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법감시위, 법원 판결에 반박

이성훈 기자 2021. 1. 22. 03: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법원 권고 따랐는데 이재용 실형 "승계 포기보다 더한 조치 뭔가"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수감을 결정한 파기환송심 재판 결과에 대해 강력히 반박했다. 준법감시위는 21일 정기회의 후 입장문을 내고 “판결 이유 중 위원회의 실효성에 관한 판단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명히 다르다”고 했다. 또 “삼성 준법 이슈의 핵심인 경영권 승계 문제 해결을 주문했고, 이 부회장은 4세 승계를 포기했다”며 “위법 행위를 차단하는데, 이보다 더 실효성 있는 조치가 무엇인가”라고 했다.

준법감시위는 파기환송심 재판장을 맡은 정준영 판사가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를 양형 사유로 고려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작년 2월 출범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준법감시위가 실효성을 충족하지 못했고, 새로운 (부패) 위험 예방·감시에 한계가 있다”며 이 부회장에게 2년 6개월 실형 선고와 함께 법정 구속했다.

이 부회장과 준법감시위는 향후 활동을 지속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부회장은 재수감 나흘 만인 21일 변호인단을 통해 내놓은 첫 메시지에서 “준법감시위원회의 활동을 계속 지원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위원장과 위원들께는 앞으로도 계속 본연의 역할을 다하여 주실 것을 간곡하게 부탁한다”고 했다. 준법감시위도 “판결과 상관없이 제 할 일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의지와 별개로 앞으로 준법감시위의 역할과 위상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준법감시위 “李부회장, 우리의 권고 받아들여 이행중”

삼성준법감시위는 이재용<사진>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위원회의 실효성’을 문제 삼자 21일 입장문을 통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준법감시위는 “위원회의 의지와 무관하게 평가받았다”며 “출범 이후 척박한 대내외 환경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바람직한 준법 경영 문화를 개척하기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여 왔다”고 했다.

◇준법위 “승계 문제에 근원적 치유책 주문”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18일 “준법감시위가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위험을 정의하고 이에 대비한 선제적 예방 및 감시 활동을 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에 대해 준법감시위는 “삼성에 경영권 승계 문제에 대한 근원적 치유책을 주문했다”고 했다. 준법감시위는 출범 직후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 논란 사과’와 ‘무노조 경영 등 노사 관계 문제 사과’ 등 4가지 요구를 했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은 주변 참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작년 5월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며 “제 아이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준법감시위는 “경영권 승계에 관해 과거의 위법 사례와 결별하고 앞으로 발생 가능한 위법행위를 원천 차단하는 방안으로서 이보다 더 실효성 있는 조치가 무엇이냐”고 했다.

준법감시위는 또 지배구조에 대해서도 “위원회가 합리적 개선안을 검토하고 있던 상황”이라며 “(삼성) 내부에서 최고경영진이 준법 이슈를 다루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했다. 현재 삼성그룹은 준법감시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컨설팅 회사에 지배구조 개편 관련 용역을 의뢰해 진행 중이다.

준법감시위뿐 아니라 법조계에서도 재판부의 판결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판부는 준법감시위의 실효성 문제를 언급하며 “준법감시위가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재판을 받고 있는 사안에 대해 준법감시위가 나서서 조사를 하는 것은 자칫 재판 개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준법감시위 “활동 지속”… 위상엔 물음표

준법감시위는 앞으로 활동을 지속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준법감시위는 21일 입장문에서 “1년 가까운 위원회 활동을 통해 보람과 성과가 없지 않았다”며 “삼성 안에 준법이 깊게 뿌리 내리게 하는 데 더욱 매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 위상이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우선 삼성 준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 부회장이 부재(不在)한 상황에서 활동해야 한다. 준법감시위 입장에선 가장 중요한 감시 대상이 사실상 사라져버린 셈이다. 또 경영권 승계와 함께 무노조 경영도 폐기함으로써 승계와 함께 삼성 준법 경영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해소됐다. 재계 관계자는 “중요한 이슈들이 사라진 만큼, 준법감시위가 스스로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준법감시위의 입지도 불안정하다. 준법감시위는 삼성 전자·물산·생명 등 주요 7개 계열사와 협약을 맺고, 준법감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주주나 사외이사와 달리 법적 실체가 모호한 상황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다. 활동이 기업 경영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도 있다. 준법감시위는 이미 발생한 불법을 적발하는 것을 넘어서 발생 가능성이 있는 불법 요인을 예방하는 역할까지 하겠다면 기업의 경영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카이스트 이병태 교수는 “인수합병이나 노사관계에서 불법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어떤 결정을 할 수 없다면, 기업은 손발이 묶일 수밖에 없다”며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준법감시위가 삼성 경영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