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잃어가는 할머니의 시간을 기록하다

허윤희 2021. 1. 2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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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늘은 집에 간다아! 이따가 나 기다리지 마."

"할머니, 효자동 집 어땠는지 기억나요?" 할머니는 대답한다.

지은 작가는 20일 <한겨레> 와 전화통화에서 "오리와 꽃, 효자동 집을 잘 그리는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을 기록하려고 작업한 그림책"이라며 "이 책을 읽으며 누구나 언젠가 겪게 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의 시간을 어떻게 준비하고 기억해야 할지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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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걸린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 손녀가 그림책에 담아
귀 기울여 듣고 세심히 관찰한 '나이듦'과 작별의 마음

할머니네 집
지은 글·그림/이야기꽃·1만3000원

“나 오늘은 집에 간다아! 이따가 나 기다리지 마.”

매주 금요일 복지관에 가는 날,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손녀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빨간 가방에 가져갈 짐도 챙긴다. 양말 일곱 켤레와 부채, 장갑, 손수건 서너장, 거울, 작은 동전 지갑 하나. 할머니가 돌아가고 싶은 곳은 자식 집에 오기 전 한평생 살았던 ‘효자동 집’이다.

<할머니네 집>은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책이다. 손녀의 시점에서 쓴 노년의 삶과 죽음, 돌봄에 관한 기록이다. 지은 작가가 20여 년 동안 외할머니와 지낸 시간을 바탕으로 그리고 썼다. 책 앞장에는 외할머니가 그린 효자동 집과 오리 그림이 실려 있다.

이야기꽃 제공
이야기꽃 제공

그림책 속 손녀는 “늘 먼 곳을 보는” 할머니를 세심히 관찰한다. “할머니는 지금 어디에 계실까? 마음에 무얼 품고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까? 할머니가 사는 기억의 어디쯤 나도 있을까?” 손녀는 할머니의 마음을 알고 싶어 끊임없이 말을 건다. “할머니, 효자동 집 어땠는지 기억나요?” 할머니는 대답한다. “효자동 집? 마당에, 주목나무랑 대추나무 있었어. 거기 들어가는 대문 있는 데에 울타리.” 19년 전 떠나온 ‘효자동 집’에 관한 기억은 또렷했다.

손녀는 할머니와 지내며 아직 겪지 않은 ‘나이듦’을 생각한다. “점점 허리가 굽고, 자주 사레가 걸리고,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시간”이 늘어나고, “여기가 어딘지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을 알게 된다. 한 해가 갈수록 점점 쇠약해지는 할머니를 보는 손녀는 불안하다. 할머니의 코 밑에 손을 대 보기도 하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팍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인다. 할머니가 없는 집을 그려보며 “떠나간 사람은 모르는, 남아 있는 사람의 시간”도 떠올린다. 그런 작가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책 뒷부분에는 할머니의 방, 할머니의 의자 등을 따뜻한 그림체로 보여준다. 모두 할머니의 손길이 닿은 자리이다.

지은 작가는 20일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오리와 꽃, 효자동 집을 잘 그리는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을 기록하려고 작업한 그림책”이라며 “이 책을 읽으며 누구나 언젠가 겪게 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의 시간을 어떻게 준비하고 기억해야 할지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초등 고학년 이상.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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