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갚는다는 믿음 사라지면 물가·금리 치솟아.. 경제체력 약한 국가들 디폴트 도미노 우려"
글로벌 전문가 5인 인터뷰
글로벌 경제 전문가와 석학들은 빚의 늪에 빠진 세계 경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Mint가 리처드 쿠 노무라 수석 이코노미스트, 제임스 매코맥 피치(Fitch) 국가신용등급 글로벌 헤드, 우에다 가즈오 도쿄대 명예교수, 마르쿠스 브루너마이어 프린스턴대 교수, 마이클 스펜스 뉴욕대 교수 등 5명에게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향후 예상, 해결책 등을 물었다. 인터뷰는 이메일과 화상 통화, 국제 전화를 이용해 2~3회에 걸쳐 이뤄졌다. 그 내용을 지상 토론으로 꾸몄다.
◇ 빚 규모 못지않게 ‘갚을 능력’이 문제
―현재의 부채 규모, 혹은 부채 비율을 어떻게 보나.
우에다: 일단 정부 부채만 보면, 지금처럼 GDP(국내총생산) 대비 재정 적자 비율이 4%를 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선 빚을 줄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부채가 더 늘어나고 금리가 오르면, 큰 타격을 받을 겁니다.
스펜스: 단기적으로는 관리 가능하겠죠. 하지만 저 멀리서 폭풍우가 몰려오고 있달까요.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무능입니다. 많은 정부가 빚으로 마련한 재정을 (실물경제를 살리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해 빚 갚을 능력을 키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매코맥: 그런 점에서 ‘적정 수준의 부채 비율’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핵심은 부채를 갚을 능력이죠. 빚이 많고 이자율이 높아도 상환 능력이 충분하면 괜찮지만, 상환 능력이 부족하면 (빚이 적어도)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이자 상환 능력은 빚의 규모뿐만 아니라, 경제성장률과 금리, 환율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합니다.
쿠: 민간 부채 문제는 몇몇 국가를 빼놓고는 그리 비관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기업 대출의 경우 자회사의 차입이 모회사의 차입으로도 잡히는 ‘중복 계상(double counting)’된 경우가 매우 많아요. 워낙 복잡해 얼마인지 계산하기도 어렵고요.
이들은 한국의 민간 부채, 특히 가계 부채가 높아진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을 꺼렸다. “한국 상황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다”거나 “내가 언급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이유였다.
―'빚투(빚으로 투자)’가 자산 시장의 과열(버블)을 조장한다는 걱정도 많은데.
우에다: 물가 상승률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금리를 제로(0)에 가까이 낮추면 자연스레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일단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게 되고, (빚을 갚기 위해 부동산과 주식 매각이 이뤄지면서) 과열된 자산 가격도 제자리로 돌아올 겁니다.
쿠: (경기가 여전히 불안해) 돈 맡길 곳이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 등밖에 없어 더 그럴 수밖에요. 과열된 시장은 조정을 겪을 수밖에 없는데, 그 이후가 더 걱정입니다. 버블이 꺼져도 빚은 그대로 남아 있을 테니까요. 세계 경제는 (빚으로 인해) 다시 침체에 빠져들 겁니다.
브루너마이어: 과거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거품 붕괴는 거시 경제뿐 아니라 개별 금융기관의 도산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자산 가격이 부풀어 오를 때 서둘러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점검해야 합니다.
◇빚이 경기 회복과 물가 상승 방해
―초저금리로 인해 빚을 안 내면 바보, 빚을 내면 ‘공짜 점심’(대가 없는 이득)을 누린다는 말이 나온다.
