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40] 영탁이 보낸 장례식 조화
‘추운 겨울 눈밭 속에서도, 동백꽃은 피었어라…’
먼저 간 네가 마지막까지 의지로 안고 있던 그 노래, 가수 ‘영탁’이 부른 ‘내 삶의 이유 있음은’. 요즘처럼 눈바람이 가슴 서리게 휘몰아치면 더욱 생각나. 혹한 같은 투병 속에 너는 동백꽃이 되고 싶다 했지. 결혼을 한 달여 앞두고 암 판정을 받은 너와 아이를 낳은 지 두 달 만에 암 진단을 받은 나. 인생에서 가장 축복받을 순간 비극을 맞은 우리 둘은 짧았지만 정말 친자매 같았어. 삼십 초반, 한살 차이 또래기도 했지만 “언니 뭐 할까요?” 하며 뭐든 적극적인 네가 그렇게 든든할 수 없더라. “언니, 제가 ‘미스터트롯’을 보는데, 정말 정말 좋아하는 가수가 생겼어요.” 창백해질 대로 창백해진 얼굴 위로 붉게 피어오르는 네 빠알간 두 볼과 입술은 이제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가장 아름다운 동백꽃이었어.
우리를 이어준 두 단어 삼중음성유방암, 그리고 영탁.
스물일곱 호주로 떠나 ‘제2의 삶’을 꿈꾸던 나였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지. 그런데 젖은 안 나오고, 가슴이 아이 머리만큼 커지는 거야. 호주 병원에선 젖이 차있는 거라고만 하더라. 고통이 계속됐어. 견디다 못해 한국에 왔지. 암이었어. 들어보지도 못했던 삼중음성유방암.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HER-2 수용체가 없어서 다른 유방암보다 치료가 어렵다고 하네.
정보도 부족하고, 환우분들하고 이런 답답한 이야기도 나누고자 만든 삼중음성 밴드 모임에서 우린 처음 만났지. 그때가 2019년 5월쯤이었지? 유방암 2기였던 너와 3기였던 나는 ‘삼중음성’이란 소수의 목소리를 어떻게 외부에 알릴까 의기투합했지. 환우를 위한 공연과 송년회도 기획했고. 난 블로그에 투병기도 열심히 썼어. 나는 이미 중학교 3년간 백혈병을 앓았고 결국은 이겨냈거든.
환우들이 ‘죽을 병’이라며 그저 절망만 하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와닿는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극복해 나가길 바랐어. 주사 통증은 어떤지, 가슴을 도려냈을 때의 상황은 어떤지…. 암밍아웃(암+커밍아웃·암 환자임을 고백하는 것)을 꺼리는 분도 많지만, 이 병을 견디며 잘 지내는 분들도 많다는 것도 알리고 싶었고. 그럴 때마다 넌 “맞아요. 좋아요”라며 항상 맞장구쳐주었지.
너는 너의 방식대로 ‘제로탁’이라는 영탁 팬카페를 만들었어. 버티는 힘이 됐다 했지. 한 살배기 내 딸이 영탁 ‘찐이야’를 따라 하는 영상을 그렇게도 좋아했던 너였는데…. 어느 날 네가 갑작스레 전이됐다 하네. 그리고 지난해 5월, 파랗던 하늘이 마냥 섧게 느껴지던 날. 그때 보았지. 네 장례식장에 있는 영탁이 보낸 조화. 그전부터, 이후로도 지켜봤지만 영탁이란 사람이 좋은 사람이어서 예쁜 내 동생이 좋아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나도 치료 중 전이로 4기가 됐지만 누워 있을 순 없었어. “언니 잘할 수 있어!”라는 네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지. 우리가 약속했던 삼중음성유방암환우모임 및 후원 단체 ‘우리두리구슬하나’를 드디어 만들었어. 그리고 너한테 꼭 전해야 할 소식! 제로탁 카페 회원분들이 얼마 전 우리 단체에 후원금을 보내주셨어. 앞으로도 보탬 돼 주실 거라면서. 너와 회원분들께 정말 고마워. 이모든 연결 고리인 영탁씨에게도. 네가 여기 없지만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해. 이제 나는 너와 함께 그 동백꽃으로 살아간다. 사랑해. 내 동생.
(‘우리두리구슬하나’를 만든 이두리님과의 인터뷰를 ‘예쁜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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