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12국만 14조달러, 더 풀린 돈이 부른 묻지마 랠리

신수지 기자 2021. 1. 22.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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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어내는 돈, 자산시장으로 쏠렸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자산 가격 상승세는 올해 초에도 계속 진행형이다. 전 세계 주요 증시는 역대 최고가를 잇따라 경신했다. 한국 코스피는 지난 7일 사상 처음으로 3000선을 돌파했고, 지난 8일 미국 뉴욕 증시에선 다우·S&P 500·나스닥 지수 등 3대 지수가 모두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 우량주로 구성된 CSI300지수 역시 지난 12일 13년 만에 역대 최고치로 마감했다.

심지어 원자재 가격도 뛰고 있다. 국제 유가와 구리 가격 모두 지난해 대비 크게 상승했다. <C1면 Market Data 참조> 가상 화폐 시장도 뜨겁다.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7일 처음으로 4000만원을 돌파했다. 최근 1년새 비트코인 가격은 300% 넘게 올랐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약세를 보이는 자산은 안전 자산으로 분류되는 달러와 금, 미국 국채 정도뿐이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대응을 위해 각국 정부가 푼 막대한 자금이 자산 시장으로 몰리면서 사실상 ‘모든 것의 랠리(everything rally)’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밥 프린스 최고투자책임자는 CNBC에 “각국 정부가 소득 감소분보다 더 많은 돈을 빌려주면서 전례 없는 현금이 쌓이고, 강물처럼 넘치는 유동성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대응을 위해 각국 정부가 푼 막대한 자금이 자산 시장으로 몰리면서 사실상 ‘모든 것의 랠리(everything rally)’가 이어지고 있다.

◇빚 잔치가 부른 ‘모든 것의 랠리'

실제로 주요국의 시중 통화량(M2)은 사상 최대를 계속 경신 중이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신종 코로나 위기 대응을 한다며 초저금리를 기반으로 계속 돈을 퍼부은 덕분이다. 경제전문매체 블룸버그가 집계한 미국·중국·일본·유로존 등 12개 주요국의 M2는 지난 연말 기준 94.8조달러에 달했다. 1년 새 17.4%(14조달러)나 늘어났다.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한 미국의 M2는 지난해 연말 19조72억달러까지 치솟으며 1년 만에 24%(3조6695억달러) 급증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이 수치는 10% 수준에 불과했다.

본래 의도대로면 이 돈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위축된 고용과 생산을 늘리는 데 투자되어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가 장기화하며 가계와 기업의 소비·실물투자 심리가 위축되자 돈이 실물 경제가 아닌 자산 시장으로 쏠렸다. 돈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몇 번이나 사용됐는지 보여주는 지표인 ‘화폐유통 속도’의 하락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2019년까지 1.4를 웃돌았던 미국의 화폐 유통 속도는 지난해 2분기 1.104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고, 3분기에도 1.147에 그쳤다. 경기 부양에 쓰여야 할 돈이 대부분 자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묶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인 0.5%로 인하하고, 정부 정책에 따른 가계·기업 대출이 급격히 늘며 시중 통화량이 폭증했다. 한은이 최근 발표한 지난해 11월 M2는 3178조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82조원(9.7%) 늘어났다. 이 돈의 상당 부분은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전국 주택 매매 거래액은 360조8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10조원 넘게 늘어 2006년 통계 집계 이래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동산 규제가 강화되자 이번엔 증시가 넘쳐나는 돈을 흡수했다. 지난해 3월 10조원 수준이던 국내 증시 일평균 거래 대금은 지난 11일 64조원대에 이르며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높아지는 인플레이션 우려

자산 가격이 폭등하며 미국 월가(街)에선 인플레이션(전반적인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 백신이 공급되고, 조 바이든 정부가 수조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시행하면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가 회복돼 소비가 증가하는데, 펜데믹으로 축소된 공급이 이를 따라잡지 못하면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진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의 기대 인플레이션율(BEI)은 2.1%까지 올라 연방준비제도(연준)의 목표치인 2%를 넘어섰다.

급격한 인플레이션은 자산 시장에 악재다. 미국 연준이 자산 가격 상승의 원동력인 초저금리 정책을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중단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털 CEO(최고경영자)는 CNBC에 “인플레이션이 5~6월 3%에 달할 수 있으며, 금융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증시 낙관론자’로 꼽히는 에드 야데니 야데니리서치 대표도 “모든 자산 시장이 ‘멜트업(Melt-up·자산 버블의 마지막 단계)’을 가리키고 있다”며 “상반기에는 강세장을 이어가겠지만, 하반기에는 인플레이션이 과대평가된 자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시기상조란 의견도 있다. 케빈 니컬슨 리버프론트투자그룹 공동투자책임자는 CNBC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려면 고용이 회복되고 임금이 올라야 하는데 여전히 봉쇄 조치가 계속되고 있어 올해는 힘들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은 2022년의 이슈가 되리라고 본다”고 했다. 리처드 클래리다 연준 부의장은 지난 13일 “인플레이션이 실제로 2%에 도달할 때까지 연준의 금리 인상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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