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현수와 정인이의 '몽고반점' / 황필규

한겨레 입력 2021. 1. 21. 16:36 수정 2021. 1. 21.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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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1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검찰청 앞에 설치된 정인이 사진을 한 시민이 어루만지고 있다. 이날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는 정인이 양부모 재판을 앞두고 엄벌을 촉구하며 근조화환과 바람개비를 설치했다. 연합뉴스

황필규ㅣ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2014년 2월, 현수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 보내진 3살 현수는 앞뒤 두개골 파열 등 처참한 모습으로 사망했다. 홀트 관계자는 현수 몸의 멍이 몽고반점일 가능성이 있고 현수가 기저질환이 있었다는 변명을 내놨다. 기소 사실이 알려지면서 홀트 앞 항의집회가 진행됐고, 홍대 앞 길거리에 빈소가 마련됐다. 관련 단체들이 질의서를 발송하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관련 공무원을 만났다.

보건복지부의 홀트아동복지회에 대한 감사가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는 참담했다. 국내입양 우선 추진, 입양 숙려기간 보장, 국외입양 알선비용 인상, 예비양부모 자격확인, 양부모 가정조사, 국외입양 협력기관 협력체계, 국내입양 사후관리, 입양아동 인도결과 보고 등 모든 항목에서 ‘부적정’ 의견이 제시됐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국외입양제도 전반(미혼모 발생-출산-보호-입양-사후관리 등)에 대한 실태 파악 및 제도적 개선방안 마련 등을 약속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원가정 복귀, 친생부모 상담, 국내 예비양부모 상담, 국외입양 사후관리 등 입양업무 전반에 대한 분기별 점검체계 구축, 운영 등을 재발방지 대책으로 제시했다.

그래서 무엇이 바뀌었던가. 관련자 모두는 차분한 평가를 통해 더 적절하고 구체적인 법제와 관행의 개선방안을 제시하고 실행에 옮겼어야 했다. 정부 주체들은 적어도 자신들이 한 공적인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어야 했고, 시민사회와 언론은 정부가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집요하게 촉구하고 감시했어야 했다.

2020년 10월 정인이의 심장이 멎었다. 다발성 골절, 췌장 절단, 급성출혈 등 온갖 끔찍한 증상들이 나열됐다. 여기서도 몽고반점이 등장한다. 아동학대 여부 조사과정에서 정인이 몸의 멍에 대해 양부모 쪽이 이를 몽고반점이라고 했고 경찰은 이를 믿었다. 홀트, 국회, 법원 앞 등에서 기자회견, 집회가 진행됐고, 대대적인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서 정부와 국회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2021년 1월19일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아동학대 대응체계 강화방안’이 발표됐다. 정부 대책의 세부 내용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구체화되고 실행되고 점검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대책에는 중요한 몇몇 관점, 접근법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첫째는 예방의 문제다. 정부 대책은 아동학대 예방을 부모의 ‘인식개선’의 문제로 보고 있고 그 ‘인식’의 수준도 ‘체벌 없는 양육법’에 그치고 있다. 조기발견도 강조되지만 조기경보와 조기조치의 필요는 항상 예방조치가 효과적이지 않았거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다. 효과적인 예방은 위기의 근본 원인, 즉 여러 형태의 차별, 피해구제에 대한 접근의 어려움, 사회경제적 권리의 불충분한 보장 등에 대한 파악에 기초한 장기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2020년 유엔인권이사회의 ‘인권침해예방 보고서’).

둘째는 아동 최상의 이익의 문제다. 정부 대책 어디에도 권리주체로서의 아동은 사실상 보이지 않는다. 아동은 권리의 주체로서, 모든 결정 과정에서 상담받을 권리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권리가 보장되고, 아동의 나이와 성숙도에 따라 그 견해가 존중되고, 모든 정보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동의 고립된 혹은 학대가해자 영향하의 진술을 학대 방치의 근거로 삼는 관행은 위 권리들에 대한 극단적인 몰이해와 배제를 의미할 뿐이다.

셋째, 입양 등 대안적 양육, 더 나아가 아동보호체계 전반의 구조 문제다. 정부 정책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입양을 그냥 전제하고 조치들을 나열하고 있다. 그러나 가난이 아동을 부모의 양육에서 분리시켜 대안적 양육을 받게 하거나, 재결합을 막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동에 대한 유기, 분리를 막기 위해 혼외 자녀 등과 같이 아동 또는 부모의 지위나 상태에 따른 차별과 사회경제적 낙인을 근절하려고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 가난이나 사회적 낙인은 입양 등 대안적 양육의 조건이 아니라 그 가정에 적절한 보호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신호다(2009년 아동의 대안적 양육에 관한 유엔총회 결의).

타임 루프에 빠진 것도 아닌데 입양아동의 학대 혹은 학대사망 사건의 발생, 공론화, 대책 마련, 시간 경과, 재발생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용기와 끈기가 필요하다. 몽고반점…, 이것 하나라도 제대로 배워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나. 너무 비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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