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N사피엔스] DNA 이중나선 발견에 가려진 '암흑여사(dark lady)' 프랭클린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 2021. 1. 2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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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나선 구조 발견에 결정적 힌트가 된 ‘51번 사진’. 1952년 로절린드 프랭클린이 킹스 칼리지 런던에 있는 존 랜달의 연구소에서 근무할 무렵 촬영한 X선 회절 사진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낸 이야기는 20세기 과학의 전설 내지 신화로 남아 있다. 이로써 생명의 비밀에 크게 한 발 다가갈 수 있게 됐다는 그 업적 자체의 가치가 어마어마하기도 하지만, 그 과정의 여러 극적인 요소들까지 신화를 완성하는 데 한몫을 거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크게 두 가지 사항을 짚고 싶다. 첫째, 물리학적 방법론의 성공이다. 아주 직접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왓슨과 크릭의 성공에는 양자역학에서 큰 업적을 남긴 에르빈 슈뢰딩거의 역작 《생명이란 무엇인가》가 큰 영향을 미쳤다. 크릭은 물리학을 전공하다가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생물학으로 전공을 틀었던 인물이다. 왓슨은 원래 생물학에서 출발했으나 그 또한 이 책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1944년에 출판된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새로 정립된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생명 현상을 조망한다. 이 시점에서는 슈뢰딩거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이 유전물질의 정체를 핵산이 아니라 단백질로 여기던 때였다. 양자역학은 원자 이하의 미시세계에서 작동하는 원리로서 불연속적인 물리량에 대한 역학체계이다. 슈뢰딩거는 에너지의 불연속성이 분자의 안정성을 보장하며, 분자 속에 복잡하고 방대한 유전정보를 담는 것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전 글에서도 소개했듯이 사실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영감을 준 이가 막스 델브뤼크였고, 델브뤼크에게 영감을 준 이는 닐스 보어였다. 보어는 물리학적 방법론으로 생명 현상에 접근하라고 주창한 바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DNA의 분자 구조를 밝혔다는 것은 유전 현상의 본질을 분자 수준에서 이해할 단초를 열었다는 뜻이고, 이는 물리학에서 큰 재미를 봤던 환원주의(reductionism)의 개가라 할 수 있다. 환원주의란 간단히 말해 보다 근본적인 요소로 어떤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이다. 거시적인 열 현상을 분자들의 운동으로 설명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버드나무 껍질을 달여 먹으면 해열과 진통에 효과가 있다는 경험에 만족하지 않고 그 속의 살리실산 성분을 추출해 아스피린이라는 약으로 정제한 것도 환원주의의 성과였다. 라이너스 폴링은 화학결합을 원소들의 원자 배치에 대한 양자역학적 원리로 환원시켜 성공적으로 설명했다. 생명 현상의 본질 중 하나인 유전을 DNA라는 고분자 물질의 분자 구조를 규명해 이해하려는 노력도 이런 환원주의 전통의 연장선 위에 있다. 

환원주의의 이점은 어떤 대상을 그 최소단위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그 대상을 구성하는 레고 블록들을 모두 다 손에 넣는다는 뜻이다. 최소단위의 레고 블록을 손에 넣었다는 것은 단지 그 대상을 바닥까지 철저하게 알게 됐다는 것 이상의 의미이다. 최소단위의 이해는 곧 ‘제어’의 첫걸음이다. 즉 우리가 원하는 대로 대상을 조종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새로운 물건을 ‘창조’할 수 있다. 더 이상 쪼개지지 않을 것 같던 원자 내부에 전자와 원자핵이 있음을 알게 되자 불과 몇 십 년 만에 트랜지스터와 핵무기가 등장했다. DNA라는 유전물질의 분자 구조를 파악했다면 머지않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유전자를 붙였다 뗐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왓슨과 크릭 이후 유전자 가위의 등장은 거의 필연이라 할 수 있다. 

