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진 PD "스포츠가 좋아 시작한 일, 최초의 여성 현장 디렉터 꿈" ['유리천장' 뚫은 킴 응, 한국 야구에도 있다 (6)]

김하진 기자 2021. 1. 2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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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진 SBS스포츠 PD

[경향신문]

이경진 SBS스포츠 PD가 프로배구 현장에서 중계방송에 내보낼 화면들을 고르고 있다. 이경진 PD 제공
스포츠 중계 PD 중 유일한 여성
성별 이유로 차별받은 경험 있어
야구팬과 감정을 공유하는 매력
화면 구성 지휘하는 ‘1호’ 되고파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는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남녀노소 경기장 직접 관람이나 TV 중계를 통해 야구를 즐긴다.

하지만 현장에는 아직도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이경진 SBS스포츠 PD는 현직 스포츠 중계 PD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다. 프로야구 한 경기 중계를 위해서는 거의 40명의 인력이 투입된다. PD 3~4명을 비롯해 기록원, 캐스터와 해설위원, 그리고 중계차의 기술을 담당하는 기술감독, 카메라감독, 아나운서 등이 현장으로 나선다. 이 중 여성 인력은 많아야 3명 정도 꼽힌다. 아나운서가 현장에 오지 않거나 기록원이 남성일 때면 이경진 PD가 유일한 여성이 된다.

이 PD는 “처음에는 굳이 이런 현상을 ‘유리천장’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나 싶을 때도 있었다. 주변에서 여자의 몸으로 일주일 내내 출장을 다니고 하면 힘들지 않겠느냐고 물어볼 때도 가끔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야구 현장에 여성 PD가 없는 것 자체가 ‘유리천장’에 대한 답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오로지 스포츠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는 “원래는 다른 직종에 있다가 적성에 안 맞는다고 생각해 스포츠 관련 일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1년 대구 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면서 KBS N 스포츠에서 프리랜서로 PD를 채용한다고 하더라. 그것을 시작으로 PD 일을 하게 됐고 야구 현장에도 투입됐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으로 시작해 정규직이 됐고, 이제는 11년차 베테랑이 됐다.

동료들과 중계방송을 하는 장면과 그라운드에서 일하는 모습. 이경진 PD 제공

이 PD가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를 끌어준 여자 선배들이 꽤 있었다. 그는 “KBS N 스포츠 같은 경우에는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 4명 정도 여자 PD가 있었다. SBS스포츠로 옮겼을 때에도 5명의 여성 PD가 있었다”면서 “그런데 연차가 적을 때는 현장 위주로 다니다가 연차가 차다 보면 점차 다른 부서로 옮기기 시작했다. 결혼해 아기를 낳고 육아휴직을 다녀오고 나면 현장 가는 게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의 크고 작은 고충을 아는 이 PD는 부서를 옮기는 결정을 한 선배들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 동등한 선에서 일하는 PD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비디오 판독이 처음 도입됐을 때는 심판진과 중계진이 전화번호를 주고받아 연락을 취했어요. 하루는 심판실에 가서 ‘전화번호를 달라’고 문을 두드리고 막내 심판분과 그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 뒤에 있던 심판분이 ‘적당히 하면 되지, 문 열어놓고 옷 갈아입는 중인데 변태 아니냐’고 말하더라고요. 내가 남자였어도 저런 말을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 PD는 또 올스타전 취재 중 선수 인터뷰를 위해 라커룸에 찾아갔다가 ‘본인이 남자라고 생각하면 들어가라’는 한 선수의 ‘불쾌한 농담’을 듣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PD는 자신만의 꿈을 키워나간다. 이 일만의 매력이 현장을 떠날 수 없게 만든다. 이 PD는 “시청자는 내가 보여줘야 TV를 통해 중계를 볼 수 있다. 만약 어떤 선수가 정말 아쉬움을 느낄 만한 상황에 승부욕 넘치는 표정을 짓는다면 그걸 내가 잘 담아야만 화면으로 나간다. 야구팬들과 그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이 PD의 꿈은 현장을 지휘하는 ‘디렉터’가 되는 것이다. 현장 중계팀은 디렉터의 지휘 아래 화면을 구성해간다. 이 PD는 “내가 알기론 여자 PD가 야구장에서 디렉터를 한 사례는 아직 없다. 내가 최초가 아니더라도 스포츠 채널 PD로 한 번 정도 해보고 싶은 일”이라고 밝혔다.

김하진 기자 h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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