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미국 사회가 앓고 있는 '중병'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루크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입력 2021. 1. 2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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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출범했다. 화두는 통합이다. 하지만 이미 다들 눈치채고 있듯이 달성하기가 쉽지 않은 목표다. 그 상징적 예가 지난 6일의 미국 의사당 습격이고, 그것에 대한 정치적 입장 차이다. 하원의 민주당은 내란선동을 이유로 트럼프를 2번째 탄핵했지만, 공화당 의원 147명은 의사당 습격 이후 당일 밤에 속개된 선거인단 투표 인준에서조차 반대표를 던졌다. 또한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지지자 7420만명의 절대다수(73%)가 여전히 지난 미국 대선이 부정선거였다는 걸 굳건히 믿고 있다. 소수의 과격분자나 음모론자에 국한된 문제가 결코 아니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보면 미국 사회가 뭔가 중병을 앓고 있다는 강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도대체 어떤 병을 앓고 있을까?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루크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여러 갑론을박이 진행 중이지만 그 첫째 징후는 ‘절망으로 인한 죽음(deaths of despair)’의 증가다. 여기서 절망이라 함은 미래가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자체를 놓아버린 극한적 자포자기 상태를 말한다. 이런 절망에 빠지면 세상에 도움을 구할 힘마저 잃고 아프다는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소리 소문 없이 퍼지고 잘 보이지도 않는다. 약물중독, 자살, 알코올중독 등이 그런 병들이다.

201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이렇게 죽은 이들은 1990년대 후반 이후로 2배 이상 증가했다. 2014년 이후엔 연간 16만명을 상회한다. 특히 고졸 이하의 저학력 40~50대 백인 남성들의 죽음이 유독 크게 증가했는데, 워낙 급격히 늘어나다 보니 2015년 이후로 미국 전체의 평균 기대수명이 오히려 하락하는 기현상이 발생할 정도였다. 트럼프에 대한 지지가 광적인 수준으로 높은 곳일수록 이런 절망으로 인한 죽음이 많다. 이것이 바로 트럼프에 대한 지지자의 숫자가 아니라 지지 강도에 주의해야 하는 이유다.

두번째 징후는 사회의 정보흐름에서 ‘부정편향(negative bias)’이 강화된 것이다. 이미 많은 사회심리학적 연구가 증명하듯 사람들은 긍정적 정보보다는 임박한 파국이나 위기를 강조하는 부정적 정보에 더 주목한다. 일종의 생존본능이다. 뉴스 거리가 되는 건 이런 부정적인 정보들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온갖 소셜미디어들도 부정편향을 이용해왔다. 더 많은 사용자들을 더 장시간 붙잡아 두기 위해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정보를 확대재생산하는 알고리즘들을 개발해온 것이다. 물론 결국은 돈 때문이다. 트럼프 관련 뉴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주류 언론 및 소셜미디어들은 지난 4년간 ‘기승전 트럼프’ 비판 일색이었다.

트럼프는 그런 부정편향을 영리하게 역이용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자신에게 비판적인 주류 언론매체를 가짜뉴스라면서 대립각을 세우면 세울수록 언론매체들은 더 맹렬하게 트럼프를 비판해왔고, 그럴수록 그의 거짓 정보나 주장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자주 확대재생산되어 온 것이다. 일종의 트럼프 비판의 역설이다.

트럼프 현상은 결국 미국 특유의 능력주의와 각자도생의 시장효율성 구조에서 소외되고 낙오한 ‘한심한 실패자들’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통렬한 반격의 의미가 짙다. 트럼프가 가도 트럼프주의는 오랫동안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미국에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미 40만명 이상이 죽어나가고 있고, 절망으로 인한 죽음도 상당히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팬데믹의 진짜 후유증은 경제 반등 이후 수년이 지나서야 그 민낯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절망에 의한 죽음도 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 5~6년이 지나면서 더 급격하게 증가했다. 악화되고 있는 소득 및 자산, 고용 불평등에 대한 중장기 후유증 대책이 필요하고 미국 사회통합의 성패는 그 효과에 달렸다.

한국에서도 이미 고독사 및 자살 등 절망으로 인한 죽음들이 증가하고 있고, 팬데믹으로 인한 고용구조 변화로 많은 이들이 장기간 고통받게 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미국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도움을 청할 엄두도, 소리내어 불평하지도 못하는 그런 약자들에게 패자부활의 기회를 제공하는 중장기적 대책과 지원이 더 활발히 논의되길 바란다. 사회는 유기체와 같아서 특정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을 받으면 받을수록 멀쩡한 사람들의 삶도 비참하고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가족 등 1차 정서공동체의 유지 및 재건에 더욱 세심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물론 사회적 정보 흐름의 ‘부정편향’에 대해서도 더욱 정교한 방지책을 고민해야 할 때로 보인다.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루크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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