환원주의 말고도 왓슨과 크릭을 성공으로 이끈 물리학적 방법론으로 모형화(model building)를 꼽을 수 있다. 흔히 과학이라고 하면 실험결과로부터 일반법칙을 이끌어내는 귀납법을 떠올리지만, 실제 과학이 진전하는 과정은 상당히 복합적이다. 원리적으로도, 언제나 만족할만한 실험결과가 과학자의 손에 쥐어지는 것은 아니다. 남은 여백은 과학자의 상상력으로 메워야 한다. 여기서 모형화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뿐만 아니라 훌륭한 모형은 향후 실험의 방향을 지시하기도 한다. 폴링이 단백질의 알파나선구조를 알아낸 것도 실험결과와 이론적 조각들을 잘 엮어서 성공적인 모형을 만든 사례이다. 왓슨과 크릭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거의 폴링의 방식과 비슷하게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냈다.

둘째로 이중나선과 관련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사항이 연구윤리 문제이다. 왓슨이 1953년 1월 이중나선이라는 결정적인 힌트를 얻은 것은 프랭클린이 찍은 X선 회절사진, 일명 ‘51번 사진’ 덕분이었다. 1953년 1월 폴링이 발표한 삼중나선 구조를 논의하기 위해 왓슨이 윌킨스를 찾아 킹스 칼리지를 방문했을 때 프랭클린과 왓슨 및 윌킨스 사이에 미묘한 다툼이 있었고 그 직후 윌킨스가 ‘51번 사진’을 왓슨에게 보여줬다. 

그런데 그 ‘51번 사진’은 프랭클린과 평소 앙숙이었던 윌킨스가 무단으로 복사해 둔 것들이었다. 아무리 모형화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실험결과와 일치해야 올바른 모형으로 평가받는다. 왓슨과 크릭이 제대로 된 모형을 완성하는 데에는 프랭클린의 사진과 데이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DNA 분자구조를 규명했다는 것이 그냥 이중나선의 모양을 그렸다는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다. 분자들 사이의 폭이나 각도, 이중나선이 뒤틀린 정도 등의 수치적 결과들이 실제와 정확하게 일치해야 한다. 게다가 그 구조가 물을 많이 흡수할 수 있다든지, 산성이어야 한다든지 하는 화학적 성질도 충족해야 한다. 

그러니까 왓슨과 크릭의 1953년 4월 ‘네이처’ 논문은 프랭클린의 결과물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프랭클린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왓슨과 크릭의 역사적인 논문 참고문헌에는 프랭클린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네이처 편집자 입장에서도 좀 난처했을 것이다. 유전물질의 분자구조를 규명한 역사적인 논문이 킹스 칼리지의 데이터를 ‘훔쳐 쓴’ 캐번디시 소속 과학자들 명의로 나가는 꼴이 됐으니 말이다. 입장이 난처하기는 캐번디시 소장이었던 로렌스 브래그 경, 킹스 칼리지의 생물리학부장으로서 프랭클린을 데려왔던 존 랜달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논의 끝에 ‘네이처’에 킹스 칼리지 소속 과학자들의 논문을 두 개 더 싣기로 했다. 

그래서 1953년 4월 25일자 ‘네이처’에는 세 편의 논문이 나란히 실렸다. 왓슨과 크릭의 '핵산의 분자구조: 디옥시리보핵산의 구조(Molecular Structure of Nucleic Acids: A Structure for Deoxyribose Nucleic Acid)', 윌킨스와 A.R. 스토크스와 H.R. 윌슨의 '핵산의 분자구조: 디옥시펜토스 핵산의 분자구조(Molecular Structure of Nucleic Acids: Molecular Structure of Deoxypentose Nucleic Acids)', 프랭클린과 R.G. 고슬링의 ‘티모핵산나트륨에서의 분자구성(Molecular Configuration in Sodium Thymonucleate)'이 그 세 편이다. 

프랭클린은 1953년 3월 킹스 칼리지를 떠나 런던 버크벡 칼리지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프랭클린과 윌킨스 모두가 만족할만한 일이었다. 3월 초에 윌킨스는 크릭에게 편지를 써서 '암흑여사(dark lady)'가 곧 떠날 것임을 알렸다. 