브루너마이어: 맞는 말이죠. 다만, 매우 불안한 ‘공짜 점심’입니다. 금리가 영원히 지금처럼 낮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매코맥: 이렇게 유리한 환경이 영원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빚을 갚기 시작하는 이후가 정말 중요합니다. 이자가 먼저 오를지, 아니면 그전에 빚을 먼저 줄일 수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쿠: 이 기회를 어떻게 살리느냐가 관건입니다. 정부가 풍부한 유동성을 활용해 코로나 사태로 감소한 민간의 경제활동(수요)을 잘 메워줘야 합니다. 하지만 이걸 제대로 하는 정부가 많지 않습니다. 정부 주도 사업의 상당수가 (사업 투자비를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국채의 이자보다도 못한 경제적 가치를 갖는 경우가 흔합니다.
쿠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보스턴과 워싱턴DC를 잇는 앰트랙(Amtrack·미국 철도 회사) 노선을 ‘이자 값도 못하는 정부 사업’의 예로 들었다. 일본의 지방 공항과 한국의 빈 교실 불 끄기 사업 등이 비슷한 사례로 언급된다.
―돈을 아무리 많이 풀어도 물가가 안 오르는 기현상은 어떻게 보나.
매코맥: 일각에선 중국 등 신흥국에서 만든 값싼 물건이 전 세계에 쏟아지면서 물가가 오르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세계의 공장’으로서 중국의 역할이 점차 축소되고, 미국의 달러화 가치도 떨어지면서 물가가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쿠: 최근 국채 금리가 오르면서 물가 상승 우려도 커졌습니다만, 앞으로도 물가가 오르기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빚 때문이죠. 가계와 정부, 기업 모두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이후 부채 규모를 점차 줄여갈 텐데, 이들이 돈을 갚는 과정에서 자금이 실물경제에서 빠져나갈 테고, 물가 상승 가능성은 더 낮아질 겁니다.
브루너마이어: 빚을 갚을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사라지는 순간, 물가가 순식간에 치솟을 수 있습니다. (경제성장으로) 빚을 갚을 능력이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빚이 감당할 수 없게 불어나면 (채권을 사들인) 투자자들의 믿음도 서서히 무너질 겁니다.
◇시장 신뢰 무너지면 ‘폭탄’ 터진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가.
매코맥: 경제성장률이 오르지 않고, 장기 금리(만기가 10년 이상인 채권의 금리)가 오를 때입니다. 투자자들은 점차 정부의 부채 상환 능력을 의심하게 되죠. 이는 지금보다 더 높은 국채 금리를 요구하게 되면서 (빚을 돌려막는) 정부의 이자 부담이 더 늘어나게 됩니다. 부채가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거죠.
쿠: 빚 줄이기(디레버리징)가 시작될 때가 관건입니다. 경기가 정상화되더라도 (빚을 갚느라) 투자와 소비는 자연스레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1990년대처럼, 여러 나라가 빚을 갚기 위해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면서 (전 세계적인) ‘대차대조표 불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에다: 결국 ‘부채 위기'가 발생할 때죠. 정부는 빚을 갚으려 소득·법인세 등 세금을 올리고, 많은 기업이 ‘애니멀 스피릿’(사업을 벌이고 투자를 하려는 의욕)을 잃게 될 겁니다. 높은 세금과 낮은 경제성장률을 피해 우수 인재들이 해외로 빠져나갈 테고요. 많은 국가에서 여러 차례 봤던 광경입니다.
스펜스: 경제 체력이 약한 국가들의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세계은행이나 IMF(국제통화기금)의 지원마저 제때 이뤄지지 못하면 디폴트 도미노(연쇄 국가 부도)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빚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시나리오는.
매코맥: 저금리를 유지하며 성장 속도를 높이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물가가 꿈틀거리면 중앙은행 입장에선 금리 인상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중앙은행이 어느 정도의 물가 상승을 용인할 거라고 봅니다.
우에다: 물가 상승률은 2% 안팎에서 머무르고, 저금리 상태에서 경제성장률을 시장 금리 수준보다 높게 끌어올리는 것이죠.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과거 100년간의 데이터를 살펴보면, 모든 국가가 저금리에서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던 것은 아니에요.
브루너마이어: 코로나 팬데믹이 촉발한 각 분야의 혁신이 건전한 성장으로 이어진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겁니다. 2차 세계대전 직후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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