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늘] 늙은 말
[경향신문]
줄곧 서 있는 행위는 직립보행의 인간에게는 깨달음을 위한 구도나 고행을 떠오르게 한다. 박찬원 작가는 돼지와 말 등 동물에 대해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사진 작업을 해오고 있다. 박찬원의 사진에는 동물들에 대해 관찰자의 모습이 아니라 동료의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다. ‘루비아나’는 미국에서 태어난 경주마였다. 은백색으로 빛나던 자태가 세월이 흘러 빛을 잃으며 퇴색해가고 있었다. 일곱 번의 대회에서 뛰어난 기량을 펼쳤고 은퇴하자 한국으로 건너와 종자를 번식하고 노년의 삶을 살다가 갔다.
말의 수명은 사람보다 훨씬 짧다. 말의 자연수명이 약 21세인데 ‘루비아나’가 숨질 때 나이는 열일곱이었다. 말은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일어서며 6개월이면 어미로부터 독립을 한다. ‘루비아나’는 두 살 때 경기에 첫 출전을 해서 세 살 때부터 우승을 했고 일곱 살에 은퇴를 한 뒤 여덟 살에 제주도에 씨받이로 팔려왔다.
박찬원 작가가 ‘루비아나’를 만난 것은 그가 마지막 생을 마감하기까지 7개월의 시간이었다. 병이 들어 안락사를 고려하는 중에 만나게 되어 자연사할 때까지 함께하게 된다. 작가는 한때 빛나는 추억을 안고 있는 늙은 명마와 함께하면서 그에게서 같은 생명체가 가지는 소외와 고독과 슬픔을 느낀다. 평소 예민한 감정을 가진 말이 비와 천둥과 눈보라 속에서 무념무상으로 꼿꼿이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경외심을 갖게 된다. 죽음을 맞아서야 비로소 땅을 디디고 있는 발이 무너져 내린다. 그 숭고하고 결연한 자세에 숙연하지 않을 수 없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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