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세 동시 당선자 "20년 생선 팔던 나, 문학이 살아가게 했다"

이기문 기자 2021. 1. 22.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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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코로나만 아니면 버스 한 대를 대절해 왔을 건데 아쉽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 모두 저보다 손이 부드러우실 겁니다. 악수를 해보면 저보다 억센 손을 잡아본 기억이 없는 것 같네요. 경주 성동시장에서 수산물 장사 20년 하고 지금은 텃밭 가꾸기 15년 차가 됐습니다. 효자 남편에 사 남매 집안 맏며느리로 완고한 시부모 모시고 맞벌이까지 하며 살아야 하는 저에게 늦었지만 문학은 삶의 돌파구였고 위로이고 나를 살게 하는 힘이었습니다.”(동시 당선자 김광희씨)

2021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 왼쪽부터 강우근·김광희·임규연·성현아·소현·조숙경·윤치규·황바울씨. /남강호 기자

2021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 21일 서울 세종대로 조선일보사에서 열렸다. 시 당선자 강우근(26), 단편소설 당선자 윤치규(34), 시조 당선자 황바울(31), 동시 당선자 김광희(64), 희곡 당선자 임규연(21), 동화 당선자 조숙경(49), 문학평론 당선자 성현아(29), 미술평론 당선자 소현(30)씨가 각각 상패와 고료를 받았다. 예년 같았으면 축하객들로 장내가 떠들썩했겠지만,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당선자들과 일부 심사위원들로만 조촐히 진행됐다. 최고령 당선자 김광희씨는 “이제 자식들도 다 컸고 돈 빌릴 일도 없을 것 같다”며 “문학과 함께 남은 인생을 한판 즐겨보겠다”며 상패를 들어 올렸다.

백석예술대 2학년인 임규연씨는 최연소 당선자. 임씨는 “제 인생을 연극으로 표현한다면 이제 막이 올랐다고 볼 수 있다”며 “앞으로 갈등과 위기보다 막이 내리기까지 여정을 긴 호흡으로 달리겠다”고 말했다.

그림책 작가로 활동했던 조숙경씨는 지난해 늦여름 암 수술을 받고 병원과 집을 들락날락하며 글 쓸 엄두를 못 냈다. “갖고 있는 글이라도 신춘문예에 내보지 왜 가만히 있느냐”는 친구 말에 용기를 내어 묵혀두던 동화를 꺼내 다듬었다. 나이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등단한 그는 “운이 없는 작가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2년간 잠 못 자고 만든 열 권의 그림책은 출판사가 파산하면서 제대로 세상에 나오지 못했고, 10년 동안 도전했던 공모전마다 떨어지고 출판사로부터 번번이 거절당했다고 했다. “이 상은 앞으로 포기하지 말고 작가로 살아도 괜찮다는 자격증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은행원인 윤치규씨는 “회사 부장님들뿐 아니라 고객들까지 새해 신춘문예 지면을 들고 찾아오셨다”며 “과분한 행운에 자격을 갖추도록 더 좋은 소설을 쓰겠다”고 말했다. 강우근씨는 “저는 누구에게 말을 거는 것도, 반응하는 것도 어색한 사람이었다”며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는 감각인 이 어색함으로 오래도록 시를 쓰겠다”고 했다.

권지예 소설가가 심사위원을 대표해 격려사를 건넸다. 그는 “코로나 시대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성찰해볼 이 시점에 신춘문예 응모 편수가 전년보다 늘었다는 기사를 보고 반가웠다”고 말했다. “이제부터 무조건 쓰십시오. 패기 있게 자신 있게 쓰십시오. 코로나 걸리지 말고 건강관리 잘해서 끝까지 살아남아 이 시대를 관통하는 예리한 질문을 던지는 작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2021 신춘문예] 시 당선작 '단순하지 않은 마음' 보기

[2021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일인칭 컷' 보기

[2021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부여' 보기

[2021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엄마의 꽃밭' 보기

[2021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삼대' 보기

[2021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나도 심심해' 보기

[2021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작 '이차원의 사랑법 - 박상영론' 보기

[2021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작 '비판의 상실 : 탈정치 사회의 전시가 아파트를 장소화하는 전략'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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