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섹스 이분법 넘는 '신체의 페미니즘'

고명섭 2021. 1. 2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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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페미니즘 철학자 모이라 게이튼스 '상상적 신체' 완역
스피노자 신체관, 새로운 '차이의 정치학·윤리학' 창출 토대
오스트레일리아 페미니즘 철학자 모이라 게이튼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상상적 신체: 윤리학, 권력, 신체성 모이라 게이튼스 지음, 조꽃씨 옮김/도서출판b·2만원

모이라 게이튼스는 페미니즘 이론의 발전에 나름의 중요한 기여를 한 오스트레일리아 철학자다. 특히 페미니즘 이론의 난점 가운데 하나인 ‘젠더-섹스’ 이분법을 넘어서 양자를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평을 열었다. 이 이분법 너머의 지평을 그려내는 작업이 담긴 저작이 1996년 출간된 <상상적 신체>다.

이 책에 서술된 게이튼스의 논의를 따라가려면, 먼저 ‘상상적 신체’(Imaginary Bodies)라는 말의 의미를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게이튼스가 말하는 ‘상상’은 17세기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가 <윤리학>에서 말한 ‘상상’ 개념과 통한다. 스피노자는 말한다. “상상이란 인간 신체의 현재 상태를 가리키는 관념이다. 예컨대 우리가 태양을 볼 때 우리는 태양이 우리로부터 200걸음쯤 떨어져 있다고 상상한다. 태양의 거리를 알게 되면 오류는 제거된다. 하지만 상상, 곧 태양에 관한 우리의 관념은 제거되지 않는다. 정신을 속이는 다른 상상도 마찬가지다.” 태양이 실제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알게 되더라도, 태양으로부터 열과 빛을 받는 우리의 신체는 태양이 가까이 있다는 상상을 벗어버릴 수 없다는 말이다.

게이튼스가 생각하는 상상은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는 이미지다. 그러므로 ‘상상적 신체’란 실재 그 자체의 신체가 아니라 우리가 실제 모습이라고 떠올리는, 이미지가 배어든 신체라고 할 수 있다. 이 상상적 신체는 우리의 현실적 삶을 규정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가령, ‘남성적 신체’나 ‘여성적 신체’를 떠올릴 때 우리는 이미 어떤 상상을 덧붙여 그 신체를 이해하고 거기에 가치를 매긴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상상된 신체로서 살아간다.

이런 전제 위에서 게이튼스가 살피는 것이 페미니즘 내부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된 ‘젠더냐 섹스냐’ 하는 이분법이다. 초기 페미니즘은 여성의 생물학적 성 곧 섹스를 해방운동의 토대로 삼았다. 그러나 1968년 정신분석학자 로버트 스톨러가 <섹스와 젠더>를 출간한 뒤 ‘후천적으로 구성된 성’ 곧 젠더가 여성의 성정체성을 규정하는 범주로 급부상했다.

그 책에서 스톨러는 트랜스섹슈얼 남성이 어머니의 양육 과정에서 성정체성을 후천적으로 획득한다는 관찰을 근거로 삼아, 생물학적 성과 후천적 성의 분리 가능성을 처음 제시했다. 스톨러의 제안은 곧바로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에게 ‘섹스-젠더 분리’ 주장으로 받아들여졌다. 케이트 밀레트는 <성 정치학>에서 이렇게 썼다. “태어났을 때는 성심리학적으로 성별들 간의 차이는 없다. 따라서 성심리적 인격은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것이다.” 이렇게 후천적 젠더가 선천적 섹스와 완전히 분리되게 된다면, 가부장제 아래서 후천적으로 형성된 젠더 정체성을 사회적 교육을 통해 벗어버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이끌려 나온다.

그러나 게이튼스가 보기에, 선천적 성과 후천적 성을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중대한 오류다. 생물학적 성은 사회적·문화적 영향을 받지 않는 중립적인 것인 것이 아니다. 베이튼스가 말하는 ‘상상적 신체’라는 개념을 떠올려보자. 생물학적 성을 품은 여성의 신체 또는 남성의 신체는 백지상태의 자연이 아니다. 이 신체는 이미 문화적 ‘상상’이 배어든 신체다. 게이튼스는 어린 여성이 경험하는 ‘생리’를 예로 든다. 생리는 생물학적 현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당사자에게 수치심이나 불안감 같은, 사회적·문화적 정서를 동반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또래 남자들은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어린 여성들은 경험하는 것이다. 생물학적인 것에 언제나 이미 문화적인 것이 스며들어 있다. ’상상적 신체’ 안에서 섹스와 젠더는 하나인 셈이다.

신체의 성적 차이에 주목하는 게이튼스의 이런 생각은 여성성이 생물학적 본질 속에 고정돼 있다는 ‘본질주의’로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의문에 게이튼스는 생물학적 성이 그 자체로 여성성이나 남성성을 특정한 형태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답한다.

통상 가부장제 아래서 나타나는 이른바 ‘남성적 남성성’과 ‘여성적 여성성’은 신체가 지닌 생물학적 성의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그 신체를 둘러싼 사회적·문화적 상황 속에서 형성되고 산출되는 것일 뿐이다. 사회적·문화적 상황이 달라진다면 남성성 혹은 여성성도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사태를 이렇게 보면, 생물학적 성을 거부할 필요도 없거니와 성적 차이의 발현 양상을 생물학적 결정론으로 이해할 이유도 사라진다. 중요한 것은 생물학적 성을 특정한 ‘남성성’이나 특정한 ‘여성성’으로 만들어내는 ‘상황’을 바꾸는 것이다. 상황이 바뀐다면 남성 신체가 반드시 가부장적 남성성을 체현할 이유가 없게 되고, 여성 신체가 가부장제 지배 아래서 조형된 여성성을 체현할 이유도 없게 된다.

여기서 게이튼스는 페미니즘 운동의 뜨거운 쟁점인 ‘성적 평등’ 대 ‘성적 차이’의 대립으로 눈을 돌린다. ‘섹스-젠더 이분법’에 근거를 둔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이 가부장제 아래서 형성된 젠더를 극복함으로써 ‘성적 평등’으로 가는 문을 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게이튼스가 보기에 이런 생각은 여성과 남성의 ’성적 차이’를 무시한 전략이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 <성의 변증법>에서 ‘생식 능력을 과학기술에 맡겨 여성을 출산에서 해방시키자’고 제안한 것이 그런 경우다. 성을 중립화하자는 파이어스톤의 이런 주장은 남성이 정상·표준이 된 사회에서 여성을 정상화·표준화 곧 남성화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라고 게이튼스는 반박한다.

이런 논의에 이어 이 책은 스피노자의 신체관이 지닌 정치적·윤리적 함의를 살피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스피노자는 이성 중심의 근대 주류 철학과 달리, 신체를 이성보다 열등한 것으로 보지도 않았고 ‘능동적 정신’이 지배해야 할 ‘수동적 자연’으로 보지도 않았다. 스피노자에게 신체는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힘이다. 게이튼스는 스피노자의 이런 신체관을 수용해 새로운 정치학과 윤리학을 창출할 가능성을 타진한다.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에 주목할 경우, 남성 신체에 입각해 주조된 가부장제 정치학과는 다른 ‘차이의 정치학’이 나올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남성 신체를 토대로 삼아 형성된 기존의 윤리학과는 다른 ‘차이의 윤리학’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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