람들과 나눠 먹으며 그 음식에 얽힌 어머니의 기억 그리고 어머니 박완서의 작품에 묘사된 음식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전작인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에 비하면 어머니로부터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되, 그 과정에서 어머니의 삶 및 문학과 관련성 역시 챙기는 방식이다.

“엄마의 치맛자락에 늘 희미하게 배어 있던 음식 냄새는 여지껏 나를 지탱해주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온한 사랑의 힘이 되었다. (…) 어머니가 떠오르는 그리운 장면은 거의 다 부엌 언저리에서, 밥상 주변에서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렇다. 박완서는 작가이기 전에 어머니였다. 아니, 작가인 동시에 어머니였다. 작가인 어머니, 어머니인 작가였다. 그가 글을 쓸 때의 마음이 자식들을 챙길 때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십수 년 전 지인이 산지로부터 보낸 대물 민어를 혼자서 손질해야 하게 되었을 때 호원숙은 어머니의 마지막 장편 <그 남자네 집>(2004)의 한 대목을 떠올리며 용기를 낸다. 전쟁 직후의 신혼 시절, 시어머니의 지시로 장에 가서 민어를 사 온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민어 해체 작업을 지켜보는 장면이다.

“대가리를 자르고 배 속에서 조심스럽게 알과 부레를 꺼내는 걸 보면서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낚시해온 붕어 배를 가르는 걸 옆에서 구경할 때 생각이 났다. 사물의 안과 밖을 같이 보는 최초의 경험이 그 당시처럼 설레는 경탄으로 되살아났다. 그건 그리움이었다.”

어머니의 소설을 인용한 뒤 호원숙은 이렇게 이어 쓴다. “이런 것을 절창이라고 부르는 걸까? 아니면 명장면이라고 부르는 걸까?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고, 힘이 있으면서도 아련해지는 장면이었다.”

<그 남자네 집>에 나오는 또 다른 음식으로 준칫국이 있다. 역시 시어머니의 지시로 며느리는 동대문시장에 가서 준치를 사 오고, 시어머니가 가시 많은 준치를 손질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식칼을 숫돌에다 푸르게 날이 서도록 갈더니 비늘을 긁어낸 준치 몸에 잔칼질을 하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잔칼질을 하는지 몰랐지만 시어머니의 그 손놀림은 하도 신중하면서도 날렵해서 나는 그저 경탄의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네 집>은 물론 소설이지만, 박완서의 다른 자전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경험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소설 속 장면과 묘사 역시 사실 그대로다. “예로부터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지. 그만큼 맛있다는 소리지만 생선이란 어떤 생선이고 물이 살짝만 가도 맛은 다 가는 법이니까 그 말 믿으면 안 된다”는 소설 속 시어머니의 대사는 “분명 우리 할머니의 어록”이라고 호원숙은 증언한다. 며느리 박완서가 시장에 갈 때에는 어린 호원숙이 엄마의 손을 잡고 같이 갔다. “얼마 안 되는 거리였지만 시장을 보러 갈 때도 한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었으며, “물건 값을 깎지 않았고 악착스레 더 달라고 하지도 않았던 부드럽고 우아했던 엄마” 박완서를 맏딸은 아름답게 기억한다.

호원숙의 아버지(‘땡서방’)는 백화점 안의 가게 문을 7시에 닫고서 30분 뒤인 7시30분이 되면 마루의 괘종시계가 울리는 땡 소리에 맞추듯 집에 들어섰고, 그의 손에는 명동 빵가게의 도너츠와 고로케가 들어 있곤 했다. “우리는 그 온기가 식기 전에 달려온 아버지를 사랑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반세기도 더 전인 1960년대의 이야기다. “그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이 이토록 오래갈 줄이야.” 책 제목이 여기서 왔거니와, 그렇게 퇴근하는 남편을 위해 박완서는 7시 무렵부터 부엌에서 저녁 술상을 차렸다. 그때 종종 식빵 사이에 다진 새우살을 넣어 튀긴 요리 멘보샤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라운데, “그러나 엄마의 글 어디에도 소설 속에도 멘보샤를 만들었다는 언급은 보지 못한 것 같다.” 대신 죽은 남편과의 추억을 담은 어머니의 단편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의 한 대목을 딸은 인용한다.

“그가 보통 때와 다름없이 맛있는 저녁식사에 대한 기대에 한껏 부푼 표정으로 현관에 들어서면 나는 신혼 때처럼 종종걸음으로 그를 마중해 모자 먼저 받아 걸었다. (…) 그러고 나서 풍성한 식탁에 마주 앉으면 우린 더불어 살아 있음에 대한 안타까운 감사와 사랑으로 내일 걱정을 잊었다.”

호원숙의 에세이와 <박완서 산문 전집> 말고도 작가의 10주기를 추모하는 책들은 풍성하다. 호원숙의 후기를 붙인 <그 남자네 집>(현대문학) 개정판, 각각 후배 작가 정이현과 김금희의 서평과 정세랑·강화길의 추천 글을 곁들인 두 자전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개정판(웅진지식하우스) 등이 대표적이다. <그 남자네 집> 후기에서 호원숙은 이렇게 썼다.

“사랑의 기억, 그 사랑을 기억하려고 쓰신 글이구나. 사랑의 기억, 사랑받은 기억, 음악과 시와 아름다운 정원이 주었던 감성이 ‘척박하고 남루한’ 시기를 넘기는 약이었구나. 힘이었구나.”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소설가 박완서의 맏딸인 호원숙 작가가 어머니의 4주기였던 2015년 1월 산문집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를 내고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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