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왔나 했는데 또 강이 있었어요"..국경을 넘은 마음

최윤아 2021. 1. 2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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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여군 출신, 남한 와 보험왕 된 탈북인 등 5명 심층 인터뷰
구류소서 죽을 고비 넘고 인신매매 당해도 "이 힘으로 버텼다"
김미숙(가명)씨는 국경을 넘는 순간을 이렇게 회상한다. “‘삶이냐 죽음이냐’ 잖아요. 이 두 사이를 넘나드는데, 기가 막힌 거예요. 다 왔나 했는데 또 강이 있었어요. 또 강이 있고 또 건너고.” 사진은 중국 지린성 훈춘시에서 바라본 두만강 대교.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절박한 삶

전주람·곽상인 지음/글항아리·1만9000원

“근데 상담사 선생님, 혹시 보험 든 것 있수?”

이수린(가명)씨는 보험왕이다. 인터뷰 도중 ‘병원’ 얘기가 나오자 기회를 놓칠세라 연구자에게 보험 가입을 권하고, 하나원에서 막 퇴소해 “가장 쓸쓸한 밤”을 보냈을 ‘후배’를 살갑게 챙기면서도 ‘보험 하나 들라’는 말은 빼먹지 않는다. 북한에서 나고 자라 배급만 알던 그가, 없던 수요도 만들어내야 하는 자본주의의 최전선 ‘세일즈’에서 이처럼 놀라운 기량을 발휘하는 배경엔 ‘치열한 생의 의지’가 있다.

수린씨는 국경을 넘다가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2004년 한국에 오려다 북송돼 구류장에서 14개월을 보냈고, 두만강을 건널 땐 장마철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죽을 뻔했다. “구류장이라고 있어요. 막말로 ‘똥칸’이라고 해요. 거기서 이렇게 다리도 펴지 못하게, 딱 ‘올방다리’(책상다리)를 요렇게 해가지고 무릎이 다 망가졌어요. (…) 난 그 자리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도 봤거든요. 맥을 탁 놓으면 죽는 거예요. 이대로 나는 죽어도 편안하겠다 하면 끝이에요.”

맥을 탁 놓으면 죽음이었지만, 그는 맥을 더 꽉 부여잡았다. “‘애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 생각을 하니까 사람이 기운을 못 놓겠더라고요.” 그는 기를 쓰고 더 자주, 더 구체적으로 상상했다. 구류장 밖에서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을. 상상은 힘이 있었다. 2006년 그는 남편과 딸 둘을 데리고 남한에 정착했다.

<절박한 삶>은 국경을 넘은 다섯 명의 북한 이탈 여성들의 ‘마음’을 파고든 책이다. 그러나 탈북민의 삶을 다룬 기존의 책과는 조금 다른데, 지은이가 ‘왜’보다는 ‘어떻게’에 집중했다는 점에서다. 심리상담학 연구자인 지은이는 왜 탈북을 결심했는지 그 동기를 묻기보단, 어떤 마음의 힘(내공)이 있었기에 탈북이라는 전 생애를 건 결단을 내리고 감행하며 완전히 다른 세계에 정착할 수 있었는지 집요하게 묻는다. ‘인간의 마음을 보물 상자라고 한다면, 당신의 보석(강점)은 무엇인가요?’ ‘당신을 버티게 한 마음의 자원은 무엇인가요?’ 하나같이 ‘장점’을 조준한 질문들은 인터뷰 상대로 하여금 가만히 자신이 지닌 힘을 들여다보게 한다. “선생님 앞에서 내 ‘백음’(마음의 북한말) 속의 말을 내뱉었다고 하니까 후련해지고 그래요. 나를 돌아볼 새도 없고 그랬는데.” 반대로 독자는 탈북인의 특수한 경험을 ‘구경’하지 않고 수시로 자신을 ‘대입’하면서, 탈북인을 자신과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된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내달리다

