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세헤라자데가 들려주는.. 21세기 버전 천일야화

한소범 2021. 1. 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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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하룻밤의 이야기, '천일야화(千一夜話)'는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페르시아부터 인도까지 지배했던 샤리와르 왕은 처녀와 하룻밤 잔 뒤에 처형을 일삼았다. 여자가 거리에서 사라질 정도로 샤리아르의 학살이 그치지 않자 대신의 딸이었던 세헤라자드는 일부러 왕과 결혼한 뒤 매일 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무려 1,000일 하고도 하루 동안 이야기를 들은 왕은 어느새 마음이 누그러져 학살을 중단하고 세헤라자드와 결혼했다.

부커상 수상작인 '한밤의 아이들'을 비롯해, 마술적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살만 루슈디의 이야기는 그를 오늘날의 세헤라자데로 만들었다. 문학동네 제공

살만 루슈디의 ‘2년 8개월 28일의 밤’은, 우리 시대의 세헤라자드인 루슈디가 또 한번 새롭게 들려주는 자신만의 ‘천일야화’다. 앞서 1991년 로스엔젤레스와 인도 카슈미르 계곡 마을을 이은 ‘광대 샬리마르’(2005), 16세기 인도 무굴제국과 르네상스시대 피렌체를 이은 ‘피렌체의 여마법사’(2008)에서 보여줬듯 다시 한번 시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다만 과거와 과거, 과거와 현재를 이었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에는 지금으로부터 천년이 흐른 31세기의 후손이 오늘날인 21세기를 되돌아보며 서술한 연대기다.

이야기 설정은 단순하다. 어느 날 큰 폭풍우가 일고 인간세계와 마족세계 사이를 잇는 통로가 뚫리게 된다. 악한 마법사인 흑마신들이 이를 기회로 인류를 노예로 삼기 위해 인간세계로 침입하면서 세상이 혼란에 휩싸인다. 한편, 마계와 인간세계의 틈새가 벌어진 틈을 타서 마족의 공주인 두니아 역시 지상으로 돌아온다. 두니아는 12세기 무렵 인간 세계에 잠시 머무르며 철학자인 이븐루시드와 사랑에 빠졌고, 둘 사이에서 많은 아이를 낳는다.

인간과 마족의 혼혈인 이 후손들은 모두 ‘귓볼’이 없다는 특성을 갖고 있었고, 두니아는 세계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자신의 후손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해서 땅에서 몸이 솟아오르는 정원사 제로니모, 자신이 그린 그림이 형상을 가진 실체가 되어 나타나는 그래픽노블 작가 지망생 지미, 주변 사람들의 부정부패를 단번에 알아내는 아기 스톰, 번개를 쏘아 연인을 단죄하는 여성 테리사까지, 인간세계를 마족의 손아귀에서 탈출시킬 ‘어벤저스’가 구성된다.

이렇게만 보면 우리가 흔히 접해온 미국의 슈퍼히어로 영화 혹은 환상소설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이븐루시드’의 후손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야기에 또 하나의 겹이 덧대진다. 이븐루시드는 12세기에 실존했던 이슬람 철학자로,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사상을 계승해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종교와 철학 둘 다 동일한 진리에 도달함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서로 결함되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은 정통파 신학자와 일반인으로부터 백안시 당했고 말년의 이븐루시드는 급진 신학자들에게 감금당하는 박해를 받는다.

이 같은 이븐루시드의 상황은 살만 루슈디의 개인사와도 얽힌다. 알려져 있듯, ‘루슈디’는 그의 아버지가 이븐루시드를 기리며 지은 성이다. 루슈디가 1988년 발표한 ‘악마의 시’는 이슬람교의 탄생 과정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듬해 이란의 지도자인 호메이니는 이 작품이 이슬람교와 무함마드를 모독했다며 작가를 처단하라는 종교 법령 ‘파트와’를 선포한다. 1998년 이란 정부가 파트와를 집행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하기 전까지 루슈디는 경찰의 철통 경호망 아래 기나긴 도피 생활을 해야만 했다. 때문에 이븐루시드, 혹은 루슈디가 대표하는 인간계와 마계의 대결은 과학과 신학, 이성과 비이성, 현실과 환상의 팽팽한 힘겨루기에 대한 암시로 읽힐 수밖에 없다.

물론 아무래도 상관없이, 고상을 떠는 대신 각종 비속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걸쭉한 입담과 무한한 상상력을 마음껏 풀어놓는, 이 거장의 이야기에 몸을 내맡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때로는 신랄하고 난폭하며, 황당무계하면서도 설득력이 있고, 진지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쾌락에 탐닉하면서도 순수한 사랑을 믿는 이 이야기가, 아마도 우리가 태초에 이야기에 바랐던 모든 것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없이 되풀이되며 입에서 귀로, 귀에서 입으로, 그렇게 우리에게 전해진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우리에게 전해진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면서 처음에 지녔던 특수성을 잃어버리는 대신에 본질적 순수성을 얻어 이야기 자체만 오롯이 남는다”는, 21세기 세헤라자드의 말처럼.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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