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9시 이후 심야배송 못한다, 택배비 인상도 불가피

장상진 기자 2021. 1. 2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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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 '과로사 해법'에 파업 철회.. 택배비 인상은 불가피
21일 서울시내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배송기사들이 택배차에 물건을 옮겨 싣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주도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이하 ‘합의기구’)가 21일 발표한 과로사 대책 1차 합의문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택배사는 그동안 택배기사 업무에 포함됐던 ‘택배 분류 작업’을 떼어내 자동화하거나 전담 인력을 배치해 시켜야 하며, 택배기사에게 그대로 맡길 경우에는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또 택배기사에게 주(週) 60시간 이상, 하루 12시간 이상 일을 시켜서는 안 된다. 기본은 오후 9시 이후, 아무리 늦어도 오후 10시 이후에는 ‘심야 배송’을 금지한다는 내용도 합의문에 담겼다. 합의가 성사되자 택배노조는 오는 27일로 예고했던 총파업을 철회했다.

◇작년 전국에서 택배기사 과로사 줄이어

이번 결정의 배경은 지난 한 해 유난히 잦았던 택배기사 사망 사고였다. 작년 한 해에만 전국에서 택배기사 16명이 과로로 숨졌다고 택배노조는 밝히고 있다. 특히 사망 사건이 작년 10월 집중되면서 택배 회사 대표이사들이 줄줄이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했다.

여당은 작년 12월 7일 합의기구를 출범시켰다. 국토교통부, 민노총 택배노조, 한국통합물류협회, 한국온라인쇼핑협회, 한국TV홈쇼핑협회 등을 참여시켰고, 지난 20일 오후에 세 번째 전체회의를 거쳐 이번 합의안이 나왔다. 회의에 참석한 업계 관계자는 “회의는 ‘합의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는 식의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전했다.

◇당정, 택배비 인상 사실상 인정

작년 10월부터 택배사들은 일부 대리점에 ‘택배 분류 전담 인력’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원이 충분하지 않아 지금은 택배기사의 분류 작업을 도와주는 정도에 그친다. 이들은 하루 4~6시간 근무하고, 월 120만원 정도를 받는다. 이들을 ‘택배기사가 분류 작업에서 완전히 손을 뗄 수 있을 정도’로 뽑으려면, 최소한 각 사당 택배기사 수의 절반 정도 인원이 돼야 한다. 업계 3위인 롯데택배의 경우 5000명이 필요한데 그 인건비는 연 750억원 정도가 된다. 이 회사 작년 영업이익(약 350억원 추정)의 두 배다. 자동화 설비가 상당 수준 갖춰진 CJ대한통운조차 총 4000명 이상을 고용해야 한다. 게다가 합의문에는 ‘택배사가 분류 작업을 택배기사에게 시킬 경우 그 대가로 지급하는 비용 총액은, 분류 전담 인력을 쓸 때의 인건비 총액보다 커야 한다’는 내용까지 담겼다. 택배사로서는 상당한 인건비 부담이 불가피한 것이다.

택배 업체들이 자동화 설비를 구축하는 데에는 상당한 비용이 소요된다. CJ대한통운의 경우 택배를 택배기사 5~6명 소(小)단위까지 분류해주는 설비를 도입하는 데 2년 반에 걸쳐 1400억원을 들였다.

결국 택배비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기업들이 추가 인건비와 자동화 시설 투자비를 감당하고, 택배기사에겐 근로시간을 줄이면서도 소득을 보전해주려면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늘어난 기업 부담이 결국 요금 인상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셈이다. 합의문에도 ‘각 택배사업자별로 분류 인력 투입, 자동화 설비투자를 감안해 택배 운임 현실화를 추진한다’고 명시됐다. 합의기구에 참여한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택배 분류 작업 인력이 늘어나면 이에 대한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류협회가 집계한 작년도 업계 평균 택배비는 박스당 2222원. 개인 고객으로부터는 4000~4500원 정도를 받고, 대량 주문하는 기업 고객으로부터는 2000원 정도를 받았다.

◇택배기사들 “분류 지원 좋지만, 소득 줄어”

택배기사를 위해 내놓은 대책이지만 택배기사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분류 전담 인력 지원은 모두가 환영했지만, 근로시간 제한에 대해선 부정적 반응이었다.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들은 택배 1박스당 800원 안팎 수수료를 택배 대리점으로부터 받는다. 근로시간 감소가 곧 소득 감소란 의미다.

서울 종로구를 담당하는 CJ대한통운 방모 기사는 “택배기사들은 기본적으로 개인사업자인데, 정부가 근무시간까지 간섭하려 든다”며 “오후 9시에 무조건 일을 끊으라면 결국 낮에 뛰어다니란 소리 아니냐”고 했다. 쿠팡 출신으로 롯데택배에서 서울 공덕동 일대를 담당하는 김모(43) 기사는 “쿠팡에서 돈 더 벌려고 옮겨왔는데, 일하는 시간을 제한하겠다니 황당하다”고 했다. 실제로 쿠팡 배송기사의 경우, 정규 직원으로 취업해 주 5일제, 주 52시간 근무를 지키며 일을 하지만 수입은 개인사업자 형식으로 근무하는 일반 택배기사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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