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군인 호위 속 선서.."집에 가는 기분" 백악관 입성 [미국 바이든 정부 출범]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2021. 1. 21. 21: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워싱턴특파원이 지켜본 취임식 풍경

[경향신문]

전 대통령 등 1000여명 참석…‘노예 후손’ 흑인 여성 시 낭독
백악관 집무실서 “트럼프 관대한 편지 남겨” 내용은 비공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정식 취임한 20일(현지시간) 수도 워싱턴은 축하 열기보다는 긴장감이 압도했다. 취임식장 인근은 축하 인파 대신 철조망과 무장한 병사들이 에워쌌다. 공교롭게도 취임식이 진행되는 동안 날씨도 눈발과 햇발이 교차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인들 앞에 놓인 갈등과 모순에 찬 숙제를 암시하는 듯했다.

연방의회 의사당과 맞은편에 솟은 링컨기념관 사이에 길게 뻗은 내셔널몰은 대통령 취임식 때마다 축하객들이 몰리는 워싱턴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이날 아침에 찾은 내셔널몰은 사실상 거대한 요새로 변해 있었다. 내셔널몰 북쪽 컨스티튜션 애비뉴와 남쪽 인디펜던스 애비뉴를 따라 3m는 족히 돼 보이는 높다란 철조망이 설치됐다. 철조망 안에선 무장한 주 방위군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경계를 섰다. 내셔널몰 잔디밭에는 100만 인파 대신 50개주를 대표하는 19만1500여개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개를 데리고 철조망 밖을 따라 산책하던 한 남성은 “취임식을 가까이서 보지 못하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면서 “미치광이 트럼프가 물러나서 기쁘다”고 말했다. AFP통신은 “워싱턴은 무장 기지의 디스토피아적인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약 1000명의 취임식 참석자들은 모두 마스크를 썼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명품 정장을 차려입은 고위급 참석자들 중에서 등산용 점퍼에 알록달록한 털장갑을 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패션이 눈길을 끌었다. 1월에 열리는 미국 대통령 취임식은 춥고 바람이 많이 불기로 악명높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부부에 이어 바이든 대통령 부부가 취임식에 입장하는 순간 얕은 눈발이 날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햇발이 내리쬐었다.

취임선서에 앞서 치러진 의식을 담당하는 이들은 다양했다. 국가를 부른 가수 레이디 가가는 평화를 상징하는 금색 비둘기가 올리브 가지를 부리에 문 모습이 새겨진 상의를 입었고, 라틴계 가수 제니퍼 로페즈는 미국인이 사랑하는 포크송 ‘이 땅은 너의 땅’을 불렀다. 공화당원인 컨트리 가수 브룩스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열창했다. 통합과 화합을 염두에 둔 인물 선정이었다.

해리스 부통령에 이어 취임선서를 한 바이든 대통령은 오전 11시52분부터 21분간 취임사를 했다. 특유의 짧은 문장과 호소력 있는 표현이 담긴 연설이었다. 취임사가 끝난 후 노란색 코트에 빨간 머리띠를 한 22세 흑인 여성, 어맨다 고먼이 ‘우리가 오르는 언덕’이란 축시를 낭독했다. 그는 자신을 “노예의 후손이자 홀어머니 손에서 자란 깡마른 흑인 소녀”라고 지칭하며 미국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대통령이 되길 꿈꿀 수 있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백악관 계단 오르는 바이든 부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0일(현지시간) 취임식을 마치고 부인 질 바이든 여사와 함께 백악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워싱턴 | EPA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식 후 포토맥강 너머 알링턴 국립묘지로 향했다. 빌 클린턴·조지 W 부시·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가 무명용사 묘지 헌화에 동참했다. 이어 46대 대통령을 뜻하는 ‘46’이란 번호판이 붙은 대통령 전용자동차 ‘비스트’를 타고 백악관으로 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인근에서 차에서 내려 가족들과 함께 짧은 퍼레이드를 했다. 그는 기자들이 기분을 묻자 “집에 가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군 의장대의 영접을 받으며 백악관에 입성한 바이든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행정조치 15건 서명이었다. 서명에 앞서 취재진을 집무실에 불러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결단의 책상’에 친필 편지를 남겼다고 소개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아주 관대한” 편지를 남겼다고 했지만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링컨기념관에서 관객 없이 생중계된 취임 축하공연에서 인사말을 하고 돌아온 바이든 대통령 부부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워싱턴 밤하늘을 수놓자 백악관 블루룸 발코니에 나와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선거운동 기간 그가 “미국을 정상으로 돌려놓겠다”면서 수없이 말했던 ‘취임 첫날’ 일정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