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임기 말 '친위 내각', 순장조의 얼굴들

김광일 논설위원 2021. 1. 2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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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개각이 있었다. 외교장관, 문화장관, 중기장관이 갈렸다. 그리고 오늘 초대 공수처장이 임명장을 받았다. 먼저 이번 개각의 특징을 살펴본다.

이번 개각을 놓고 ‘순장조 내각’이라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대통령 퇴임과 자신들의 운명을 함께 하는 내각이란 뜻이다. 2009년 이명박 정부 때 세종시 논란을 함께 했던 이동관·박형준·박재완 세 수석을 순장조라고 불렀다. 2016년 최순실 게이트 때 한광옥 비서실장,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에 대해서도 비슷한 얘기가 돌았다. 노무현 정부 때는 문재인 비서실장을 비롯해서 민정수석 출신인 이호철·전해철, 인사수석 박남춘, 복지부 장관 유시민 등도 순장조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순장조, 즉 문 대통령의 퇴임 때까지 마지막을 함께 할 제3차 개각이 어제로 일단 마무리 됐는데, 이때 떠오른 사람들이 순장조 소리를 듣는 것이다. 어제 내정된 외교장관 정의용, 문화장관 황희, 중기장관 권칠승 씨 등을 들 수 있겠고, 지난달 31일에 있었던 유영민 비서실장, 신현수 민정수석도 순장조로 분류된다.

12월30일에 있었던 박범계 법무, 한정애 환경, 황기철 보훈처 등도 이에 해당하고, 12월4일 인사로 순장조에 들어온 사람은 전해철 행안부, 권덕철 복지부, 정영애 여성가족부, 변창흠 국토부 장관 등을 들 수 있다. 순장조는 대통령 퇴임 후에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기도 하지만, 뒷날 화려하게 부활해서 더 큰 정치적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인사의 특징은 ‘내 사람 내 곁에’라고 할 수 있다. 마이웨이 인사인 것이다. 18 곳 부처 장관 가운데 무려 13명이 과거에 문대통령과 청와대 동료였거나 대선 캠프 출신이다. 그중에도 ‘부엉이 모임’ 출신들이 눈에 띈다. 황희 문화부, 박범계 법무부, 권칠승 중기부, 전해철 행안부, 이런 사람들이다. ‘부엉이 모임’이란 전해철 같은 친문 중진 인사들을 중심으로 30여 명이 조직한 모임이다. 지금은 해체됐다고 하는데, 아직도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 있다는 인상을 준다. 패권주의 계파 정치의 표본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으나 본인들은 단순 친목 모임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물론 모임 이름은 낮에는 엎드려 있고 밤에만 활동해야 하는 부엉이처럼 어려운 시절을 상징하는 뜻도 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바위 이름, 즉 부엉이 바위에서 따왔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한겨레신문도 이렇게 보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개각을 단행하며 ‘친 문재인계’ 인사 3명을 동시에 장관으로 발탁했다. 임기말 안정적 국정관리를 위한 사실상의 ‘친위 내각’을 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터넷판에서는 제목을 ‘임기말 국정관리용 친위내각’이라고 뽑았다. ‘친위내각’이란 말은 절박하면서도 무서운 말이 될 수 있다. 마치 ‘친위부대’처럼 대통령의 마지막을 결사 옹위해야 할 사람들이란 뜻은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어느 정권이든 비슷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믿을 수 있는 사람, 내 사람을 갖다 쓰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전문성 보다는 내 사람’, 이런 비판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측근 인사를 기용했다. 예를 들어 황희 의원은 문화, 체육, 관광, 그 어느 것에도 전문성이 있다고 하기 어려운데 굳이 소통 능력이 있다는 구차한 이유를 들면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내정했다. 전문성을 들여다 볼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친위부대 인사는 임기 말이 힘들고 두려운 정권일수록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친문 중용’이라며 혹평했다. 최형두 원내대변인은 “또다시 돌려막기, 회전문 인사다. 대통령 측근 말고 장관 후보가 그리 없나”라고 비판했다. 배준영 대변인도 “여당 국회의원으로 내각을 채우는 것을 보는 마음이 그저 불편하기만 하다. 쇄신 없는 개각은 국민에게 고통일 뿐”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측근을 기용하면서 여당 사람을 무려 7명이나 데려다 쓰고 있다는 특징도 있다. 지난달에 전해철·박범계 두 의원을 행안부·법무부에 지명했고, 이번에는 황희·권칠승 두 의원을 문화부·중기부에 앉혔다. 친문은 아니지만 유은희 사회부총리, 이인영 통일부, 한정애 환경부 장관 등도 여당 의원 출신이거나 의원이다. 다 합하면 여당 의원 7명을 내각으로 부른 셈이다. 올 4월 서울·부산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임기 말 권력 누수를 최대한 차단하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 이번에 강경화·박영선 두 장관이 빠져나가면서 여성장관 비율이 16%로 주저앉았다. 문 대통령 대선 공약은 여성장관 30% 유지였는데, 그래서 작년에는 33.3%를 유지할 때도 있었는데, 이번 인사로 여성 비율이 정확하게 절반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이번 인사의 또 다른 특징은 이른바 ‘김여정 인사’라는 점이다. 당초 정치권과 관가에서는 강경화 외교 장관은 이번 개각 대상으로 거론되지 않았다. 원년 멤버로서 5년 임기를 채울 것이란 의미에서 ‘오(5)경화’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런데 지난 12월5일 작은 사달이 생겼다. 바레인에서 열린 국제회의 때 강경화 장관이 “북한이 우리의 코로나19 대응 지원 제안에 반응하지 않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도전이 북한을 더 북한답게 만들었다.” “(확진자가 없다면서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데) 이것은 조금 이상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자 나흘 뒤인 12월9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주제 넘은 망언이다.” “정확히 계산되어야 할 것이다.”고 비난했다. 그 뒤로 40일 만에 단행된 인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강경화 장관을 교체한 것이다. 지난해 6월에는 김여정 담화의 여파 속에 통일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이 잇따라 물러난 적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강경화 장관이 “김여정 데스노트에 당했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데스노트, 살생부, 즉 김여정이 마치 저승사자처럼 한국 정부에서 경질될 인사의 이름을 죽음의 노트, 데스 노트에 적어놓는데 문 대통령이 그대로 인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강 장관이 이제 문 정권을 떠날 때가 온 것을 알고 모처럼 옳은 얘기를 했던 것”이란 평가도 있었다.