‘남으면 죽고, 넘으면 살아서’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이들이 국경을 넘도록 잡아끌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백장원(가명)씨의 세계는 티브이(TV)로 인해 깨졌다. <6시 내고향>을 통해 엿본 한국은 “너무너무 멋있었”다. 40대 초반이던 장원씨는 스무살 언저리인 아들과 딸을 데리고 국경을 넘었다. 그러다 두 번 북송됐고 세 사람이 뿔뿔이 흩어져 수감되면서 딸과는 영영 소식이 끊겼다. 가족에 대한 집착이 심해질 법한 상황이나, 장원씨는 오히려 ‘나의 소중함’을 발견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유교 사상이 강해가지고 나 자신보다 가족을 더 우선시했거든요. (…) 감옥에 딱 들어가 있으니까 내 자식이고 남편이고 다 내 주변에 없는 거예요. 또 넘어오는 과정에서 몸이 많이 상해가지고 아프니까 주변 사람들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 와서는 첫째고 둘째고 ‘나 자신이다’ 이렇게 바뀐 거야. (…) 내가 중요하니까 나를 혹사할 필요는 없다 이거죠.”

영양소 풍부한 좋은 재료 사서 밥 지어 먹고, 수시로 스트레칭하고 부지런히 뒷산을 다녔다. 스스로의 장점을 묻는 말에 “첫째가 긍정적인 마음, 둘째가 체력”이라고 답할 만큼 건강이 좋아졌다. 긍정은 체력이 지탱하니 결국 둘은 하나일 것이다. “나를 버티게 해주는 것은 ‘좋은 데 왔으니까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에요.”

원민형(가명)씨는 북한에서 대원 180명을 통솔하던 여군이었다. ‘꺾이면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다’는 말이 인생 신조일 정도로 강직한 성품을 지녔다. 국경을 넘은 건 제대 뒤인 스물다섯, 중국 갔다 붙잡혀온 동네 친구에게 “중국 식당에서 일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기(인신매매)였고, 여군은 하루아침에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어 조선족 남자에게 “팔렸다”. 남편은 민형씨를 사랑했지만 “팔려갔다는 간판 이력”을 달고 살 수 없었다. 원씨는 딸을 데리고 한국에 정착했다.

자신을 그림으로 표현해보라는 지은이의 요청에 원씨는 “하나원에서도 이런(그림) 상담했는데 우리를 ‘얼라이’ 취급하는구나 안 좋게 생각했다”면서도 태양과 참대(대나무)를 쓱쓱 그려나간다. “내한테서 태양은 딸내미죠. (참대도) 태양이 없으면 살 수 없듯이 서로 의지하면서 굳세게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 그렇습니다.” 딱딱한 말씨에 몽글한 희망이 실린다. 북한 출신 ‘한부모’여서 두 겹의 편견에 갇혔지만 ‘당당함’을 무기로 돌파한다.

“내가 정직하지 않고는 당당할 수가 없어요. 옳은 건 옳다 그른 건 그르다 가릴 줄 아는 그런 게 나를 당당하고 도도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 중국에 있을 때는 ‘앵앵’(순찰차) 소리만 나도 겁나가지고 도망치고 그랬거든. 어디 숨고. 지금은 뭐 지나가도 내가 죄 안 지었으면 당당하고….” 민형씨는 “벽돌에 다 귀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북한과 달리 한국은 “X팔 X팔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 좋다”고 말한다.

“뿌리 없는 삶 때로 서글퍼”

집도 직업도 모두 버리고 미지의 땅에서 삶을 ‘초기화’ 하는 탈북이라는 경험. 이 시간을 통과하고 진짜 ‘센 언니’가 됐지만 이들에게도 아픔은 있다. 다섯 명의 인터뷰 대상자는 약속이나 한 듯 “뿌리 내리지 못한 삶”의 서글픔을 토로한다. “생소한 땅에 심어져” 나부끼는 탈북민을 남한 사회가 조금만 더 포근하게 감싸달라는 부탁이다.

질문과 답이 번갈아 나열된 일반적인 인터뷰와 달리, 인터뷰 당시 지은이의 상황·고민·정서·상념 등이 문답 사이에 불쑥불쑥 끼어드는 독특한 형식이다. 객관을 가장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런 새로운 형식은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곽상인 서울시립대 교수가 제안했다고 한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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