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자매처럼 행복한 촬영".. '세자매'의 따스한 위로

서정민 2021. 1. 2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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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자매'의 문소리·김선영·장윤주]
영화 <세자매> 스틸컷. 리틀빅픽쳐스 제공

손잡고 달리는 두 아이의 뒷모습을 담은 흑백 화면으로 영화 <세자매>는 문을 연다. 곧바로 이어지는 현재 시점, 컬러로 바뀐 화면은 제목처럼 세 자매의 삶을 하나씩 펼쳐 보인다.

둘째 미연(문소리)은 언뜻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남편은 대학교수이고, 신도시에 번듯한 아파트도 장만했다. 교회에선 성가대를 지휘하고, 아이들 교육에도 열심이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기면 균열투성이다. 남편은 젊은 성가대원과 바람이 났고, 아이를 훈육하는 미연의 태도는 자꾸 신경질적이 된다. 동생 미옥(장윤주)은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 술주정을 한다. 그럼에도 미연은 모두를 완벽하게 조율해야 한다는 강박을 벗지 못한다.

영화 <세자매> 스틸컷. 리틀빅픽쳐스 제공

첫째 희숙(김선영)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 작은 꽃집을 운영하고 있다. 집 나간 남편은 가끔 찾아와 돈을 뜯어가고, 하나뿐인 딸은 엄마를 무시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희숙은 암 선고를 받고도 혼자 끙끙 앓기만 한다. 슬럼프에 빠진 극작가인 셋째 미옥은 매일 술이다. 잔뜩 취해 “나는 쓰레기야” 하고 위악을 떨고 사고를 치지만, 사실 의붓아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이야기의 기원은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선영의 남편이자 연극·영화 연출가인 이승원 감독의 <소통과 거짓말>이 넷팩상과 올해의 배우상(주연배우 장선)을 받을 당시 문소리는 올해의 배우상 심사위원이었다. 문소리는 “이 감독 영화를 처음 봤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조연으로 출연한 김선영을 보고는 ‘괴물 같은 배우가 나타났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영화제 뒤풀이에서 문소리가 이승원·김선영 부부를 찾아가 “영화 잘 봤다”고 인사하면서 인연은 시작됐다.

영화 <세자매> 스틸컷. 리틀빅픽쳐스 제공

“언제 작업 한번 같이 하시죠”라는 영화계의 흔한 덕담이 현실화된 건, 이 감독이 문소리와 김선영을 염두에 둔 시나리오를 쓰면서다. 문소리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여성 서사가 반가웠고,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고 말했다. 영화로 꼭 만들어졌으면 하는 마음에 공동 프로듀서까지 맡았고, 결국 남편 장준환 감독과 만든 ‘영화사 연두’가 공동 제작사로 나섰다.

남은 건 셋째 캐스팅이었다. 시나리오를 받은 장윤주는 처음엔 거절했다. 하지만 세 자매의 막내로 살아온 자신의 삶이 떠오른데다 ‘이런 얘기를 누군가는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사흘 만에 문소리에게 연락했다. 영화 <베테랑>(2015)의 ‘미스 봉’ 이후 연기를 오래 쉰 장윤주는 “그동안 연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언니들과 하면 배울 게 많을 것 같았다”고 참여 이유를 밝혔다.

영화 <세자매> 스틸컷. 리틀빅픽쳐스 제공

촬영에 들어가기 전 세 배우는 문소리 집에서 가족 모임을 했다. 모이고 보니 셋 다 딸이 하나씩 있었다. 셋은 마치 친자매처럼 어울리며 영화와 연기 얘기를 나눴고, 딸들도 자매처럼 어울려 놀았다. 이런 분위기는 촬영 현장으로 이어졌다. 함께 출연하는 장면보다 각각 따로 연기하는 장면이 훨씬 더 많았는데도, 세 배우는 거의 모든 현장을 함께 지켰다. 문소리는 공동 프로듀서로서 모든 현장을 지켜봤고, 김선영은 연기 디렉터로서 장윤주의 연기를 꼼꼼히 봐줬다. 전화 통화를 하는 장면에선 옆에서 실제 통화하는 것처럼 리액션을 해줬다. 김선영은 “정말 행복했다. 이런 특별한 현장은 다시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세 배우는 흠잡을 것 없는 연기를 펼쳐 보인다. 문소리의 원숙한 연기는 영화의 중심을 탄탄히 잡고, 김선영의 묵직하고 힘 있는 연기는 깊이와 무게감을 더한다. 특히 장윤주의 변신이 놀랍다. 화장기 하나 없이 후줄근한 옷을 걸치고 펼치는 생활 연기는 배우로서의 장윤주를 다시 보게 한다. 장윤주는 “모델로서 몸에 익은 화려함을 모두 내려놓고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고 했다. 김선영은 “연극판에서 연기 지도를 많이 해봤지만, 윤주처럼 흡수가 빠른 배우는 처음”이라고 칭찬했다.

영화 <세자매> 스틸컷. 리틀빅픽쳐스 제공

영화 후반부에서 세 자매는 아버지 생일을 맞아 한자리에 모인다. 여기서 어린 시절 이들이 겪은 가정폭력과 관련한 트라우마가 터져 나오면서 영화는 폭발한다. 마지막에 바다로 간 세 자매의 환한 웃음은 불편하고 힘겹게 영화를 보던 관객들에게 묘하게도 따스한 위로를 전한다. “꼭 뭔가 해결돼야만 인생이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어도 그렇게 웃고 또 살아가는 거죠.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저도 위로를 받게 되더라고요.” 김선영의 말이 곧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다. 27일 개봉.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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