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규홍 PD "포장 벗겨낸 날것의 연애, 사랑의 본질은 언제나 통하니까요"

이혜인 기자 2021. 1. 21. 20:4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짝' 찾는 리얼리티 데이팅 프로그램 '스트레인저' 남규홍 PD

[경향신문]

<짝> 이후로 7년 만에 리얼리티 데이팅 프로그램인 <스트레인저>를 연출한 남규홍 PD는 “ ‘인간의 진짜 사랑이 이거다’라는 본질이 담긴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준헌 기자
연정 앞에서 대책 없이 솔직해지는
번듯한 직업 가진 남녀들의 일주일
대본 없지만 적절한 장치 배치해
출연자가 감정에 몰입하도록 유도
“내 스타일 살린 작품 준비는 계속”

변호사, 의사, 성공한 사업가 등 나름 내로라하는 직업을 가진 남녀 10여명이 한자리에 모인다. 약 일주일간 이들에게 내려진 단 하나의 지상명령은 서로 사랑에 빠지는 것. 서로를 향해 연정을 품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무장해제된다. 잘나가는 한 전문직 남성은 마음을 연 여성 앞에서 불우했던 가정사를 털어놓으며 아이처럼 엉엉 운다. 언제나 차분함을 잃지 않던 한 남성은 구애가 잘 통하지 않자 식사도 제대로 못해 눈에 띄게 말라간다. 이 모든 변화가 단 며칠 만에 일어날 정도로 사랑의 힘은 강력하다. 디스커버리 채널 코리아에서 방영한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 <스트레인저>의 장면들이다.

“포장지에 연연하는 말랑말랑한, 보여주기식 데이팅 프로그램은 만들 생각이 없어요. ‘인간의 진짜 사랑이 이거다’라는 그 본질을 담고 싶은 거죠.”

<스트레인저>는 남녀 10여명이 약 일주일간 함께 살며 사랑을 찾는 생생한 과정을 담았다.

<스트레인저>를 만든 남규홍 PD는 리얼리티 데이팅 프로그램 전문가다. 그는 2011년 3월부터 2014년 2월까지 SBS에서 방영되며 합숙 데이팅 프로그램의 시초가 된 <짝>을 만들었다. <짝>에서 나온 ‘남자 1호’ ‘여자 1호’ ‘도시락 선택’(함께 도시락을 먹고 싶은 이성을 지목하는 것) 등은 인터넷 유행어가 됐고,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됐다.

남 PD가 7년 만에 다시 내놓은 <스트레인저>의 세부구성은 <짝>과는 다르다. 하지만 남녀 10여명이 약 일주일간 한 마을에서 살면서 짝을 탐색하는 핵심은 같다. 프로그램은 지난해 10월14일 첫 방송을 시작해 수많은 명장면을 탄생시키고 지난 13일 종영됐다. 남 PD를 12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데이팅 프로그램 제작기를 들었다.

“제가 가장 잘할 수 있으면서 또 사람들이 저에게 가장 기대하고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데이팅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어요.” 지난해 디스커버리 채널 코리아는 9월 개국을 앞두고 남 PD에게 새 프로그램 연출을 제안했다. 남 PD는 제안을 받고 바로 <스트레인저> 구상에 착수했다. 6월쯤 출연자 모집을 시작해 한두 달 만에 섭외를 완료하고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그는 “<짝> 프로그램의 팬, 마니아들이 꾸준히 있었고, 어렸을 때 시청했던 분들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다”며 “(코로나19 유행 중에도) 출연진 섭외가 어렵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촬영은 코로나19 2~3차 유행이 한창이던 8~12월 진행됐다. 총 세 기수, 남녀 30여명이 운명의 상대를 찾기 위해 <스트레인저>에 나왔다.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동안 남성 출연자들이 보여준 모습이 특히 화제가 됐다. 평생 목표를 쟁취하듯 열정적으로 살아온 까닭에 구애도 너무 열정적으로 하다 삐끗해버린 미스터 윤, ‘썸을 타는’ 상대방 여성에게 자신의 비혼주의 철학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가 하마터면 커플이 되지 못할 뻔한 미스터 서 등이다. 얼핏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구애를 펼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방송 회차가 진행되면서 시청자들은 사랑 앞에서 서툴러도 솔직한 출연자에게 열광하게 됐다.

“면접을 해보면 독특한 개성, 습관을 가졌거나 가치관이 뚜렷한 친구들이 있죠. 그 친구들은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자신만의 색깔을 넣는 좋은 출연자들이에요. 시청자들은 솔직한 출연자들을 결국 사랑하거든요.”

‘날것 그대로의 연애사’를 보여주기 위해 대본은 없다. 맘에 드는 이성을 지목하는 첫인상 선택을 남성이 먼저 할 것인지, 여성이 먼저 할 것인지도 그때그때 촬영장 분위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정한다. 그는 “새가 날려고 해서 날지는 않고, 총 소리가 들려야 날 수 있다”고 비유했다. 출연자들이 상황에 몰입해 사랑을 찾을 수 있도록 적절한 장치들을 배치하는 데 집중한다는 것이다. 편집의 원칙은 ‘포장이 아닌 정직’이다. 남 PD는 “출연자의 치부나 약점 같은 것이라 판단되면 제작진이 앞장서서 편집하지만, 그 외 자신을 거짓되게 포장하기 위해서 편집해달라고 하는 것으로 보이면 수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프로그램의 주제이자 결론은 ‘사랑’이에요. 그 본질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웬만한 장면을 다 공개한다는 정신으로 하죠. 가령 한 출연자가 말한 가정사 이야기를 그대로 보여줬잖아요. 시청자들이 그 출연자가 살아온 과정을 이해하면, 설사 짝을 찾는 과정에서 출연자가 좀 과하게 보이는 행동을 하더라도 왜 그런지 이해를 하면서 좋게 판단할 수가 있거든요.”

큰 사랑을 받았음에도 <스트레인저>는 “제작 이해관계상의 문제”로 예정보다 일찍 종영됐다. <스트레인저>가 시즌2 형식으로 재개되기는 힘들어보인다. 하지만 남 PD는 본인만의 철학을 살린 데이팅 프로그램은 앞으로 또 시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저희의 제작 스타일을 좋아하고 지지해주는 수많은 시청자들을 위해서 작품 준비는 할 것”이라며 “포장, 내용, 껍데기가 변해도 ‘인간의 사랑이 진짜로 펼쳐지는 것’을 담는 본질만 유지한다면 또 통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