비극적이게도 프랭클린은 1958년 37세의 젊은 나이에 난소암으로 사망했다. 왓슨과 크릭, 윌킨스는 1962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히는 데 프랭클린의 ‘51번 사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또한 충분히 노벨상을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노벨상은 죽은 사람에게는 수여하지 않는다는 불문율 때문에 1962년 노벨상을 1958년에 사망한 프랭클린에게 수여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프랭클린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프랭클린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했다. 그런 연유들이 결합돼 프랭클린은 한때 페미니즘의 아이콘이 되기도 했다. 

로절린드 엘시 프랭클린. 위키피디아 제공

프랭클린의 업적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 또한 역설적이다. 왓슨은 1968년 자신이 어떻게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냈는지 자전적으로 서술한 책 《이중나선》을 펴냈다. 이 책에서 왓슨은 프랭클린을 성격 나쁘고 사회성 없는 여성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동료 과학자로서 재능을 평가하기보다 외모 위주로 기술하기도 했다. (다만 후기에서는 프랭클린을 후하게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프랭클린과 관련된 내용 때문에 오히려 프랭클린의 자료가 없었으면 왓슨이 이중나선의 구조를 규명하지 못했음이 명확하게 드러나게 됐다. 이런 사실들이 오랜 세월 알려지지 않은 점도 놀랍다.

그렇다고 프랭클린과 왓슨-크릭이 아주 적대적으로 지낸 것도 아니다. 1953년 프랭클린은 버크벡으로 옮긴 뒤 아주 행복하게 담배모자이크 바이러스 연구에 매진했다. 왓슨이나 크릭과도 의견을 주고받았고,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왓슨이 마중을 나가는가 하면 크릭 부부와는 스페인 여행을 함께 하기도 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왓슨과 크릭이 아무런 일도 안했는데 프랭클린의 사진만 보고 이중나선 구조를 ‘운 좋게’ 두드려 맞췄다는 식의 인상도 그리 올바르지는 않아 보인다. 사실 나 같은 사람은 프랭클린의 ‘51번 사진’을 아무리 봐도 그게 어떻게 이중나선 구조인지를 알 수가 없다. 결정적인 힌트가 주어졌을 때 그것의 가치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 나름의 노력과 재능이 필요한 법이다.

또한 앞서도 말했듯이 이중나선이라는 힌트로부터 구체적인 모형을 완성하는 것은 자동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특히 당-인산 뼈대를 바깥에 세웠을 때 안쪽을 향하는 염기들이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는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샤가프의 법칙’으로, 아데닌과 티민, 구아닌과 시토신의 양이 각각 항상 일정하다는 내용이다. 이는 1950년 미국의 어윈 샤가프가 발견했다. 샤가프는 1952년 7월 캐번디시를 방문해 자신이 발견한 법칙을 크릭과 논의하기도 했었다.
 
아직 살아있는 왓슨은 2019년 인종과 지능에 관련이 있다는 식으로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의 인종차별적 발언은 이게 처음은 아니었다. 20세기 최고의 과학자 중 한 명이 21세기에까지 이런 발언을 쏟아내는 모습이 참 안쓰럽다. 그가 한때 총장으로 있었던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는 왓슨의 발언을 반박하고 명예직 타이틀도 박탈했다고 한다. 

제임스 왓슨(James Dewey Watson).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 제공

※참고자료
-에르빈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전대호 옮김), 궁리. -제임스 왓슨, 《이중나선》(최돈찬 옮김), 궁리.

-Brenda Maddox, The dark lady of DNA?, The Guardian, 2000.5.5., https://www.theguardian.com/theobserver/2000/mar/05/featuresreview.review.

-브렌다 매독스,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나도선 진우기 옮김), 양문.

-The Nobel Prize Organization, The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 1962, https://www.nobelprize.org/prizes/medicine/1962/summary/. 수상이유는 다음과 같다. “"for their discoveries concerning the molecular structure of nucleic acids and its significance for information transfer in living material." -Maddox, B. The double helix and the 'wronged heroine'. Nature 421, 407–408 (2003). https://doi.org/10.1038/nature01399.

-존 그리빈,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과학》(강윤재 김옥진 옮김), 들녘.

-인종차별: 노벨상 출신 과학자, '지능과 인종 관련있다' 발언 후 명예직 박탈, BBC코리아, 2019.1.14. https://www.bbc.com/korean/news-46859330.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 jongphil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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