한편 어제 국회에서 청문보고서가 채택된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이 오늘 문 대통령의 임명장을 받고 본격적인 3년의 임기를 시작했다. 취임식과 현판식을 치른 뒤 행정사무직 인원 20여명을 꾸려야 했는데, 이제 공수처 차장 1명,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을 구성해야 한다. 사무실은 정부과천청사에 둔다. 전·현직 대통령과 국회의원, 판·검사 등 3급 이상의 고위 공직자와 그 가족들의 부패범죄를 수사하는 3년 임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수처는 우리 헌법에는 없는 기관이다. 위헌 논란을 안고 출범하는 기관인 것이다. 우리 헌법이 규정하는 검사란 검찰청의 검사를 전제로 하고 있다. 공수처에는 검사를 둘 수 없는 것이다. 또 공수처법에 따르면 검찰이 고위 공직자의 범죄를 알게 되면 이를 공수처에 통보하도록 돼 있는데, 우리 헌법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임명하는 수사기관의 책임자는 검찰총장이 유일하다. 따라서 헌법에 근거가 없는 공수처를 검찰총장보다 더 상위에 두는 것은 위헌이라는 것이다. 영장청구권 문제, 수사권과 기소권의 문제, 강제 이첩권, 재정신청권 등에서 모두 위헌 소지가 있다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

따라서 공수처와 초대 공수처장이야말로 이번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하는 순장조일 뿐, 정권이 바뀌면 그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이 ‘제2의 윤석열’ 혹은 ‘제2의 최재형’이 될까, 라는 말과 함께 그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낸다면 문 정권에게 칼을 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물론 가능성은 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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